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페라로 이중섭의 발자취를 따르다, "이중섭" - 서울오페라페스티벌

서울오페라페스티벌 2019, 오페라 <이중섭>
글 입력 2019.10.18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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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음악의 만남, 오페라 <이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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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삶은 작품으로 표상되어 미술관에서 우리 눈앞에 뚜렷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화가의 삶은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다. 설사 전시에서 화가의 삶을 텍스트나 다른 설명으로 상세히 전달해 준다고 할지라도 화가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느끼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가의 일생이 그의 작품만큼이나 흥미로웠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창작물은 가공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창작물보다 더 깊은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오페라 <이중섭>도 그러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시대적 격동을 겪은, 그 시대를 대표하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가의 이야기는 인상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가족들과 만날 수 없는 고통과 그를 둘러싼 갖가지 오해 등 개인적 고통 때문에 그의 삶은 더욱 극적이다.

 

그리고 이번 서울오페라페스티벌 2019에서는 2016년도에 이중섭 탄생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서귀포시에서 최초로 제작된 창작 오페레타의 오페라 버전인 <이중섭–비 바람을 이긴 기록>을 공연했다. 원 작품은 이중섭과 아내 마사코와의 사랑을 중심으로 전개하였으나 이번에 공연된 작품은 이중섭과 그 주변인의 삶, 예술세계에 집중했다.
 

우리나라의 창작 오페라를 감상할 기회는 많지 않다. 그리고 그 주인공이 화가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래서 오페라 <이중섭>은 미술과 음악의 결합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오페라 <이중섭>에서만 찾을 수 있었던 특별함을 몇 가지 추려 보려고 한다.

 

 

 

관객과 배우의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무대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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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무대미술이다. 2시간가량의 러닝타임 동안 이중섭의 생애를 훑어야 하기에 서귀포 앞바다부터 이중섭의 작업실과 집, 미도파 개인전이나 정신병동 등 다채로운 무대가 등장했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연출은 첫 번째로 2막에서 이중섭이 <황소>를 완성하는 장면이었다. 고뇌 끝에 그림을 완성한 이중섭의 아리아가 절정에 치달으면서, 무대의 일렁이는 화면 위에는 거대한 <황소>가 아로새겨진다. 마치 황소가 꿈틀거리는 것만 같은 생동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고 관객석에서는 뜨거운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두 번째로는 이중섭이 정신병동에서 세상을 떠나는 장면이다. 무대 위로 겹겹이 설치된 흰 스크린 사이의 틈 너머로는 눈부신 빛이 새어나온다. 그리고 관객을 등지고 그 틈 사이로 발걸음을 향하는 이중섭의 뒷모습은 그저 슬프다기보다는 그가 갖가지 고통을 겪었던 이 세상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떠나는 듯 보였다.

 

 

버틸 수가 없어,

그럴 자신이 없어.

 

기다리지 마오.

내가 기다려 줄게,

천천히 내게로 와.

 

함께하자, 내 사랑이여.
치유할 수 없는 세월,

서러움에 굳은 심장,
살아남기 위해 버틴 시간.

자유 찾아 나는 떠나가네.

 

안녕, 사랑하는 모든 이여.

이제 난 그곳에서 자유하리.

 

- 오페라 <이중섭> 4막 중에서

 

 

그리고 무대조명은 극과 극을 이루는 장면 간의 대조를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행복하고 평화로웠던 서귀포 장면 속 뿌옇고 밝은 조명, 그리고 오해를 받고 궁지에 몰린 이중섭과 경찰들을 비추는 컴컴하고 콘트라스트가 강한 조명은 관객들로 하여금 이중섭의 감정에 몰입하게 한다.

 

 

 

이중섭의 열렬한 지지자, 동료 예술가들


 

흔히 오페라는 한 개인에게 집중하며 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위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그리고 이중섭과 마사코의 사랑 이야기 또한 소설이나 영화, 뮤지컬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 오페라에서는 남덕과의 사랑뿐만 아니라 그들 사이의 갈등에도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플롯의 흐름을 이중섭의 주변인들까지 넓혀 구상, 최태응, 김광림, 그리고 한묵 등의 예술가들도 비중 있게 등장시켰다. 그들은 극중에서 이중섭의 동료이자 열렬한 지지자로 등장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이나 예술세계가 직접적으로 다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동료 예술가들의 등장은 그들이 이중섭과의 어떠한 구체적인 접점이 있었는지에 대해 궁금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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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섭이 그린 <구상네 가족>

 

 

먼저 우리에게 <초토의 시>로 잘 알려진 시인 구상은 이중섭의 곁에서 큰 도움을 주며 함께한 동료들 중 한 명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구상은 이중섭에게 대구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작업실을 마련해 주며 그가 작품활동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중섭의 작품 전시회가 열릴 수 있게끔 후견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한 구상이 폐 수술로 입원했을 때 이중섭이 찾아오지 않아 실망하고 있던 중, 이중섭이 천도복숭아 그림을 그리느라 늦게 병문안을 왔다는 이야기는 두 인물의 우정을 알려주는 일화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시인 김광림은 17살 때 이중섭을 처음 만나 인연을 맺었다. 그는 극중에도 나오듯 군 장교 시절 이중섭에게 양담배 은박지를 모아다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개인전에서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이중섭은 김광림에게 그림을 죄다 불태워 달라고 한다. 그러나 김광림은 그 그림들을 보관했다가 이중섭의 친구였던 소설가 최태응에게 돌려주어 가까스로 이중섭의 은지화를 살려냈다. 또한 김광림은 이중섭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여러 시를 썼다. 그리고 이중섭 또한 마치 시인이 시를 쓰듯이 그림을 그렸다.

 

“이중섭은 시인의 작업을 부러워했다. 시인은 손바닥만한 스페이스만 있으면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시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가는 그게 안 된다. 간단한 데생이라면 또 몰라도 캔버스나 물감을 마련해 놓고 있어야 하니까. 그는 시처럼 그림을 그리기 위해 닥치는 대로 스페이스를 메워 나갔다. 땟국 낀 장판지나 시험지, 은박지, 엽서, 판자할 것 없이 여백만 있으면 시를 쓰듯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 김광림, <진짜와 가짜의 틈새에서> 본문 중에서

 

*

 

이렇듯 서로가 서로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었던 이중섭과 예술가들처럼 오페라 <이중섭> 또한 많은 관람객들에게 깊은 감명을 안겨주었다. 성악과 극의 만남부터 미술과 음악의 만남까지, 더해지면 더 큰 인상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모여 마치 선물처럼 찾아온 오페라였다.

 

 

참고자료

김문, [김문의 만난사람] 이중섭 55주기… 그를 추억하는 원로 시인 김광림, 2011, 서울신문

 


[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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