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끄럽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아는 바가 없었다. 무언가 ‘차별’이 나쁜 거란 건 알았지만, 정작 내가 여자라서 받아야 했던 차별에 대해서는 무감각했고, 어른들의 불평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능력이 되면 뭐든 될 거라 생각했다.
내가 젠더 이슈에 민감해지기 시작한 건 SNS 활동을 활발히 시작한 후였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접하게 되는 현실은 어린 날의 나의 희망처럼 모든 것이 아름답지는 않았다. 무언가 많이 잘못되고 있다고 느꼈다.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다. 내가 겪은 일이 아니라면 더더욱 알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래서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 미디어는 우리의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곳을 가장 적나라하면서 공감할 수 있게 보여준다. 미디어를 통해 느끼게 되는 것들은 하나의 경험으로 남을 수 있다.
젠더 감수성이 민감해진 후 그 현실을 고발하는 미디어에 대한 갈증을 많이 느낀다. 계속해서 그 문제에 대해 마주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다시 무뎌지기 때문이다. 내가 직시하게 된 것들에 대해 또다시 무뎌지고 순응하고 싶지 않다. 나는 계속해 깨어 있고 싶다.
<제19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은 나에게 젠더 감수성을 더욱 깨워줄 좋은 자극이 될 것 같아 큰 기대가 된다. 한 편으로는 또다시 마주해야 할 현실, 그것도 국가라는 큰 틀을 직면하게 될 것 같아 두려운 마음도 있다. 하지만, 국가야말로 국민으로서 진정으로 깨어 있어야 할 개념이 아닌가 싶다.
태어난 후 바로 소속되는 집단인 국가. 국가는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국가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어떤 것과 접목해도 끝없는 답을 내야 할 만큼 국가는 우리에게 큰 존재이다.
한국 사회는 과도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여성 운동에 있어서, 현재 많은 논란이 있고, 계속해 새로운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문명 이후 늘 권력을 쥐고 있던 남성들. 그 권력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과 이제야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가려 하는 여성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마찰은 여러 의미를 내포한다.
국가의 시스템을 결정하는 소위 ‘고위층’은 남성이 주류를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부장적 국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가부장적 시스템은 익숙한 문화이다. 어려서부터 봐오던, 자연스러운 생태계이기 때문에 현재의 사회적 움직임에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분명히 시대가 변함에 따라 시스템과 국가는 변해야 한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기에, 국민들이 깨어 있어야 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국가는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다. 국민이 직접 움직여 변화시켜야 할, 우리의 정체성이고, 우리의 소속 집단이다.
나는 국가 앞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꼭 주인의식을 심어주고 싶다. 어쩌면 주인의식이 없는 국가는 거대한 괴물과도 같을 수 있다. 국적이 정해져 있기에, 국가의 시스템 역시 그저 그렇게 정해진 모든 것들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국가의 주인이 되는 순간, 모든 것은 변한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내가 국가에 주인의식을 갖게 된 것은 외국 생활을 시작한 후였다. 한국이 그리웠던 것도 맞지만, 외국에 나가보니 타지에서는 나만이 한국을 대표할 수 있었다. 또한 한국 사회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여기는”이 아닌 “그곳은”이 되니, 내가 국민으로서 너무 주인의식 없이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한 문제들이 있다. 젠더 문제를 비롯해 국가가 지닌 많은 문제와 한계점들이 있다. “헬조선”이라며 한국을 마냥 비하하고 피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그렇게 돼야 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맞서야 하고,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19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은 한국 뿐 아니라 다양한 국가의 젠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국가가 어떻게 가부장제와 여성 혐오를 이끌었는가. 계속해 질문을 던지고, 역사와 현실을 제시한다.
이번 페스티벌을 통해 아마도 내가 미처 마주하지 못했던 다양한 문제들을 마주할 기회가 될 것 같다. 어쩌면 나는 많이 불편할 수도 있다. 어쩌면 조금은 환멸감이 들 것도 같다. 하지만, 그걸 바란다. 내가 조금 더 깨져서 조금 더 많이 볼 수 있길 바란다.
사회 운동의 형태는 다양하다. 미디어의 보급으로 더 많고 다양한 종류로 움직임이 발생하고 있다. 미디어를 통한 간접 경험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준다.
지금까지 국가라는 명목하에 만들어진 성적 불평등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다면, <제19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을 참여하길 바란다. 영상 속의 이야기들은 분명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고, 평소에는 가질 수 없던 넓은 시야를 제시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네덜란드 마를린 호리스 감독 작가 회고전 개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