[Opinion] 거부할 수 없는 사회의 만연함 속에서, 페스트 [도서]

글 입력 2019.10.27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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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잃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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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리는 페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동 변화를 보며 자유의 상실이 무엇인지에 관해 유추해 볼 수 있다. 초기에 사람들은 페스트 자체를 큰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도시가 폐쇄되었음에도 무관한 일이라는 듯 평소와 같이 일상을 즐기고 농담을 주고받는다. 어느 정도 안일함과 합리화 속에서 상황이 금방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사건의 시작을 애써 외면한다.

 

그러나 사망자 수가 늘어나면서 불안감은 증폭되고,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무언가에 자신을 의탁하기 시작한다. 신에게 기대거나 태양과 비를 섬긴다. 알베르 카뮈는 이 행위에 대하여 사람들이 스스로를 또 다른 노예상태에 종속시키는 것이라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페스트의 창궐이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사람들은 체념의 상태에 이른다. 절망에 익숙해진 것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아무런 태도를 취하지 않고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게 된다. 무기력한 상태가 지속된다. 사람들의 가치판단을 앗아가 버리는 것, 바로 자유의 상실이다.


자유를 잃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행동은 각기 달라진다. 알베르 카뮈는 사람들이 그에 대처하는 다양한 행동 방식을 그려낸다. 사람들은 신에게 기대거나, 자신의 일을 하는 등 각자 나름대로 자유를 찾기 위한 일들을 한다. 혹은 절대적으로 체념하여 페스트라는 상황에 아무 판단이나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살아가기도 한다. 그중 리외, 타루, 파늘루 신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리외는 페스트에 대처하는 유형 중 알베르 카뮈가 해결책으로 제시한 인물로 보인다. 그는 사건의 초반부터 페스트에 대해 인식하고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판단을 내리고 해결해보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카뮈는 페스트가 창궐한 도시를 통해 개인이나 단체의 힘으로도 이해하거나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을 표현하려 한 듯하다.


리외는 사람들과 대립하지만 일관된 자신의 의견을 보여준다. 가장 두드러졌던 상황은 파늘루 신부와의 대화에서였다. 아이의 고통을 목격한 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파늘루 신부의 말에 리외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닙니다. 신부님.

저는 사랑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이 고통을 받는

이런 세계를 사랑하는 것을

저는 죽을 때까지 거부할 겁니다.”

 

또 우리가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신부의 말에 리외는 자신은 단지 ‘인간의 건강’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전의 대화에서도 리외는 죽음을 직접 목격하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은 비참함에 대해 훌륭한 이유를 달려고 하기보다는 먼저 그것을 치료하려 할 것이라 말한다.


리외는 상황을 신의 의지로 해석하기보다는 자신이 목격하는 것들과 사람들의 고통에 관심을 더 기울이고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반면 신부의 모습은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직시하여 받아들이기보다 어떤 의미로든 해석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리외나 신부 모두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을 한 것이지만 신의 존재를 받아들인다면 불합리해 보이는 상황마저도 정당한 것이 된다. 리외는 그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불합리한 상황을 그 자체로 받아들인 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나가야 된다고 리외는 생각했던 것 같다.


‘신 없이 성자가 될 수 있는 가’에 대해 고민했던 타루도, 사람의 죽음에 있어서는 어떤 상황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에서 리외와 비슷한 입장이었다. 신을 믿지 않는다는 생각은 같았지만, 이 둘은 삶의 지향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타루는 어떻게 하면 자신이 성자나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었지만, 리외가 관심 있는 것은 영웅주의나 성자가 되는 것이 아닌 인간이 되는 것뿐이었다. 타루는 현실을 초월한 이상향을 바라는 반면 리외는 여전히 자신이 딛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며 문제가 그 안에서 해결되길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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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의 행동방식과 신념은 각기 달랐지만, 페스트가 만연한 사회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적어도 그들은 자유를 잃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자유를 갖는다는 것은 페스트에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어떤 방식으로든 저항해나가는 데 있다. 그게 어떤 방식이 되는가는 개인의 삶에 따른 신념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의 가치판단을 앗아가 버려 자유를 잃는다는 것은 잠정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질병으로서의 페스트는 끝이 났지만, ‘페스트’는 언제나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할 것이다. 자유의 상실에 맞서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고, 고민하며 가치판단을 계속해나가는 인간으로서 존재해야 할 것이다.

 

 

아무런 예고 없이 페스트는 들이닥친다.

이를 극복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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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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