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불이 되어버린 연주자, 장 하오천

글 입력 2019.04.20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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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불이 되어버린 연주자
장 하오천

나의 엄마가 어린 시절 처음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를 봤을 때 엄마는 연주자가 아니라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을 봤다고 한다. 연주를 듣는데 특별한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28살, 주변에서 친하게 지내는 언니 오빠의 나이,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앳되어 보이는 연주자가 처음 무대에 올랐을 때는 사진보다 더 여려보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가 정경화의 연주를 보면서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도 연주를 마쳤을 때 그는 거대한 불이 되었다. 장 하오천의 연주를 들으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훌륭한 클래식 라이브를 아트인사이트에서 많이 접해왔는데, 장 하오천은 그 많은 개성과 이미지 중에서도 강한 인상을 주었다. 화려한 기교가 그를 살아있는 불꽃으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뱉는 신음소리나 흩뿌리는 땀, 완벽하게 조절된 건반의 소리와 그와 대조되게 강하게 떨어지는 구둣발은 예술가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피곤에 찌들어 있었던 나를 후두려 팬 것도 장 하오천이 내뿜는 것이 예술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첫 번째 곡, 클로드 드뷔시의 피아노를 위한 3개의 영상 제2집이었다. 유에서 무를 표현할 수 있었떤 곡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까. 시냇물이 떨어지는 것 처럼 투명하기 짝이 없는 선율이 흐르지만 자연 현상이 간단함과 혼란 속에서 놀라울 정도의 법칙과 원리를 따르는 것처럼, 이 곡의 짜임새는 매우 촘촘하다. 들으면서 이는 피아노라서 가능한 소리라는 생각을 했다. 한 줄기의 음이 아니라 동시에 흘러 나오는 다중 선율은 피아니스트의 역량과 피아노 자체의 매력을 듬뿍 느끼게 했다. 그 제목에서 '이미지'를 예고했듯이, 이 첫번째 아름다운 선율에는 이름이 있다. '잎새를 흐르는 종'.칼럼니스트의 말을 따오자면, 흐릿하게 연출된 원경과 명료한 근경이 거의 시각적인 대비를 이룬다. 투명한 선율이 계속 흘러나오다, 나중에는 쟁반에 꼬리를 조금씩 부딫치는 듯한 금붕어가 등장한다.

두 번째 곡은 로베르트 슈만의 피아노를 위한 유머레스크 B-flat 장조, Op.20이다. 개인적으로 슈만은 브람스를 주제로 한 산울림 극장의 극장으로 기억한다. 브람스가 몇십년에 걸쳐 사랑한 슈만의 아내는 슈만이 자살을 기도하고 정신병원을 들락날락 거리는 것을 보곤 했다. 내가 슈만에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 그대로, 슈만의 '유머레스크'는 원 용어에 맞게 가볍고 익살스러운 기분을 표현하지만은 않았다. 이 음악에는 슈만이 그랬던 것처럼 조울증이 깊게 느껴진다. 서주는 차분하고, 다음 두 단락에서 반복되는 다섯 음은 활기를 불어넣지만, 그 다음 단락은 웃음과 울음의 대비를 함께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빠르게 올라가는 다섯 음이 반복될 때마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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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곡은, 피에르 불레즈의 피아노 소나타 제 1번이다. 솔직히 충격 그자체였다. 아름다워서 충격이 아니라, 그냥 충격이었다. 내가 아는 클래식과 너무 달랐다. 이 곡에는 음률의 조화도, 선율도 없다. 그릇이 깨져 나가는 것처럼 음이 뚝뚝 떨어져 나가 무대에 툭툭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장 하오천도 관객들의 당혹스러움을 예상했는지, 곡을 시작하기 전에 짧은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그는 이 곡이 금호 아트홀에서 처음 연주 될 수도 있는 마이너하고 실험적인 곡임을 소개하고, 후에 연주될 리스트의 곡과 함께 즐겨주길 바래서 이 곡을 선곡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들은 이 음악은 상식으로나, 내 청각으로나 여러모로 깨는 소리를 냈다. 장 하오천의 말을 빌리자면 이런 곡을 전음렬주의라고 한다. 전음렬주의란 총렬주의라고도 하며, 음높이, 음가, 음량, 리듬 등 음악에 내포된 모든 객관적 요소를 체계적으로 통제할 것을 목표로 하는 음악 사조다. 20세기 이후로 사양길을 걷고 있었던 소나타를 재해석한 곡이라는데, 사실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피카소의 큐비즘을 처음 본 느낌이었다. 모든 형태가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통제되어 새로운 예술의 국면을 추구한다는 점이 그랬다. 아이러니하지만, 피카소의 큐비즘이 그랬던 것처럼 기묘한 아름다움이 있는 작품이었다.

네 번째 곡은 프란츠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 S178이었다. 장 하오천의 이력을 살펴보니, 그는 이미 리스트의 피아니스트로서 굳건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장 하오천은 앞서 실험적인 편곡을 했던 이유를 마지막 리스트의 아방가르드한 점을 관객들에게 다시 일깨우고 싶어서였다고 설명했다. 음악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까운 나지만, 이 음악은 익히 들은 적이 있다. 리스트의 유일한 소나타이며, 당시에는 수많은 비판이 있었지만(앞서 말한 슈만의 아내 클라라 조차도 이 곡을 소음이라 표현했다) 가장 독창적인 곡으로 평가된다. 동시에 연주가 어렵기로 유명한 리스트의 음악 중에서도 난해함으로 유명한 곡이다.

30분 동안 중단 없이 연주되는 곡의 첫 장은 소나타 형식의 단일 악장이고, 4장은 느린 악장, 스케르초, 피날레로 이루어져 있다. 곡을 듣는 동안 피아니스트는 숨을 멈추고 몰아쉬면서 연주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곡의 빠르고 적절한 소리를 내기 위해 움직이는 손가락은 음률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호흡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장 하오천은 해냈다. 곡이 끝나고 장 하오천은 온 몸에 기운이 빠져나간 듯이 축 쳐졌다. 이 인상깊은 곡에 감동받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 순간만큼, 그는 정말 사람이 아니었다. 예술이 되어버린 예술가 그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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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경험을 문자로 보여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기회가 된다면, 이 피아니스트의 다른 연주를 듣고싶다. 하지만 예상컨대, 내가 이렇게 가까운 자리에서 그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앞으로도 손에 꼽을 것 같다. 불같은 그의 연주는 앞으로도 내가 잘 닿지 않는 곳 까지 더 크게 비상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앞으로의 비상을 기대한다.




<PROGRAM>


클로드 드뷔시
피아노를 위한 3개의 영상 제2집, L.120

로베르트 슈만
피아노를 위한 유모레스크
B-flat장조, Op.20

INTERMISSION

피에르 불레즈
피아노 소나타 제1번

프란츠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 S.178





장 하오천 Piano
- 금호아트홀 아름다운 목요일 -


일자 : 2019.04.11

시간
오후 8시

장소 : 금호아트홀

티켓가격
전석 50,000원

주최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관람연령
취학 아동 이상

공연시간 : 100분
(인터미션 :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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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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