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간 도둑은 바로 나? - 뉴필로소퍼 6호

뉴필로소퍼 6호, 당신의 시간은 안녕하십니까?
글 입력 2019.05.13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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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정말 부끄러운 일이 있었다. 나에게는 하루도 빠짐없이 연락하는 두 명의 절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 둘을 A와 B로 칭하겠다. 어느 날 나와 A는 약속을 잡았다. 시간은 저녁 5시 30분. 당일, 나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낮잠이 들었고 일어나보니 5시 20분이었다. 순간 숫자를 가리키는 시곗바늘이 시한부 선고 같아 아찔했다. 빠르게 뛰쳐 나가봤지만, 퇴근길 전철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약속 시각에 30분이나 지각했다. 나는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친구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 했다. 미안하다는 말밖에 전할 수 없었다. 결국 그날 커피와 저녁까지 산 후에야 A는 겨우 마음이 풀어진 듯 보였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날 이후였다.

며칠 뒤, 이번엔 셋이서 만나는 약속이었다. 나는 퇴근 후에 합류하기로 해서 5시 반이었고 A와 B는 5시쯤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B에게서 전화가 왔다. B가 약속 시각을 착각해서 아직 도착하지 못한 상태인데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에 나온 A가 화가 나서 연락을 끊은 상황이라고 했다. 그 전화 이후로 A에게서 문자가 왔다. “나 정말 기분 상해서 못 만나겠다. 둘이서 놀아. 미안해”.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아득해진 나는 급히 A에게 연락을 해봤지만 닿지 않았다. 나는 이 모든 게 며칠 전의 내 실수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만약 그때 내가 약속 시각에 늦지 않았다면 연달아 터진 B의 지각에 A가 화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죄책감이 몰려와서 B에게도 사과했다. 나의 큰 잘못 때문에 해프닝으로 그칠 수 있던 실수가 기폭제가 된 것 같다고.

A에게 가장 미안했던 것은 내게 준 신뢰를 깨뜨린 것이다. 그간 ‘시간’이란 약속을 쉽게 생각하고 10분 정도는 늦어도 괜찮겠지, 생각했던 게 아닐까 자신을 돌아봤다. 당당히 아니라고 할 순 없는 것 같아 창피하고 한심했다. 그리고 그의 시간을 30분씩이나 빼앗은 게 너무 미안했다. 한 끼 식사와 커피로도 메꿀 수 없는 게 바로 시간이다. 나의 지각으로 인해 그의 인생 중 30분이 낭비되었느니 갚을 방법이 없어 더욱 미안했다. 나의 시간이 소중한 만큼 다른 이의 시간을 뺏으면 안 됐는데. 지각이란 남의 시간을 뺏는 것이라는 당연하고도 심각한 사실을 그때야 깨달았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약속 시각을 어기지 말자고 B와 깊은 반성을 했다. 그렇게 진심을 담은 사과와 반성으로 겨우 용서를 받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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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집에 왔는데 언젠가 문화 초대 신청을 했던 <뉴필로소퍼 6호>가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시간’이 주제였던 것 같은데. '당신의 시간은 안녕하십니까?’라고 쓰인 표지를 보며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시간 도둑을 잡아라’. 그 시간 도둑이 바로 나였구나. 절로 숙여지는 머리가 또다시 반성 시간이었다. 시간의 중요성과 귀중함, 유한성을 말하는 책 속의 학자들에게 혼이 나는 기분이었다. 다시금 시간을 헛으로 여긴 것에 반성하며 책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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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나는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간다.’라는 말이 진리라고 믿고 살았다. 시간은 잡히지 않는 존재이며 멈출 수 없으므로 낭비하지 말고 순간을 살자고 말이다. 그런데 뉴필로소퍼 6호에서는 그동안 알고 있던 시간이란 개념이 틀렸다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알린다. 그들은 시간은 흘러가는 실재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과거-현재-미래라는 것은 인간이 만든 직관일 뿐이라는 진실은 그간의 상식을 뒤엎는 이론이다.

그러나 책 속에서 말하듯 사람들에게 이미 굳어진 '시간'을 바꾸기엔 역부족이다. 시간이란 것은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뒤섞여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것일까. 우리는 한평생을 그렇다고 믿고 살아왔는데.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와 닿지 않는다.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난 뒤에도 나는 시간이란 개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알 것 같으면서도 막상 일상에 적용하려면 도무지 모르겠는 미스터리 같았다. 나는 시간이 어딘가로 쏘아진 화살 같다고 믿는, 아니 그게 당연한 수많은 인류 중 한 명에 불과하기에 아직도 시간이란 화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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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에 놓인 카드가 순서대로 정렬되어 있을 확률보다 아무렇게나 섞여 있을 가능성이 훨씬 큰 것처럼, 시간이란 인간의 통념과는 다르게 마구잡이로 섞여 있다고 한다. 시간 안에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기 때문에 시간을 느끼는 것이라고 하면 이해가 수월하다. 시간이 존재하기에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벌어지는 때가 바로 시간이다.

그렇다면 인생은 사건의 연속인 것일까. 다만 그 사건들의 순서가 흔히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시간의 영향 밖이라는 이야기이다. 다시 말해 ‘현재’란 실존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될 것이다. 지금을 말하는 이 순간도 과거이며 ‘지금’도 인간의 주관적인 시점이다. 우리는 인간이 변화하기 때문에 바뀌는 것을 시간이 흐른다고 착각하고, 과거와 현재, 미래가 존재하며 시간은 그 방향을 향해 내달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진실이 아니다. 오랜 연구 끝에 진실을 밝힌 과학자들은 시간은 흐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통념이자 고집이므로 쉽게 이해하거나 받아드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맞다. 시간이란 너무 어렵다.

비록 책 속에서 말하는 시간의 실체를 완전히 이해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선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누구나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이란 시간은 유한하기에 소중하고 아깝다. 하지만 우리는 그걸 알면서도 꾸준히 시간을 낭비한다. 손안에 든 작은 모니터의 세상 속에서 몇 시간씩 날리기도 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멍을 때리다 하루가 저물기도 한다.

입버릇처럼 시간이 없다, 시간이 모자란다 하지만, 실은 허무하게 낭비하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면 하루 24시간은 할 일을 끝내기에 충분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0과 1로 이루어진 세상 안에서 허우적대며 시간을 낭비하는 건 세상에서 제일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이젠 명심해야 한다. 낭비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내 수명이 닳는 것이란 사실을.

누군가 강제로 나의 시간, 수명을 빼앗지는 않는다. 자극적인 광고, 동영상, 이미지 따위는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이 특기인 나 같은 이를 꼬시는 수단일 뿐 실제로 나의 시간을 무력으로 앗아가진 않는다. 모든 결정은 내 시간의 주인인 나였다. 유혹에 순응하여 아낌없이 내 수명을 내준 것은, 내 시간 뿐만 아니라 남의 소중한 시간마저 도둑질 한 것은 다름 아닌 나였음을 떠올린다. 돌이킬 수 없음에 더욱 아까운 시간. 책을 읽은 시간 동안 온몸으로 그것을 느끼게 해준 이번 호의 뉴필로소퍼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앞으로는 시간을 빼앗고 낭비하지 않겠다 굳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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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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