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행] 덕질 기록 8 : 일러스트레이터 언널브(un.nerve) interview

글 입력 2019.08.14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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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우울을 품에 안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우울을 느낄 새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누군가는 우울감을 숨기기에 급급해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우울이라는 늪에 잠식되기도 한다. 늘 애써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한낱 우울이라는 감정은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병으로 찾아오기까지 한다.


늘 행복할 수만은 없는 삶이라, 우리는 우울이라는 숙명을 안고 살아간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기분, 내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가 된 듯한 이 기분은 삶의 매 순간 예고도 없이 문득 찾아오곤 한다. 이러한 어둡고 쓸쓸한 감정을 그려내며 위로와 메시지를 건네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있다. 덕행의 8번째 인터뷰는 '우울'을 주제로 한 일러스트를 그리는 작가 언널브(un.nerve)와 함께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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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기에 무서운가, 보이지 않기에 무서운가

이미지 출처 - 언널브 인스타그램 (@un.nerve)



Q. 안녕하세요, 아티스트 언널브(un.nerve)님! 덕행의 여덟 번째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독자분들에게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주로 흑백 낙서를 그리는 언널브라고 합니다.



Q. 활동명인 언널브(un.nerve)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담고 있는 의미나 탄생 비화가 궁금해요.


제 본명의 일부인 nerve(신경) 라는 단어 앞에 부정의 un을 붙이면 내가 나임을 부정한다는 의미와 동시에 ‘불안하게 만들다’라는 뜻이 생겨요. 제 나름의 어두운 언어유희로 짓게 됐어요.



Q. 작품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시게 되었나요?


음..작품 활동이라기엔 너무 소소해서.. 2017년 즈음부터 sns에 자잘한 낙서를 그려서 올리고, 간간히 페어를 나가면서 홍보를 해온게 지금의 모양새를 그나마 갖추게 해준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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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언널브 인스타그램 (@un.nerve)


Q. 2017년부터 올해까지 서울 일러스트페어에 참여하셨어요. 인스타그램의 관련 게시물들을 보면 행복한 추억이 되신 것 같아요. 이번 서울 일러스트페어에 참여하신 소감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사실 이번 페어는 정말 부끄러웠어요.. 물론 매번 페어를 나갈 때 마다 엉성했지만 이번엔 특히 더 신경을 쓰지 못한 탓에 휑한 부스가 절 더 작아지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의 과분한 관심과 공감들이 쏟아져서 페어 기간 동안 너무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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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언널브 인스타그램 (@un.nerve)
 

Q. 작가님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하고 가질 법한, 깊은 곳에 자리한 내면을 보여주시는 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우울감이 담긴 작품들을 많이 보았는데요. 작가님에게 우울이란 감정은 어떤 것인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불운한 일들을 하도 많이 겪다보니 성격이 예민해지고, 거의 매일 꾸는 악몽에 현실이 흐릿해지며  ‘나는 불운을 타고난 참 못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에 자존감만 낮아져왔어요. ‘불운한 나’에 대한 생각을 너무 깊게 해오다 보니 그게 쌓여서 어느새 우울이 되어 있더라고요.. 물론 너무 깊은 우울감을 느끼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적당한 우울감은 삶이 너무 가볍게 흘러가지 않게 잡아주니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가 되어 주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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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언널브 인스타그램 (@un.nerve)



Q. ‘우울’이라는 감정과 관련해서, 인스타그램 댓글에 남기신 ‘우울은 우울로 위로가 된다.’는 말씀이 개인적으로 굉장히 공감이 가고 와닿았어요. 평소 이러한 ‘우울’을 주제로 한 작품의 영감은 어디서 얻으시나요?


평소에 제가 느껴온 감정들과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느낄만한 감정들을 섞어서 그림을 그리는 편이에요. 제가 밝은 사람이었다면 참 행복한 일상툰을 그리는 사람이었을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감정에 대해 덧붙이자면, 저는 우울한 영화나 음악, 그림, 혹은 다른 이들의 상황 등을 보며 위로를 받아요. 사람들은 밝은 것을 보아야 밝게 살아진다고 충고하지만, 정작 우울한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케이스의 무언가에서 느낀 공감을 통해 위로를 받는걸요. 제 우중충한 그림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 주길 항상 바라요.

