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인생영화③ [영화]

글 입력 2019.05.22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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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부터 5일까지, 3박 4일 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총 9편의 영화를 관람했다. VR 시네마의 경우 단편 4편을 관람한 것이기에, 각각을 한 편으로 세면 13편을 본 것이 된다. 개막식의 경우 3천 석 규모의 전주 돔에서 상영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예매가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반 영화들은 서버 접속이 느렸던 데다(강의실에서 태블릿 PC와 스마트폰으로 예매해야 했다.) 인기 많은 영화를 골라서인지 보고 싶었던 모든 영화를 예매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실패한 날에는 실패한 대로 전주 시내를 관광하리라 생각하고 기차에 몸을 실었지만, 막상 다시는 보지 못할 영화들을 눈앞에 두고 돌아서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7시에 매표소 앞에 줄을 서, 보고 싶었던 영화들과 주변의 영화 애호가들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영화들을 귀동냥으로 들어 현장 예매를 했다. 결과적으로 모든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고, 소개하고 싶은 영화들은 다음과 같다.

 



1.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And Your Bird Can Sing) -감독 미야케 쇼(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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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다테의 서점에서 일하는 ´나´는 실직 중인 시즈오와 작은 아파트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나와 서점에서 함께 일하는 사치코는 매일 밤 두 남자의 아파트로 놀러 온다. 그렇게 나날이 술을 마시고 당구를 치고 클럽에 다니는 세 명의 삶이 이어진다. 하지만 여름이 끝날 무렵 이들의 행복한 나날도 끝날 기미를 보이게 된다."


이 영화의 경우, 아주 극적으로 예매에 성공했다. 예매 오픈 당일에는 실패해서,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수시로 취소 표가 없는지 살펴보다가 일주일 전 딱 한 자리가 남아 있는 것을 바로 잡은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이 영화를 예매하려 했던 이유는 이 영화의 감독을 잘 알고 있어서도 아니었고, 이 영화가 전주국제영화제의 기대작이라는 기사를 봐서도 아니었다. 그저 일본 영화와 일본 감성을 좋아하는 관객으로서, 이 영화에서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추측`을 했을 뿐이다.


사실 영화제에서 영화를 고르는 법에 대해 오피니언을 쓰기까지 했지만, 취향이 명확하면 볼 영화를 고르기는 쉽다. 나의 경우 사소한 일상의 균열을 이야기하는 일본 영화들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런 영화들을 3편이나 골랐다. 그렇지만 트레일러 영상도 없이 스틸 컷 몇 장과, 짧게는 한 문장, 길어도 4~5줄 정도인 설명만을 읽고 영화가 나의 취향인지 판단하는 것은 상당한 운에 의존해야 하는 일이다(이 과정마저도 영화 같은 일이다.) 그리고 운 좋게도 이 영화는 완전히 나의 `취향을 저격`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 영화의 제목 `And your bird can sing`은 비틀스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고,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노래는 존 레넌이 친구였던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에 관해 작곡한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명하다. 당시 믹 재거가 자신의 여자친구였던 가수 마리앤 페이스풀을 자랑했던 것을 비꼬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음악에 대해 비교적 투명하게 밝혔던 비틀스가 직접 이야기하지 않은 이상 그다지 유효하지는 않은 것 같다. 오히려 가사 그대로, 모든 것을 가졌지만 ‘예수님보다도 유명한’ 비틀스의 삶은 가질 수 없다(가사 ‘but you don’t get me’)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더 합당해 보인다.


