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모델] 유아영

글 입력 2019.07.19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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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말이 많지도 않은 친구다. 항상 어딘가에 있어도 자연스럽게 있고, 그런데도 존재감이 있었다. 거의 2년만에 만났다. 잘 알지는 못해도 낯설지 않은 기분. 친구 중에 '조용한 또라이'가 꽤 있는데, 이 친구도 그런 과 같았다. 그리고 내 예상이 맞았다.

늘 그렇듯 자기 소개를 물어보았다. '자기소개'를 물으면 사람마다 대답이 항상 다르기 때문에 특징을 파악할 수 있어서 물어본다. 이번 쟈기소개로 인해 인생 전체를 듣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인생이 예측했던 것이랑 다르게 흘러가는 아영입니다."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기운을 뿜는 대답이었다. 왜? 어떻게? 라고 질문 하나만 했는데 ...

"내 인생은 전부 예측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어. 그리고 특별한 계기도 없었어. 나는 어릴 때부터 늘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초등학생 떄 하고 싶었던 직업을 꼽아보니 30개가 넘었다니까. 근데 그렇게 지내다가 고3에 갑자기 의사가 하고 싶어졌어.아무런 이유 없이. 그래서 재수 삼수를 했는데 잘 안됐지, 3수때는 내가 이유도 없이 왜 의사가 되고 싶을까 고민하면서 수능을 망쳤어. 그렇게 대학을 갔어. 겉으로는 잘지내도 속은 항상 침체되어 있었어. 집도 엉망인 채로 살다가,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어. 6개월을 있었는데 거기서도 열심히 지내지는 않았어. 대신 한국과는 달리 현실과 동떨여저셔 고민 없이 지낼 수 있었지. 그러다가 갑자기, 이번에도 계기 없이 뭔가를 꺠달았어.내 인생은 단 한 번 뿐이고,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다는 걸. 후회하면서 지냈던 시간들이 생각나면서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고. 갔다 와서는 의사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고 학과 생활을 열심히 했어. 나는 연구직도 잘 맞았어. 그래서 대학원을 갈까 고민했는데 이번에도 그냥 이유없이, 마케팅이 잘 맞을 것 같아서 마케팅으로 일하고 있어. 그래서 지금은 마케팅이야. 일한지 1년이 됐어. 하지만 또 모르지, 나중에 다 때려치고 의사된다고 또 공부하러 갈지."


아영1.jpg
 

보통은 그림 그리고 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어쩌다보니 인생을 벌써 들어버렸다. 뭐 어때, 이런 방식도 있는 거지. 규정이 없어서 더 자유롭게 흘러가는 화가의 모델이다.

벽에 기댄, 굉장히 편한 자세로 있었다. 내가 사람들 그린 그림은 전부 다 비슷해 보이면서도 조금씩 다르다고 했다. 내 스타일이 다 비슷하긴 하지. 예전에는 벗어나고 싶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해탈했다. 뭐 어떻게 해 이것도 나인데.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을 칠했다. 나른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눈코입을 그렸다. 빨간 볼과 눈, 초록색 입을 그리고 싶었다.

제 그림 어때요?

"자고 싶네요."

"어떻게 보면 복이지. 돈 걱정 없이 여유롭게 살 수 있는 것이. 하다가 싫거나 안맞으면 그대로 관두면 되니까."



아영2.jpg
 


"난 입꼬리가 쳐저서 신경쓰였어. 그런데 캐나다가서는 편하게 지냈었거든. 사진을 보니까, 전부다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인거야.. 입꼬리도 다 올라가있었어. 좋아서 활짝 웃는 모습이었어. 예전에는 입에 힘주고 있었는데 지금은 잘 웃는 것 같아."

까만색을 좋아한대서, 까만색으로 그림을 시작하니 좀 무서웠다. 입꼬리가 너무 잘 올라가있는데? 난 입꼬리에 대해서 고민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게 고민일 수 있구나 싶기도 했다. 까만색 덕분에 그림이 굉장히 강렬해져서 어떻게든 그리고 있는데, 사람은 노란색인데 이상하게 머리색은 파란색이었다. 머리카락은 자꾸 하늘색 파란색으로 나왔다. 강렬한 색인데, 잘 어울렸다.

"입꼬리네. 턱이 갸름하네요."

역시 심플한 평이다. 그림을 마음에 들어하니 나도 기쁘다. 어쩌다보니 직장 생활 1주년 기념일에 같이 있어서 굉장히 뜻깊은 자리였고, 시니컬하면서도 귀여운 재미있는 친구였다.



[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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