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행위예술은 사고팔 수 있을까? [문화 전반]

당신도 '과정'을 소유할 수 있다
글 입력 2019.10.17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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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예술가가 현존하다>

 


퍼포먼스 아트, 우리 흔히 말하는 행위 예술은 생각보다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시간과 공간이 모두 맞아떨어지는, 즉 같은 시공간에서만 그 예술의 표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시공간을 공유하며 그곳의 사람들 기억 속에 같은 이미지와 소리가 공유된다는 것은 신비하면서도 매력적인 일이다.


내가 접했던 행위 예술 중 기억나는 작업들은 딱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시립미술관에서 봤던 작업이다. 퍼포머들은 옷을 입었다가 벗었다가 다시 입는 행위들을 몇 분 동안 반복한다. 둘째는 작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감상했던 작품으로, 알로리 괴르제와 앙투완 드푸르의 <제르미날>이다. 사실 이는 행위예술이라기보다 무대에서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되는 연극 쪽에 더 가깝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은 불과 일주일도 안된, 저번 주에 만난 작업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은 하나의 관점, 정형화된 형식으로는 더 이상 설명할 수 없고 규정할 수 없는 예술에서의 초과와 불일치를 드러내는 과감한 시도이다. 동시대예술이 표출하는 이 복잡한 양상은 우리에게 익숙한 예술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감각으로 예술과 사회를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자유롭게 도전하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날카롭게 탐구하는 가능성의 장소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가끔씩 다원예술을 기획할 때가 있다. 쉽게 볼 수 없는 퍼포먼스들을 미술관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니, 신청서가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고 간신히 신청에 성공하면 어떤 퍼포먼스를 보게 될까 기다리는 동안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올해도 어김없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퍼포먼스들이 진행된다. 카럴 판 라러의 <존재하지 않는 퍼포머>는 30분 동안 제목 그대로 퍼포머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고,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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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럴 판 라러 <존재하지 않는 퍼포머>

 

 
무대에서 퍼포머의 존재성을 지우는 방식으로 네덜란드 아티스트 카럴이 택한 방법은 바로 최면이다. 아티스트이자 퍼포머인 카럴은 관객의 눈앞에서 깊은 최면에 빠진다. 더는 자기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스위치가 꺼진 신체, 순간적으로 사물화된 그의 몸은 3명의 무용수에 의해 움직여지고 조작된다.

  

카럴에 의하면 사람들 앞에 퍼포머로 서는 것에 약간의 두려움 같은 것이 있었고, 과연 퍼포머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처음에는 마취약을 투여해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방식을 택하고자 하였으나, 너무 위험하다는 의견을 수렴하여 훨씬 더 깊은 무의식으로 빠져들 수 있는 최면을 택했다.


카럴이 무대에 등장한지 약 1분 만에 그는 최면술사의 말소리와 손짓에 따라 사라진다. 그리고 무용수들은 그의 몸을 구부리기도 하고 끌기도 하며 일종의 ‘운송’을 시도한다. 3명의 퍼포머들은 연습 때와 달리 최면에 빠진 몸은 정말 죽은 몸처럼 굉장히 무겁고 뜨겁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관객의 무릎 위에 카럴의 신체를 올려 옆으로 이동시키는 행위를 하기도 했는데, 내 무릎 위로 지나가는 카럴의 몸은 정말 돌덩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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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가 끝난 후,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질문은 ‘퍼포먼스가 보기 거북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감정이 생긴 이유는 정확히 알지 못하겠으나, 아마도 인간의 신체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고귀한 생명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마치 ‘물건’처럼 ‘운반’되는 행위를 지켜보는 데서 오는 것 같다고 관객은 이야기했다.


나 또한 어딘가 그로테스크한 광경을 이상하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었는데, 이는 우리가 존엄한 것이라 이야기하는 몸이나 신체, 생명에 대한 아우라가 부서지면서 오는 것과 퍼포머에 의해 마구 조종되는 카럴의 몸에서 마치 미디어 매체나 사회의 관념에 의해 조립되는 인간의 현실을 보았기 때문인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이처럼 행위 예술이 단순히 관객에게 작품을 제시하고 바라보게 하는 것과는 달리, 직접적으로 개입시키고 관객 또한 작품의 일부, 작업의 행위자로 참여하게 한다. 그것은 다른 작업을 마주할 때보다 훨씬 직접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우고 모든 감각으로 카럴의 거대한 몸뚱이를 들어 올릴 때, 그 행위를 지켜보는 관객에게는 나 또한 한 명의 퍼포머가 된 셈이다.

