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커서 보는 아동영화 ① : 찰리와 초콜릿 공장 (1부) [영화]

글 입력 2019.07.1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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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영화’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동문학’이라는 말은 한 분야로써 인정되어 널리 쓰이는 말인 데에 비해 ‘아동 영화’는 한 장르로 규정되기는 조금 모호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사용한 ‘아동 영화’라는 말은 ‘어렸을 때 봤던 영화’, 혹은 ‘어린이 관객이 많은 영화’ 정도의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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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필자가 대략 열 살 즈음에 봤던 영화이다. 그 당시에 이 영화가 친구들 사이에서 많이 회자가 되기도 했었고,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이름을 알고 있었을 정도로 화제였다. 그 당시 성인들 사이에서는 반응이 어땠는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내가 속한 또래 집단 안에서는 굉장히 인기를 끌었다.

    

어렸을 때 영화를 보고 나서 나에게는 ‘어린이스러운’ 감상만이 남아 있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찰리가 얻게 된 ‘황금 티켓’을 갖고 싶다거나, 온갖 먹음직스러운 간식들로 채워진 공장에 가보고 싶다거나, 호두를 까는 다람쥐가 귀엽다고 생각하는 등의 1차원적인 생각들에만 머물러 있었고, 그 결과 영화를 다 본 뒤에어느 것도 남지 않았다. 당연한 얘기다. 본래 어린 아이의 영화 감상이란 단순 명쾌한 것이 아닌가.

    

그렇게 영화를 잊고 있었다가 나는 우연히 대학생이 되고나서 동아리 사람들과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초콜릿 공장장 윌리 웡카의 초대로 황금 티켓을 얻은 아이들이 공장 체험을 한다‘라는 대략적인 줄거리만 기억하고 있던 나는 영화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영화가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였나?”

 

내 머릿속에 떠오른 첫 문장이었다.

 



영화의 대주제

– 물질숭배와 기계주의


 

동심이 깃든 영화에 '물질'이니 '기계주의'니 하는 용어가 웬 거란 말이냐! 그러나 영화 내내 화면에서 보이는 게 온통 그런 것인데 어찌한단 말인가. 아마 이런 사회 비판적인 시각에서 영화를 분석하는 것이 새로운 해석도 아닐 것이다. 성인 때 처음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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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공장에 얽힌 두 남자가 있다. 찰리의 할아버지인 조는 무려 윌리 웡카의 공장에서 일했던 사람이다. 윌리 웡카의 초콜릿을 향한 순수한 탐구심을 존경했고, 그런 사람의 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명예롭게 여기며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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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공장의 노동자들 중 몇 명이 공장의 비밀 제조법을 빼돌리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윌리 웡카는 직원들에 대한 신뢰를 잃고 모두 해고하고 공장을 닫아버린다. 돈 때문에 양심을 파는 행위는 물질만능주의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시이다. 한 편, 억울하게 같이 정리되어 버린 조는 그대로 일자리를 빼앗기고 실의에 젖는다.

    

조의 실직으로 시작된 가난은 그대로 아들에게 대물림된다. 찰리의 아버지이자 조의 아들 버켓은 치약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치약 뚜껑을 닫는 작업이 그의 몫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단순 작업’은 곧 기계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공장이 요구하는 ‘효율성’ 기준에서 사람 손보다 정확하고 빠른 기계에게 가볍게 밀려버린 버켓은 그 뒤로 공장에 나가지 못하게 된다. 기계로 인건비를 줄이고 생산력이 증대된 공장은 더 많은 돈을 끌어모으고, 그곳에서 나가떨어진 도시 빈민은 빈곤의 굴레 속에 빠져버리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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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 웡카의 공장에 초대된 아이들 중 한 명인 버루카의 집안도 이러한 맥락을 쉽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사진은 오직 한 소녀의 공장 초대권을 위해 수많은 인력이 투입되는 광경이다. 윌리 웡카가 공정성을 위해서 티켓의 획득을 온전히 ‘운’에만 맡긴 것을, 버루카의 아버지는 보란듯이 '돈'으로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초콜릿의 양면성


    

영화가 사회 풍자의 의도를 담고 있다 하여도 그 속에서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만 읽어내는 것은 영 흥미롭지 못한 일이다. 하물며 114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아래 오직 하나의 메시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감독은 없을 것이다. 영화라는 것 자체가 누군가의 ‘의도’로 탄생한 것인만큼 그 안에는 수많은, 소위 ‘떡밥’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존재한다.


제목이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니만큼 ‘초콜릿’에 대한 얘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에서 과연 ‘초콜릿’이 어떤 위상을 지니고 있을지 유심히 지켜보았다. 나의 관찰에 의하면, ‘초콜릿’은 일관된 위치를 지키고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간략히 요약하자면, 영화 내에는 ‘초콜릿 긍정파’와 ‘초콜릿 부정파’가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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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 웡카의 아버지(사진-좌)는 영화에서 등장하는 대표적인 ‘초콜릿 부정파’이다. 직업이 치과 의사인데 오죽했을까. 그에게는 초콜릿을 포함한 온갖 단 과자들이 ‘이를 썩게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즉,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이다.


마이클 티비(사진-우)는 초콜릿 공장을 몸소 체험하러 온 아이임에도 불과하고 막상 초콜릿에는 큰 관심이 없다. 마이클은 수학적 재능이 타고난 비상한 머리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타고난 재능을 해킹에 악용하는 등 윤리적인 면은 많이 결여되어 있다.


그의 관심은 온통 폭력적인 성향의 게임에 편향되어 있으며, 그것이 그의 성격을 형성하는 주된 요소이다. 그래서인지 마이클은 찰리를 ‘패배자’로 부르는 등 게임의 룰에 입각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런 마이클의 시각 속에서 세상은 온통 ‘시시한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가득 찬 것으로 정의된다. 위 사진(사진-우)은 마이클이 유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면서 공장에 대해 평가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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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는 것들은 왜 하나같이

쓸모없는 것들 뿐이지?”



그러자 우리의 위대한 초콜릿 긍정파가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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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쓸모가 있어야 캔디는 아니지.

그래서 캔디잖아.”



윌리웡카의 아버지나 마이클 티비와 같이 단 것으로부터 즐거움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은 캔디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단 걸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캔디가 ‘쓸모 없는 것’인 것이 맞다. 그러나 '쓸모 없다고 느끼는 것'과 “쓸모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쓸모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엔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존중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초콜릿’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이라도 자신이 그 가치를 이해할 수 없다면 강하게 배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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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는 어떻게 보면 공장장인 윌리 웡카보다도 더 적극적인 초콜릿 애호가이다. 윌리 웡카는 아이와 같은 면이 있고 인생을 초콜릿을 연구하는데 쏟아 부을 만큼 애정이 크지만 그만큼 초콜릿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처음 아이들에게 초콜릿 동산(?)을 구경시켜 줄 때도 각별히 주의를 준다. 초콜릿에 현혹되지 말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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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만능주의 비판’과 ‘초콜릿의 의미’라는 두 가지 큰 맥락으로 이 영화를 바라볼 때, 영화는 이 세상에서 ‘쓸모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지지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도 같다. 물질만능주의 사상은 오직 ‘쓸모 있는 것들’을 추구하는 사람들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니 말이다. 아직 영화에 대해 못다한 얘기가 남아있기에 영화의 메시지에 대한 논의는 다음 편에서 이어가도록 한다.

(1부 끝)


[박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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