 


Q. 본인은 평소에 어떤 사람인가요? 작품 속의 모습과 평소의 모습이 차이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작가분이 이렇게 생기셨을 줄 몰랐어요.’ 혹은 ‘너가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을 줄은 몰랐어.’라는 말들을 종종 들어왔어요. 제 속은 시커멓기만 한데.. 스스로 제가 너무 못나서, 이런 못난 모습을 남들에겐 더더욱 보여주기 싫어서 겉모습을 잘 포장해온 것 같아요. 누군가 가까이 다가와 제 포장지를 확 뜯어 버릴까봐 항상 한발자국 물러서는 소심한 사람이 되어버렸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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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언널브 인스타그램 (@un.nerve)



Q. 작품을 통해 표현해보고 싶은 또 다른 감정이 있으신가요?


아직은 없어요. 우울이 최고거든요! 우울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서 희망적이냐 아니냐로 나눠서 표현하게 될 뿐, 다른 감정을 그리는 일에는 아직 흥미가 안생기네요.



Q. 작가님의 그림에 특정 캐릭터가 자주 등장하는데요. 그 캐릭터가 전체적인 분위기나 반영되어 있는 작가님의 감정을 잘 표현해낸다고 생각했어요. 캐릭터에 눈만 있는 이유가 있는지와 캐릭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해요.


일러스트나 낙서, 짧은 만화 등을 통해 저는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모순적이게도 너무 드러내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금방 울 듯한 눈을 가졌지만 입이 없어서 우는지 웃는지 모를 무표정의 캐릭터를 그렸었는데 자주 그리다 보니 제 시그니처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요새 힙함과 투머치의 경계가 모호하듯이 제 그림 또한 너무 감정에 치우치지 않도록 이 캐릭터가 선을 지켜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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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언널브 인스타그램 (@un.nerve)



Q. 많은 분들이 무채색 위주의 색감을 특히나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고요.) 언제부터 작가님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갖게 되었나요?


흑백은 제가 그리는 주제에 있어서 최고의 색 조합이라 생각해요. 가끔 다른 색들을 시도해 보아도 결국 흑백으로 그림으로 돌아오더라고요. 덕분에 어떤 색을 쓸지 크게 고민하지 않음과 동시에 무채색이 자연스럽게 제 스타일로 결정 난 것 같아요. 하지만 요새 들어서는 그림 내용에 따라 간간히 포인트 색을 쓰고 있기도 합니다. :)



Q.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업은 무엇인가요?


지금은 인스타 피드에서 제대로 볼 수 없지만.. 예전에 악몽이란 주제로 흑백의 조잡한 일러스트를 그린 적이 있어요. 부족함이 가득했기에 지금은 남들에게 선뜻 보여줄 수 없는 부끄러운 일러스트이지만, 생각해보면 그 일러스트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그림을 그려왔으니.. 제일 기억에 남을 듯해요.



Q. 작업을 할 때 추구하는 스타일이나 느낌, 혹은 가치관이 있으신가요?


요새는 ‘어떻게 하면 적당히 우울하면서도 위트와 팩트를 내재한 깔끔한 만화를 그릴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계속 되뇌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단, 저 까다로운 조건 덕분에 아직도 크게 만족할만한 그림은 못 그려낸 게 팩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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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언널브 인스타그램 (@un.nerve)



Q. 평소 어떤 아티스트의 모습을 꿈꾸시나요?


제가 무엇을 그리고 어떤 글을 쓰던, 그것이 보는 이들의 마음에 ‘턱’하고 걸렸으면 좋겠어요. 생각하게 만들고 은연중에 떠오르게 만드는.. 질척거리는 낙서쟁이가 되고 싶어요.




WITH?