 

 

 

#1. 행위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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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

 


행위예술은 신체를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신체 예술이라고도 불린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과정 예술로 불리기도 한다. 이와 관련된 작가로는 잭슨 폴록을 이야기할 수 있다. 추상화 작가로도 알려져 있지만, 그는 ‘액션 페인팅’이라는 용어의 탄생을 가져온 작가이기도 하다. 완성된 그림을 작업으로 여기기보다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마구 뿌리는 행위 자체를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그에게 캔버스 위의 물감 자국들은 그가 행위를 한 뒤에 남은 흔적일 뿐이었다.

  

행위 예술은 1950년대 말에 해프닝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다. 해프닝을 제시한 작가들로 존 케이지, 그리고 백남준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존 케이지는 <4분 33초> 작업으로 굉장히 유명하다. 그는 4분 33초 동안 피아노 앞에 앉아서 아무런 연주를 하지 않으며, 그 시간 동안 관객들이 내는 소리, 갖은 소음 등 그 공간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들이 음악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백남준은 그 당시 아주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행위 예술들을 시도했다.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에서 그는 피아노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또한 본인의 작업을 보러 온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가위로 자르는, 아주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시도하기도 한다. 당시 사회적 관념들이 구분 지어 놓았던 음악적 요소와 비음악적 요소의 경계를 허무는 행위들을 시도했다. 음표가 그려진 전형적인 악보가 아닌 텍스트 악보를 만들고, 그곳에 행위를 적어 놓은 뒤에 그 행위를 수행하며 그때 생성되는 모든 소리 또한 음악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2. 행위예술은 사고팔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렇게 결과가 아닌 과정을 중시하는 행위 예술은 과연 사고팔 수 있는 것일까? 물론 그전에 예술이 공공재인가, 사유재인가, 더 나아가서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부터 따져야겠지만 그 문제는 일단 차치하고, 최근의 미술계 경향을 보면 퍼포먼스 또한 충분히 거래될 수 있으며 이 부분에 대해 점점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몇 년 동안 유럽의 미술계는 퍼포먼스라는 장르에 특히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작품의 소장과 판매, 유통은 작가와 작품 그리고 관객 모두에게 중요한 과정이다. 작품이 팔려야 작가에게 경제적인 수입이 있을 수 있고, 금전적인 문제의 해결은 우선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며, 수입이 있어야 생계유지와 다음 작업에 대한 원동력도 생길 것이다. 특히나 몸으로 하는 작업인 만큼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밥은 먹어야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퍼포먼스 아트의 판매와 소장은 작업의 보존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작품을 기록하고 아카이빙하는 것은 후의 예술사 연구와 미학적인 측면을 공부해나가는 모든 사람에게도 유용한 자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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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임호프 <파우스트>

 


미술계에는 비엔날레라고 불리는 행사가 있다. 2년마다 열리는 이 행사는 국제 행사로 현재 많은 지역에서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광주 비엔날레가 유명하다. 전 세계의 많은 비엔날레 중 역사가 가장 길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것은 베니스 비엔날레다.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최고의 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작품 또한 퍼포먼스 아트였다. 앤 임호프Anne Imhof의 <파우스트>는 온통 유리로 둘러싸인 방에서 작가가 폰으로 보내는 메시지에 따라 퍼포머들이 기괴한 퍼포먼스를 펼친다. 생닭을 뜯거나, 바닥을 혀로 핥는다. 인간 본성을 탐구하며 우리 시대 상황을 효과적으로 은유했다는 평을 받았다.

  

2019년 올해 수상작 역시 <태양과 바다>라는 퍼포먼스였다. 미술 전시장은 모두 인공해변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래사장이 펼쳐진 곳에서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일광욕을 즐기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다. 햇빛이 너무 뜨거워서 살이 탈 것 같아 같은.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노래가 시작되면서부터다. 어두운 장송곡 같은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환경 재앙을 경고하는 노래들을 곳곳에서 부르기 시작한다. 이 작품은 우리의 일상처럼 여겨지는 휴가가 더 이상 일상이 될 수 없음을 경고하는 작업이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수상작이 모두 퍼포먼스였다는 것만 보더라도 퍼포먼스에 대한 지금의 예술계가 가진 관심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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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관 <태양과 바다>

 

 

  

#3. 어떻게 소장할 것인가?



