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보지 않아도 사는 것에 지장은 없다지만 - '안 봐도 사는데 지장없는 전시'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채워주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예술'이었다.
글 입력 2019.05.14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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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대로, '생활의 발견'이라는 첫 전시 프로젝트를 기획한 서울미술관은 대중들의 생활 속에서 예술이 어떠한 방식으로,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줄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해당 전시에서는 24시간이라는 하루의 일상을, ‘아침, 낮, 저녁과 새벽’ 이라는 4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관람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었는데, 우리의 삶 속 무의미하게 스쳐 지나가는 순간은 어떠한 의미가 부여될 수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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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순서대로 흘러가는 그 전시장 속 다양한 작품들은 우리의 생활이 곧 ‘예술’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회화, 사진과 영상, 조각과 설치 작품 등과 더불어, 게임 그래픽과 폰트, 그리고 책의 표지 디자인까지 선보였기에. 우리의 삶을 밀접하게 채워주고 있었던 것은 바로 다양한 형태의 미술 집합체였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보도록 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전시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었던 부분은 바로 작품과 연관 지어 해석해볼 수 있는 캡션부분이었다.  그 이유는, 기존 다른 전시회의 작품 관련 설명문들은 일반인들이 쉬이 이해할 수 없는 단어와 문장이 가득해 그들로 하여금 작품을 있는 그대로 감상해보는 것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이 전시의 설명문은 제목만큼이나 캐쥬얼 했으며, 이해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품 설명문 옆에는 보통 사람들의 직관적인 반응들을 적어놓은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었는데, 이는 더욱 큰 공감을 주었으며 흥미를 끄는 요소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작품 자체에 관한 정보전달과 더불어, 그들의 자연스러운 반응과 시선 자체에 집중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지나치게 포장된 말들로 인해 어렵게만 느껴질 수 있는 전시 관람에서 벗어나, 작품과 관객 사이 상호작용. 그러니까, 조금 더 본질적인 것에 의미를 두었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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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선태’ 작가의 작품
전시 관람 순서 시간대 : 오전 07 : 30


황선태 작가는 유리와 보드판으로 제작된 여러 층의 스크린 위에 드로잉과 LED 빛을 활용해 ‘빛이 드는 공간’ 등 관련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는 색과 면이 제거되고 선으로만 이루어진 공간 위에, 빛이 드리우는 방식을 표현했는데. 이는 오전 시간대, 아침 햇살이 서정적으로 들어오는 풍경을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잔잔한 풍경 속에서, 일상의 공간에서 마주할 수 있는 찰나의 평화로움은 따스한 여운을 느껴지게 했다. 익숙하기 때문에 쉬이 알아차릴 수 없는 일상의 공간을 특별한 순간으로 포착해낸 이 작가의 작품은 나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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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고 나카무라’ 작가의 작품
전시 관람 순서 시간대 : 오전 8 : 10


보통 이들의 가장 보편적인 출근 시간, 오전 8시 10분. 작가가 제작한 영상 프로젝트 속, 오밀조밀하고 세세한 오브제들은 쉴 틈 없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비좁고 빽빽해 보이는 공간에서 그들은 어떠한 마음으로 이를 반복하고 있을까. 오늘도 어느 곳으로 향하는 것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인파 속에서 지각하지 않기 위해 서두르는 지하철의 아침 지옥 풍경이 생각나기도 했다. 이 작가의 말에 따르면, 하염없이 흘러가는 무미건조한 우리의 일상에서의 사소한 모습들마저도 숨어있는 물리학적 법칙이 존재한다고 하며 이를 제작한 것이라 한다. 어쩌면 특별한 스토리보다는 반복적인 전개 속에서 끝없는 무한한 공간을 이어나가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서 자신의 상상력을 실험적으로 제작해 본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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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문제이’ 작가의 작품
전시 관람 순서 시간대 : 오후 12 : 10


우리는 24시간 중 온전히 혼자인 시간이 얼마나 될까. 타인을 만나기 위해 걸어가는 모습, 혹은 홀로 어딘가로 향하는 시간에서 마저 우리는 핸드폰을 보며 누군가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살아간다. 이처럼, 문제이 작가는 다양한 군중들이 ‘혼자’의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이들의 모습을 포착해서 그려낸다. 작품의 제목 중 ‘Alone Buddy’라는 것이 있었는데, Alone(혼자인)과 Buddy(친구)라는 두 단어가 동시에 연결된 것을 보게 되었다, 어쩌면 이 작가는 우리는 혼자만의 시간을 추구하며 살아가지만 결국 그 안에서도 타인과 끊임없이 연결 지어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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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쿠야마 요시유키’의 작품
전시 관람 순서 시간대 : 오후 17 : 30
 