Q.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으신가요? (작가, 뮤지션, 화가 등 어느 분야든 상관없습니다!)


아직까지 제 낙서가 감히 다른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어서. 하지만 돌아오는 메아리 하나 없는 평야에 외치듯 적어봅니다.. 기리보이.. 한요한.. 오르내림.. 염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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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언널브 인스타그램 (@un.nerve)



Q.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관계’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작가님께 이러한 영감을 주시는 특별한 인연이/누군가가 있나요?


‘관계’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과 다방면에서 겪은 일들을 뭉쳐서 두루뭉술하게 그릴 뿐, 누군가와 겪은 일을 너무 직접적으로 그려내는 것은 피하려고 하기에 특별한 대상은 없어요. 부정적인 그림을 대체로 그리고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제 가까운 지인들이 자신의 얘기가 아닐까 하고 오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항상 신경 쓰고 있어요.



Q. 작품을 통해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시는 만큼 평소 작가님의 모습이 궁금해지는 것 같아요. 평소 어떤 음악들과 함께하시나요?


사랑을 속삭이는 발라드 듀엣노래만 아니면 다 듣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사가 와닿는 힙한 음악을 굉장히 즐겨들어요. 기리보이, 한요한, offonoff, Rad Museum, colde, 결, 코스믹보이, 오르내림, 서사무엘, 우원재, 주영, 검정치마 등등.. 이라 하면 취향이 느껴지실려나.. 요 근래에는 ANDN의 음악에 푹 빠져있어요. 특히 10:49PM이라는 노래를 무한반복 중이에요.



ANDN - 10:49 PM Live Clip [영상 출처-AND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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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덕행’의 특별 질문입니다. 무언가를 열심히 좋아해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꽤 오래 생각했어요. 살아오면서 좋아했던 것들을 죄다 떠올려봤는데.. 과연 최선이었을 지가 전부 의심 가는 것을 보니,, 역시 헛살았네요.



Q. 언널브(un.nerve)님은 10년 후 무엇을 좋아하고 있으실 것 같나요?


10년 후.. 살아있다면.. 아마 고양이뿐일 것 같아요.



Q. 이전에 인터뷰에 응해주신 프로듀서 코스믹보이(Cosmic boy)님의 릴레이 질문입니다. “죽기 전 마지막 식사를 뭘로 드실 건가요?”


가능하다면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목구멍에 새우를 한 마리라도 더 쑤셔 넣다가 죽고 싶어요.



Q. 다음 인터뷰의 주인공에게 아무 질문이나 던져주세요!


다음 생에 뭐로 태어나고 싶으신가요? (참고로 전 파도가 잔잔한 무인도의 바닷가 바위에 붙은 거북손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Q. 인터뷰 이후에는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멋진 기회들이 생겨나기만을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자는 계획이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끝인사 부탁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어둡고 축축한 낙서들을 그릴 예정입니다. 연금복권이 당첨된다면 그 땐 밝고 귀엽고 상큼한 일러스트로 돌아올게요. 또한 덕행의 정성스러운 질문, 너무 감사합니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감정들이 어느 깊은 곳의 우리와 닮아아 있어 더욱 뜻깊게 느껴지는 언널브의 이번 인터뷰는 평소 그녀의 모습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음악 취향이 일치함에 괜한 내적 친밀감이 몰아치기도 했으며, 생각의 깊이가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답변들에 예상치 못한 위로를 받기도 했다. 공감을 통해 위로 받을 수 있다는 그녀의 말이 그대로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우울감을 함부로 내비칠 수 없는 사회임에도 언널브는 그녀의 감정을 부끄러워 하거나 애써 숨기려 노력하지 않는다. 그저 우울이라는 감정 앞에 마주서 자신이 느끼는 바에 충실한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솔직하고 대담해 보인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언널브가 또 어떤 형태의 우울감을 보여줄지, 어떤 ‘질척거리는 낙서’들로 찾아올지 자꾸만 기대된다.





intro. 김수민

outro. 맹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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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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