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람과 가장 가까운 무도, 탈춤. "가장무도 - 숨김과 드러냄" 리뷰

글 입력 2019.09.2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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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국악원에 처음 가봤다. 남산국악원 입구 장터에선 초가집 모양의 부스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전, 옥수수, 식혜 등 입맛 도는 전통 음식으로 가득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배부르게 먹지 말걸. 후회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고소한 냄새를 도저히 모른 척 할 수 없었던 나와 친구는 사이좋게 호박전 1인분을 나눠 먹었다. 전엔 식혜가 제일이지! 라며 식혜도 두 잔 사서 마셨다. 해외에 나가면 주말에 열리는 플리마켓에 꼭 가보는데, 우리나라에선 왜 안 해봤을까. 우리나라 전통 음식 플리마켓도 매주 열리면 좋겠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사람 구경도 하고 산책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시간이 남아 산책을 했다. 이날은 비가 와서 물안개가 끼어 있어서, 마치 조선 시대로 시간 이동을 한 기분이었다.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니 조각품은 물론 속이 뻥 뚫리는 경치가 우리를 반겼다. 한 바퀴 돌고 내려와 공연장 쪽으로 가니,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관이 보였다. 이곳은 무료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물건들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책도 뒤에 걸린 은수저도, 시간의 깊이를 아름답게 드러냈다. 인증샷을 찍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2019 우수공연공동기획_가장무도-숨김과 드러냄_포스터(최종).jpg
 


탈춤은 처음이라..



<가장무도 - 숨김과 드러냄>은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이매, 북청사자놀음의 사자 등 각 탈춤에서 유명한 등장인물을 조명한다. 공연 시작 전 사회자이자 이매마당의 이매를 맡은 배우가 나왔다. 공연 볼 때, 다른 건 필요 없고 그저 얼~씨구! 좋~다!를 외쳐달라고 했다. 이렇게 자유로운 공연 가이드라니! 편한 마음으로 공연 시작을 기다렸다.


먹중춤이 포문을 열었다.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몸짓에 조지훈 시인의 승무가 생각났다. 하이얀 한삼, 나비처럼 펼쳐 벌처럼 휘둘레라. 한삼의 움직임은 슬픔에 빠졌지만, 이 감정에 잠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먹중이 홀로 춤추다 목중들을 불러와 그들과 함께 무대를 마무리했다. 탈의 표정은 각기 달랐지만, 슬픔과 기쁨, 상념 등 마치 주인공의 여러 자아를 나타내는 은유로 보였다.


뒤를 이은 건 가산오광대의 할미춤이다. 할미는 재담으로 관객과 소통을 했는데, 그 내용이 자유분방해 여기가 공연장인지 집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배가 너무 하얘요.”, “할머니 배 많이 나왔어요.” 등등 관객이 스스럼없이 등장인물과 소통하는 장이었다.




현대와 맞닿은 꼽추와 문둥이의 슬픔



공연의 서문을 연 두 인물이 들어가고 사회자가 나와 다음 공연을 설명했다. 꼽추와 문둥이가 나오는데, 꼽추춤을 추는 배우는 극단의 유일한 여성인 박인선 배우가, 문둥북춤은 극단의 최연장자이자 최근 무릎 수술을 받았다던 허창열 배우가 맡았다. 다른 춤과 달리, 꼽추춤은 탈춤을 쓰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했다. 배우의 얼굴이 탈 같았다. 꼽추가 받는 설움, 그중에 느끼는 소소한 행복이 박인선 배우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원래 그런지는 모르나, 꼽추춤의 속도는 굉장히 느렸다. 팔을 펴는데도 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러어어어어어어어엏게에에에에에나 큰 노력이 들어갔다.


느린 동작 때문에 꼽추가 느끼는 고통이 배가됐다. 꼽추춤의 고행과도 같은 움직임을 보며 나도 모르게 꼽추에 이입했다. 그가 느끼는 감정이 회사에 다니며 느꼈던 부분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왜 나는 부족할까. 상사의 한마디에 울고 웃었던 날들이 떠올라 눈가가 시큰했다. 춤의 마지막, 꼽추가 탈을 썼다. 심장박동처럼 오락가락했던 표정이 탈에 가려졌다. 심장 박동이 멈춘 것처럼 미동이 없어졌다. 꼽추의 퇴장을 보며, 그가 감정 느끼기를 포기했다고 생각했다.