지난 9월 초 벨기에 브뤼셀에서 퍼포먼스 아트페어 ‘A Performance Affair(APA)’가 개최되었다. 아트페어는 일반적으로 몇 개 이상의 화랑이 한 장소에 모여 미술 작품을 판매하는 행사다. 간단히 말해 미술시장이다. 미술 시장 기능을 활성화하고, 더 나아가 화랑 간의 정보교환이나 관계 맺기 등의 의미 또한 있다. 퍼포먼스 아트페어라는 것은 말 그대로 퍼포먼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퍼포먼스 예술만을 사고파는 장을 열었다는 뜻이겠다. 그런데 아직도 퍼포먼스가 돈으로 거래된다는 것은 쉽사리 상상되지 않는다. 행위의 과정을 어떻게 소장한다는 말일까?

  

현재 알려진 퍼포먼스 아트가 거래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진이나 영상같이 기록물이 남아 있는 경우 이를 거래하는 방식이다. 퍼포먼스는 결과가 없고 과정만 존재하기 때문에 그 과정을 포착한 가시적인 이미지들을 거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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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노 세갈 <키스>


 

하지만 행위 예술가 중에 이런 기록 자체를 거부하는 예술가도 있다. 티노 세갈의 <키스>가 그것이다. 그의 개인전의 홍보 자료 어디에도 그의 작품 사진은 존재하지 않았다. 작가 본인의 사진 또한 실리지 않았으며, 전시 카탈로그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키스 행위를 작품화해 왔던 과거 작업들의 동작을 퍼포머들이 그대로 따라 하도록 지시했다. 전시장에서 남녀가 키스를 나누를 행위와 포즈들를 반복해서 진행한다. 누군가 사진을 몰래 찍어 인터넷에 업로드하면서 기록이 남기는 했지만 그 몇 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로만 남았다.


이렇게 기록이나 어떠한 물질로 남지 않은 작품은 구두로 판매되기도 했다. 실제로 티노 세갈의 <키스>는 7만 달러에 판매되었다. 한화로 약 8천만 원이 넘는 금액이다. 그의 작품은 오로지 기억 속에서 보존되고 소장되며, 입에서 입으로 판매되고 구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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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벤 세게르 <헬프>

   


기록과 구두. 하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퍼포먼스가 유통될 가능성은 없을까? 최근 아트페어에서는 전시장에서 퍼포먼스를 진행한 후 큐레이터, 작가, 컬렉터, 기관 디렉터가 함께 작품 소장 조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판매된 작품으로는 리벤 세게르Lieven Segers의 가 있다. 바닥에는 천장을 향해 돌아가고 있는 작은 선풍기가 있고, 그 위에 흰 풍선이 빙빙 요동치고 있다. 풍선은 더 올라가지도 못하고, 내려가지도 못한 채 그저 제자리에서 돌기만 할 뿐이다. 그 풍선에는 H, E, L, P 알파벳이 새겨져 있다. 이 작품은 우리의 삶을 해학적으로 은유했다는 호평을 받는다.

  

이 작업의 구매자에게 작가는 1년에 한 번씩 방문하여 직접 설치를 진행한다. 이 작업은 물질이 있고, 과정 중심이라기보다는 설치 작업에 가까워서 퍼포먼스 작업으로 보기 어려울 수도 있으나, 집중해서 볼 부분은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협의 내용이다. 1년에 한 번씩 작가가 집에 방문하여 작업을 설치해준다고 생각해보시라.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재미있는가! 유통과 소장 조건 또한 굉장히 행위 예술스럽다.


프리즈Frieze 아트페어에서는 퍼포먼스 아트의 유통 구조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기도 했다. 일종의 계약서 양식이나 합의된 약속이 있다면 퍼포먼스 아트의 구매와 판매가 더욱 원활하게 진행될 것이다. 행위 예술 또한 서로의 약속과 규정들이 잘 정해진다면, 충분히 새로운 방식으로도 거래가 가능할 것이다.

 

 

“미술관이 가진 현재성을 고려했을 때, 퍼포먼스 예술의 소장은 결코 충격적인 일이 아니며, 미술관이 퍼포먼스를 관객에게 소개하는 것과 그들을 위해 장소를 제공하는 역할은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예술과 흥미로운 관계를 갖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 퍼포마 설립자 로즈리 골드버그


   

행위 예술의 역사는 불과 100년 남짓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아트페어에서도 퍼포먼스 아트라는 분리된 섹션이 만들어질 정도이며, 계속해서 담론과 워크숍이라는 장을 만드려는 시도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기존의 작품 소장과 보존의 방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순간의 예술을 어떻게 보존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관심이 더 높아지고 있는 만큼 퍼포먼스 예술의 특성에 대한 연구는 계속해서 진행될 것이다.

   

 

[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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