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도시 '선릉'과 북카페 '북쌔즈' [문화 공간]

흙은 없지만 나무가 있는 곳
글 입력 2019.09.03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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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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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만나기 위해 선릉역의 테헤란로를 처음 방문했다. 말로만 듣던 빌딩 숲은 빌딩이 빽빽하게 우거진 곳이었다. 테헤란밸리라는 별명답게 차가운 유리창을 가진 빌딩들은 높게 솟아 있었다. 높은 빌딩들이 우거져 하늘을 보기 위해 한참 목을 꺾어 위를 바라봐야 했다. 초록의 가로수, 푸른 유리창, 회색 철근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도시는 던킨도너츠의 간판마저 화려하게 만들었다.


시간은 점심시간이었다. 거리에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선릉의 점심은 '번화가'라고 불리는 거리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모두가 회사원이었다. 회사원들은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가기 위해 사원증을 차고 무리 지어 거리를 걷고 있었다. 이 모습은 마치 고등학생들의 등하교를 보는 것만 같았다.


흔히 번화가라고 부르는 홍대, 신촌 등과 같은 지역은 보편적인 이유로 사람들이 모인다. 모이기 좋은 곳은 사람 간의 만남이라는 보편적인 모임의 목적을 가진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기 위한 약속 장소인 번화가에서 서로 만나 밥을 먹거나 카페를 간다. 그곳은 젊음과 유행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모종의 목적을 가지고 생겨난 도시가 아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각자 다른 이유로 움직이고, 다양한 목적의 시설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선릉은 일터였다. 선릉의 회사원들은 등하교하는 학생들처럼 모두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는 일도 다르고, 사는 곳과 나이 또한 달랐다. 하지만 비슷한 표정으로 거리를 지나다니는 것이 신기했다. 모두가 셔츠를 입고서 사원증을 걸고, 한 손에는 커피와 함께 빌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표정에서 설렘이나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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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금세 거리를 비우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들을 보면서 한 가지 알 수 있었던 점은, 모두가 '일'을 하러 왔다는 사실이었다. 선릉은 보편적인 만남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가 아니었다. 기업의 빌딩이 숲을 이루는 도시는 사람들이 일을 목적으로 모여들도록 했다.


선릉은 나무는 있지만, 흙은 없는 곳이었다. 가로수는 르네상스 사거리를 두고 보도를 따라 죽 늘어있었다. 빌딩 숲의 도보에는 초록 잎사귀와 나무 그늘이 많았다. 하지만 부자연스러운 도시의 풍경은 나무를 나무처럼 느낄 수 없게 했다. 가로수는 도시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자연의 숲을 떠나 빌딩 숲 사이로 옮겨진 나무는 도시의 부품이 되었다.


바쁜 도시 사람들에게도 자연이 필요했다. 하루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이곳에 와야만 하는 사람들은 자연을 그리워했다. 그래서 선릉은 흙이 없는 곳에 나무를 심었다. 도시 사람들은 나무는 많지만, 나무가 뿌리내린 흙을 밟을 수 없었다. 도보의 가로수는 선릉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자연이었다.




빌딩숲 속 북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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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릉역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북카페 '북쌔즈'에 방문했다. 북쌔즈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멋진 카페였다. 문화공간을 테마로 한 이곳은 책과 음악이 있으며, 강연도 진행되는 종합 문화 공간이었다. 건물의 기둥에는 최진석 교수의 철학 강연이 안내되었으며, 상단의 스크린에는 카페의 클래식 공연 사진이 지나갔다. 카페의 한구석에는 서점처럼 책을 보고 구매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있었다.


구석구석의 인테리어 또한 신경을 쓴 흔적이 보였다. 카페 2층에는 은은한 조명의 작업공간이 있었다. 카운터 앞 잠시 앉아 기다리는 의자 또한 고급스러운 가죽으로 카페의 분위기를 더했다. 섬세한 디테일까지 기분이 좋아지는 장소였다.


하지만 이렇게 문화가 가득한 공간에도 나는 알 수 없는 어색함을 지울 수 없었다. 문화와 여유를 전하는 카페였지만 방문하는 사람들은 조금 달랐다.


점심시간의 카페는 발 디딜 틈 없이 직장인들로 가득했다. 이들이 발산하는 분위기는 일과 생업의 진지함이었다. 어느 누구 가벼운 사람이 없었다. 웃으며 수다를 떠는 사람들이나 피곤해 잠시 눈을 붙이는 사람들까지, 모두 몸에 힘이 들어가 어딘가 집중하고 있는 인상을 주었다. 각자의 행동은 달랐지만 모두 일에 연결되어있다는 공통점이 보였다.

 

넓은 테이블에는 중년의 여성 몇 분이 차분하게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여유로운 오후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지만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모습이 진지했다. 반대편의 테이블에는 젊은 남성들이 각자 노트북을 펼쳐 둘러앉아 있었다. 그들은 검은 바탕의 흰 글씨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프로그램을 다루고 있었으며, 무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양복을 갖춰 입은 중년 남성들은 피곤해서인지 의자에 누울 듯 앉아 잠시 졸고 있었다. 사람들은 문화가 가득한 북카페에서도 일과 연결되어있었다. 일을 잠시 피해서 온 사람들도 결국 일을 이어나가려 일터로 돌아갔다.


이들은 문화를 즐기러 왔지만 즐길 수 없었다. 북카페에서 책을 읽을 수 있어도, 실제로 책을 읽고 있던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카페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그 많던 사람들은 사라졌고, 남은 사람들도 한 시간 이상 머무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잠시 들렀다 또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였다.




흙은 없지만 나무가 있는 곳



북카페에서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이들이 정말 문화를 즐길 수 있는지' 의문이 생겼다. 바쁘게 일을 하다 잠시의 휴식으로 제대로 책을 읽고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출근한 도시에서 문화를 즐기는 일은 너무 어려워 보였다.


북카페가 제공하는 '문화생활'은 시간과 상황의 여유로움 속에서 즐길 수 있다. 마음과 정신의 안정을 가져다줄 문화를 찾는 일은 차분한 여유가 필요하다. 일을 잠시 생각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여유와 시간의 문제일 때가 있다. 하지만 반대로, 시간이 촉박한 와중에도 문화생활을 찾는 것은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준다. 삶의 질에 대해 의심이 생길 때, 바쁜 일상에서 챙길 수 있는 문화는 곧 마음의 여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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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선릉의 북카페는 역설적이다. 여유가 없는 선릉의 직장인들은 북카페의 문화를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북카페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고 있었다. 직장인들에게 북카페는 여유가 없기 때문에 제대로 즐길 수 없었지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장소처럼 보였다.


누군가에게 여유로운 휴식인 책과 음악은 누군가에게 숨 돌릴 잠깐의 틈이었다. 그래서 선릉의 북카페는 더욱 문화를 채우려 할지도 모른다. 완전한 안식을 누릴 수 없는 도시의 문화생활은 온전할 수 없지만, 안식이 없기 때문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잠깐이라도 더 나은 휴식을 제공하는 것이 선릉의 북카페가 하는 일이었다.


선릉의 흙이 없는 나무는 사람들에게 녹음을 채워준다. 마찬가지로, 여유로움 없는 북카페는 사람들에게 안정을 준다. 완전한 여유보다는 잠깐의 휴식이 필요한 선릉에서 사람들은 북카페에서 잠시 머물다 간다.





[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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