다음 작품들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나의 마음에 와 닿았던 작업이다. 개인적으로, 나 또한 일상을 소재로 하는 사진 작업과 글 작업을 하기에. 다분히 소소한 일상 속 그의 촬영 컷들이 더욱 눈에 들어와서 인지도 모르겠다. 위 작업들은 그의 사진집 <Bacon Ice Cream>에 실린 것으로, 작가가 유럽에 갔을 당시 먹었던 신기하고 독특한 베이컨 아이스크림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그의 작품들에 담긴 장면들답게, 사진집의 제목 또한 거창하기보다는 경험한 자신의 일상을 토대로 지은 것이라 정감이 가기도 했다. 별 다른 일 없이 평범하게 흘러가는 일상을 사랑하며 애정을 담아 피사체를 포착해내는 것. 그의 따스하지만 강렬한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인상 깊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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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연’ 작가의 작품
전시 관람 순서 시간대 : 저녁 21 : 35


처음 이 작가의 작업을 접했을 때, 작품의 소재가 비닐봉지인지 모르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 만큼 우리 주변에서 쉬이 볼 수 있는, 별다른 의식 없이 소비되고 버려지는 가볍고 흔한 소재가 예술의 작업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하찮고 의미 없는 무엇인가를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 사람들로 하여금 주변 사물에 대해 인식을 제고 할 수 있는 탁월한 아이디어를 가진 작가의 세계를 생각해보며. 물질적인 욕망, 인간의 편리함만 추구하며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우리들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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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 프렌드’ 작가의 작품
전시 관람 순서 시간대 : 밤 23 : 50


우리 모두의 꿈 속, 깊은 무의식의 세계. 고요하지만, 몽환적이며 환상적인 세계를 나타내고 있는 작품. 위 작품을 보며 느껴졌던 첫 감상이다. 위 작품의 작가는 사진작가로, 구체적 현실을 포착해내기 보다는 눈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연결해주는 매체로 사진에 빛을 투과시키는 것과 같이 표현한다고 한다. 사진에 구멍을 내어, 구멍을 통해 빛이 새어 나오는 모습의 사진 작업은 마치 반딧불이가 떠다니는 찬란한 별의 세계가 연상되기도 한다.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장면처럼, 타인의 행복한 일상을 보다 아름답게 재탄생시키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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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책들’의 책 작업 작품
전시 관람 순서 시간대 : 새벽 01 : 20


요즘의 사람들이 책을 구매할 때 가장 고려하는 요소는 단순히 해당 책 속에 담겨진 ‘알찬 내용’이라 말하기 어렵다. 소장 욕구는 책 표지 디자인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책 표지가 아름답고 견고하다면, 그저 그것에 이끌려 책을 구매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열린 책들’ 출판사를 비롯하여 최근 출판사들은 작품들의 개성에 맞춰 표지를 감각적이고 세련되게 디자인하는 것이 대세다. 미술 작품을 음미하듯, 책의 표지 또한 음미할 수 있는 대상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위 책들의 표지 일러스트 작품들을 감상하며 느꼈던 것은 다음과 같다. 어쩌면, 이제 책 또한, 자신의 취향이 반영된 예술품으로서 여겨질 수도 있겠구나 라는 것을 말이다. 오래볼 수 있는 책을 제작한다는 것, 보다 질 좋고 고급스러운 책의 디자인을 구성한다는 것 또한, 시각 예술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을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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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안 봐도 사는 데 지장 없는 전시’는 현대 미술의 문턱을 낮추면서도, ‘작품 감상’ 이라는 전시회의 주된 목적을 살리며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는 것에 치중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른 전시들에 비해 나의 심상에 남는 것이 풍부한 전시였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기존에 생각하고 있는 예술과의 경계를 보다 느슨하게 이완시켜줄 수 있는 전시라고 해야 할까. 24시간이라는 하루의 일과 안, 모르고 지나치는 순간들 속 나는 어떠한 예술 현상을 마주하고 있었는지. 또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예술로 재탄생 될 수 있는지 발견할 수 있었다.

흥미에 이끌려 관람하게 된 전시의 제목과는 다르게도, 우리가 예술을 지향해보고자 하는 노력은 사는 데 쓸모없는 것이 아닐 것이라 생각해본다. 많은 이들이 퍽퍽한 현실에 쫓겨 다니느라, 그 의미를 모른 채 혹은 까먹은 채로 살아가고 있을 테지만.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모든 것들은 일상과 온전히 떼어내 이야기 할 수 없는 분야라고 생각해본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전혀 무용한 것들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일상과 예술은 필연적으로 맞닿아있을 수밖에 없으며, 우리가 일상적인 감각을 살아가며 조금만 시선의 초점을 길게 두고 보자면 모든 모습 속에서 쉬이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류승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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