꼽추춤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문둥이가 나왔다. 문둥북춤은 한센병으로 손가락이 없어진 문둥이가 북과 나무 자루를 손에 쥐기 위한 사투를 벌이는 내용이다. 주저앉았다가 일어나길 반복하는 문둥이. 그리고 그가 북과 나무자루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모습에 또 한 번 나의 사회생활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카피를 쓰고, 수정하고 광고주와 협력사 사이에서 조율하고. 홀로 SEO며 컴포넌트 등의 내용을 공부해야 했던 때가 떠올랐다.


그와 동질감이 생기자 문둥이를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다. 꼭 소고와 나무자루를 쥐길. 나도 모르게 손을 맞잡고 춤에 빠져들었다. 마침내 그가 북을 잡고 장단을 추자 한숨 흘려보내고 자리에 편하게 기댈 수 있었다. 문둥이의 성공이 마치 내 성공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재밌는 걸 왜 지금 봤을까?



감정의 해일에 갇혀 해설자의 재담에 웃음 짓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다음 마당은 신명을 끌어올리는 인물들로 구성됐다. 연잎춤은 각이 딱딱 맞는 고갯짓과 손짓으로 소소한 재미를 주었다. 연잎춤 다음은 이매마당이었다. 이매는 등장조차 평범하지 않았다. 무대 뒤에서 내려온 그를 한 관객이 멈춰 세웠다. 그러곤 그의 배를 쓰다듬더니 만원 두 장을 꽂아주는 게 아닌가! 문화충격이었다.


언젠가 어르신들이 트로트 가수 공연을 보면 주머니에 5만원 권을 꽂아준다는 글을 본 적 있는데, 그걸 실제로 볼 줄이야. 이매와 관객이 스탠딩 코메디 급의 재담을 나눴다. 흥이 절정에 올랐을 때, 이매가 반응이 남달랐던 붉은 티를 입은 여성 분을 무대로 불렀다. 보통이 아니셨다. 이매를 따라하는 건 물론, 폴란드 관광객 두 명까지 무대로 불렀다. 이매와 여성 분 그리고 폴란드 관광객 두 명이 이매마당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마지막 무대는 북청사자놀음의 사자가 장식했다. 관객의 가방을 가져가기도, 딱딱 짖기도 하는 모습이 반려견 같았다.


큰소리 국악단원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초등학생 때 국악을 해서, 한 시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공연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안다. 특히나 태평소와 피리를 연주했던 분이 쓰러질까 공연 내내 그 분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오래 불면 어지럽고 어떤 때는 입술에서 피가 나기도 하는데 그걸 장장 한 시간을 하셨으니.. 창과 장구를 맡았던 분도 대금을 연주한 분도 공연 막바지엔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오랜만에 국악도 보고, 처음으로 탈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던 <가장 무도 - 숨김과 드러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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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 가장 가까운 무도, 탈춤



주변 인물이나 유추할 수 있는 상황을 보여주지 않은 덕분에 탈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조명을 받는 탈꾼은 빛이 나지만, 무대 뒤엔 그림자가 진다. 이 때문인지 한의 정서가 은근히 드러났다. 서양식 공연과는 달리, 흥이 나면 관객들도 “얼~쑤!”나 “좋~다!”를 외치고, 무대 위의 배우와 거리낌 없이 소통했다. 옆 사람과 얘기하며 봐도 전혀 거슬리지 않을 정도였다.


공연의 이름이 왜 ‘가장무도’였을까 궁금했는데, 무대 말미에 해소됐다. 관객과 가장 가까운, 우리나라 정서를 가장 잘 드러내는 공연이라는 의미에서 ‘가장’을 붙였다고 한다. 관객과 진정으로 소통했던 <가장무도 - 숨김과 드러냄>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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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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