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변환]NO_JAPAN_BOYCOTT_JAPAN_%C0Ϻ%BB%C1%A6ǰ_%BAҸſ.pn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1909/c768b78cff0512bf09133d3daa6813ca_4UzCIoFMuNUzfu.png)
최근 일본 불매 운동이 시작되었다. 사실 좋은 취지라고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애꿎은 식당, 가게, 회사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
이런 문제도 있다. 나는 대학을 다니고 있어서, 수업 시간 교수님들이 일본 불매운동 언급하는 걸 자주 볼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혹시라도 강의실에 일본인 유학생이 있는지 눈치를 보게 된다. 과연 한국에 거주 중인 일본인들의 생각은 어떨까? 하고.
타국에서 홀로 살아간다는 것, 어떤 기분일까. 사실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잘 모른다. 불가피한 상황 탓에 이민을 가서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사연들을 미디어로 접하긴 한다. 안타까운 데 조금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곳에서 시민권을 얻으려고 하는 건가? 그냥 조국으로 돌아오면 되는 것 아닐까? 라는 의문을 품기도 했다.
![[크기변환]20150905000113_0_99_20150905190005.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1909/c768b78cff0512bf09133d3daa6813ca_rOA7NMyD.jpg)
몇 년 전 방영되었던 무한도전 <배달의민족>편에서 소개된 일본 우토로 마을 이야기를 접하면서 내가 가졌던 의문들이 꽤나 경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제징용되거나, 가난에 못 이겨 타국으로 왔지만, 그곳에서 온갖 차별을 견뎌내야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쉽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너무 많은 것들이 변했고 그곳에서의 삶도 더욱 순탄치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이도 저도 못하는 재일교포들의 사연에 안타까움을 느꼈었다. (심지어 최근에 그 우토로 마을은 철거되었다고 하니... 마음이 더 아프다)

<시놉시스>
대학로에서 연극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신영주'. 2009년 여름, 영주는 일본 극단 '마사루'의 작업을 돕기 위해 일본 오사카를 방문하게 된다. 외로운 타지 생활이 될 뻔 했으나, 거기서 알게 된 재일동포 ‘지숙’의 도움을 받아 순탄하게 적응해 간다.
작품 번역 일을 위해 지숙의 도움을 받기로 한 영주는,하루 날을 잡고 연극연습이 끝난 후, 지숙이 하숙하고 있는 츠루하시 시장골목 잡화점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있는 김일성, 김정일 사진. 영주는 곧바로 얼어붙고 만다.
'혹시 이들은 간첩?'

자이니치의 국적은 일본인 외국인 등록 법에 따라 '한국' '조선'으로 표기 됩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직후 일본에 머물러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조선적'을 주어줬습니다. 해방 직전의 우리나라의 국호는 '조선'이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 내 자이니치들은 한국국적을 선택하는게 가능해지게 된 것입니다. 일본에서 그들은 영주권을 취득한 외국인으로 분류됩니다. 선거권도 없고 시민권의 일부인 참정권을 갖지도 못합니다. 권리가 필요하면 일본인으로 귀화하거나, 일본인이 되기 싫으면 외국인 거주자로 살아가거나 본인의 나라로 돌아가는 방법이 있는 거죠.
자이니치들은 평생 동안 어떤 한 나라의 소속이 되는 자격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고, 선택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대한민국 국적이었던 저는 그들의 고민과 그들의 아픔에 대해 몰랐습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영주'처럼 말이죠.
이건 작가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저의 이야기기도 합니다. 또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죠. 그들을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하는 저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자이니치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이야기.
- 연출 신명민 (창작집단 LAS 연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