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광장은 어디에 있는가? [시각예술]

송성진 <한평조차>와 김희천 <썰매>를 중심으로
글 입력 2019.10.07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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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과천관, 서울관에서 50주년 기념전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전을 개최했다. 시대를 기준으로 1부, 2부, 3부로 나누어진 이번 전시는 1부에서 1900년부터 1950년까지를, 2부에서는 1950년부터 2019년까지를, 3부에서는 2019년의 작품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 서울관에서는 2019년 9월 7일부터 2020년 2월 9일까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광장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작가 11명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번 전시의 테마를 큰 담론으로 확장하자면 예술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해 묻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 소개에 의하면 “광장은 공동체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다. 공간과 예술, 그리고 그 사이에 침잠해있는 사회라는 것에 대한 질문에 작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질문하고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거대한 집 한채가 눈에 띈다. 송성진 작가의 <한평조차>라는 작품이다. <한평조차>는 “집을 짓고 온전히 존속시키는 과정을 통해 개개인의 생존 투쟁이 일상화된 시대를 이야기한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것은 집이 더 이상 ‘안전’하거나 ‘정지’된 공간이 아니라는 점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의 집 짓기 기록노트에서 알 수 있듯, 집을 만드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집은 개인이 온 힘을 다해 성취해내야 하는 것이며 성취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유지하는 과정이 녹록치 않다. 작가는 경기도 안산이라는 구체적 지리 정보를 관람객에게 제시하면서 이것이 현재 한국의 현주소임을 강조한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이주, 혹은 삶이라는 거대한 담론으로 확장시키기는 원치 않는다. 거대한 담론으로 확장될 수록 작품의 원래 의미가 퇴색되는 느낌이 없지않아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이 작품은 무엇보다 ‘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집이라는 것이 마치 갯벌에 떠있는 나무 덩어리들처럼 부유하고 미끄러지는 공간임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이 작업물을 갯벌에 설치하면서 집에 정착하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집은 안전하지 않고, 외부의 힘에 의해 언제든 부서지거나 떠내려갈 수 있다. ‘한 평 조차’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 수 없는 공간의 무너짐, 그리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무력감은 이 작업을 지탱하는 담론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작가가 꾸준히 집을 짓고 그 집을 정착시키려 노력하는 것은 그럼에도 안전한 공간을 찾으려는 공동체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김희천 작가는 안전한 공간을 찾으려는 시도를 색다른 방식으로 재현해낸다. 송성진 작가의 작업이 매우 물리적이고 구체적인 현실의 모습을 담보하고 있는 것과 달리 김희천 작가의 작업 <썰매>는 가상적 공간에서의 안전이 위협당하는 상황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스크린은 일그러져 있고 삐뚤어져 있으며 여러 이미지들은 마치 포토샵의 레이어를 연상시키듯 겹쳐져 있다. 사운드 역시 혼합되어 집중하지 않으면 의미 전달이 힘들 정도다. 이 작품의 이런 ‘일그러짐’은 단지 형식적 표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일상의 사람들의 얼굴 역시 일그러져 있으며 내용 역시 이미지처럼 여러 레이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형식적 구성은 <썰매>가 전달하고자 하는 온라인 공간에서의 혼종적 상황과도 상통한다. <썰매>는 “휴대폰과 노트북을 분실하는 순간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공포감에 빠지게 된 작가의 경험을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아, 여기에 신종 자살 클럽을 취재하는 나레이션, 그리고 광화문 일대를 배경으로 하는 레이싱 게임의 이미지를 교차시키면서 전개된다.”(전시 설명에서 발췌)여러 레이어들의 이미지와 사운드는 작가의 내면 심정을 직관적으로 재현할 뿐 아니라 관객 마저도 혼란에 빠트리면서 일종의 공포적인 감정을 유발한다. 이때의 감정에 대해 작가는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그저 이 상황에 대해 혼란스러워 할 뿐이다. 이 작품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모종의 감정에 대한 감정적 소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19년 현재, 광장은 어디에 어떤 모습을 하고 우리 앞에 놓여있는가? 공간은 다원화되었고 우리는 다양한 공간 사이에 끼어 생존투쟁을 벌이는 한편 그를 만들어내고 부추기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 다양한 개인들이 모여살고 다양한 공간 속에서 뒤섞여 생활하는 현재, 우리는 ‘한 평 조차’ 갖지 못하기도 하고 ‘썰매’처럼 항상 미끄러지는 삶을 살고 있기도 하다. 이 현실과 감정의 공간 속에서 어떤 답을 찾아나가야 하는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선택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송성진 작가와 김희천 작가는 각자의 방식대로 광장이라는 공간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당신의 답은 무엇인가?

 


[김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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