미야케 쇼 감독은 GV에서 `can sing`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영화 속의 세 인물은 자신에게 주어진 무언가를 계속해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영화이기는 하지만 장면만 놓고 보면 세계 그 어느 청년도 공감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이다. 글로 그들의 일상에 관해 쓴다면 한심해 보일 수도 있지만(실제로 하코다테의 청년들이 클럽을 가고, 야구장에 가고, 당구를 치는 것을 자기가 왜 보고 앉아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평도 있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을 안고 있고, 최소한 자기 앞에 주어진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는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로 훌륭하게 나타난다. 이 오묘한 영화에 대해 더 설명하고 싶으나, 스포일러 없이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아쉽지만 이 정도로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2.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If Beale Street Could Talk) -감독 베리 젠킨스(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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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볼드윈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은 최근 약혼한 할렘가의 여성 티시의 이야기다. 그녀는 첫 아이를 가진 상태로 연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다투는 중이다. 영화는 젊은 커플과 그들의 가족이 사랑을 통해 정의를 되찾고 아메리칸 드림을 다시 확인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국내 극장에서는 개봉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7시부터 줄을 서서 쟁취해 낸 영화다. `문라이트`의 감독 베리 젠킨스의 신작으로, 조연 레지나 킹은 이 영화를 통해 제 72회 골든 글로브와 제 91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기도 했다. 설명처럼 흑인 평등권 운동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 온 것으로 잘 알려진 제임스 볼드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의 설명만 읽으면 뻔하다 느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줄거리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다. 하지만 연출하는 방식은 기존의 영화들과 달리 아주 담백하고 섬세하다. 그간 흑인들의 인권을 주제로 한 영화를 몇 편 관람했다. 흑인 가정부의 이야기를 백인 작가가 책에 담으려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인 <헬프>와 미 항공 우주국의 첫 흑인 여성 엔지니어들의 이야기를 담은 <히든 피겨스>다. 영화를 볼 때는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고, 마치 흑인들이 받았던 차별에 대해 다 이해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나쁜 페미니스트(Bad Feminist)>라는 책을 통해, 흑인을 다루는 영화조차도 차별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저자 록산 게이는 아이티계 미국인으로, 이 책을 통해 여성에 대한 차별뿐만 아니라 미디어에서 다루는 인종 차별 문제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에 따르면 <헬프>에는 할리우드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일명 `마법의 니그로(Magical Negro)` 가 나온다. 이는 사회적으로 차별받지만 지혜롭고 너그러운 흑인 등장인물들이 어리석은 백인들을 계몽시키는 것을 비꼬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서사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흑인 배우들에게는 이런 역할만 주어진다는 것이 문제다.


이 영화는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하다. 차별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왜곡하려 하지 않고, 평범한 커플들에게 일어날 법한 일들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새 내가 마치 사랑하는 두 남녀와 함께 그 상황에 던져진 것처럼, 그들의 숨소리까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3.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Varda by Agnes) -감독 아녜스 바르다(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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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의 마지막 영화>는 매혹적인 이야기꾼 아녜스 바르다의 신작으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의 개인적인 경험을 선보이며 이른바 ´시네-글쓰기´에 대한 그만의 통찰을 제공한다. 프랑스 영화의 여왕으로 알려진 아녜스 바르다가 아카데미상 후보였던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 다음으로 선보이는 작품이자 마지막 연출작이기도 하다."


영화제 첫날부터 주변의 봉사자들이 입을 모아 보겠다고 하는 영화였기에, 궁금해졌다. 지난 3월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많은 영화인이 전하기도 했고,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도 좋은 작품이라 전해 들었기에 개봉 전 꼭 만나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 푸근하고 따뜻한 매력을 주는 감독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의 마지막 영화>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아마도 그녀의 유작이라는 점과 그녀가 영화라는 예술에 남긴 업적을 기리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영화를 찍는 것에 대한 영화, 일명 `메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후반 일어났던 프랑스의 영화 운동인 누벨바그(Nouvelle Vague)의 대모라고 불리는 아녜스 바르다의 마지막 영화로, 그녀가 그동안 찍어왔던 영화들이나, 설치 미술들에 관한 강연을 하는 것을 찍은 다큐멘터리다. 그녀는 영화 속에서 흐르는 시간과 현실에서 흐르는 시간을 같게 맞추거나, 도시 한복판에 사무실 같은 공간을 꾸미기도 하고, 자신이 찍은 영화의 필름들로 거대한 집을 만들기도 한다. 가장 `취향 저격` 당한 작품은 버려진 감자 더미 속에서 하트 모양 감자를 찾아 그것의 사진과 영상을 실제 감자들과 함께 배치한 <감자 유토피아(Patatutopia)>이다.


나는 나에게 없는 것들을 좋아한다. 그녀는 나에게는 없는,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있었다. 이미 영화를 본 지 2주 이상이 지났고, 아쉽게도 너무 지친 상태에서 영화를 봤기 때문에 모든 장면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녀의 인류애만은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다. 그동안 내가 어렴풋이 생각했던 예술의 개념을 그대로 구체화하여 보여주는 작품들도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지나치는 것들을 톡톡 튀고, 현실에 얽매여 있지 않은 방법들을 통해 현실로 가져오는 것이 그것이다. 다행히도 5월 30일부터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고 하니,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찾아주었으면 한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처럼 영화에 대한 영화를 ‘시네마톨로지’라는 섹션으로 분류하여 상영했다. 결국,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매체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내 책자 속 이 섹션을 소개하는 문구로 전주국제영화제 3부작 오피니언을 마무리하려 한다.


“과거를 풍미했던 영화의 역사는 동시대 감독들을 통해 현재의 역사가 된다. 과거의 영화적 시선 위에 겹쳐진 새로운 시선은 현재의 관객들과 호흡하는 영화적 경험이 된다. 그것은 영화를 통한 열정의 공유이며, 마르지 않는 영화적 상상력에 대한 존경과 애정의 표시이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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