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국의 여성주의 예술가를 소개합니다. [기타]

글 입력 2019.04.1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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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아르테미시아 젠틀레스키, 신디 셔먼, 생트 올랑의 작품을 감상하고 짧은 글을 쓴 적이 있다. 이들이 자신의 작품을 ‘페미니즘’ 이라는 용어를 이용하며 언급한 적은 없지만, 이 작가들은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모습과는 다른 이미지로 여성을 표현했다. 여성에게 요구되었던 것이 부당한 것임을 은연중에 드러내기도 했다. 이들의 작품을 보다가, 문득 한국의 여성주의 예술가를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여성주의 예술은 8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됐다. 김인순, 윤석남, 김진숙 작가를 필두로 여성 예술가들의 모임이 조직되었고, 한국 여성의 삶을 담은 예술 작품들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여성을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맞추어 표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작품들이었다. 이들은 역사 속에서 존재 자체가 지워졌던 수많은 여성들의 삶을 예술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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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순 작가는 1986년에 여성의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해낸 작품 <현모양처>를 제작했다. 남편으로 보이는 남성은 나체로 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으며, 그 아래 여성은 무릎을 꿇고 남성의 발을 닦아주고 있다. 여성이 쓰고 있는 사각모는 그가 고학력자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은 가정이라는 공간 속에서 요구되는 현모양처의 이미지가 가부장적 사고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발을 닦아주고 있는 여성의 위로 그려져 있는 그림자는 남성 중심적인 공간 속에서 ‘여성의 미덕’이라는 미명 아래 그가 겪어야 했던 부당한 일들을 압축해 보여주고 있다.


1995년에 제작된 그의 작품 <황혼>은 작품 <현모양처>의 발표 이후 약 10년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여성의 지위는 높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림 속에서 양복을 입은 남성은 의자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고, 여성은 쪼그리고 앉아 고기를 굽고 있다. 여성의 의자조차 준비되어 있지 않은 테이블은 가부장적인 사회 속 여성의 위치를 드러내며,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현재 여성의 위치에 대해 다시금 숙고하게 한다.


윤석남 작가의 작품 <Pink Room V>도 여성의 삶을 매우 진솔하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의자와 바닥에 깔린 구슬이 인상적인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가정의 안과 밖 어디에도 안정적인 여성의 공간은 없다는 사실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작품의 한가운데 놓인 의자는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지만,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은 의자 다리가 송곳처럼 뾰족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긍정적인 느낌보다는 오히려 위태롭고 불편한 느낌을 받는다.


의자 아래에 있는 것이 평평하고 편안한 바닥이 아닌, 밟으면 넘어질 위험이 있는 아주 진한 분홍색 구슬이라는 점은 의자에 안정적으로 앉아 있을 수도, 의자에서 내려와 편안하게 서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현재 이 세상에 여성을 위한 공간이 존재하는가?’ 라는 물음을 던지며, 평등하지 않은 사회에서 여성이 처한 현실을 전한다.


1993년에 발표된 <족보> 역시 여성에게 강요되어 왔던 여러 부당함을 폭로하는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으로는 족보가 크게 인쇄되어 붙어 있는데, 이는 예로부터 전통적으로 전해져 내려온 남성 중심 사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오른쪽에 매달려 있는 조각은 가부장제에 의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희생당한 여성들을 상징하며, 이 조각을 통해 오늘날 남성 중심 사회는 무수히 많은 여성들을 희생시키며 더욱 공고해졌음을 이야기한다. 더불어 작가는 이렇게 희생된 이름 모를 여성들을 작품 속으로 다시 불러들이고 있다.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이름들을 작품을 통해 불러 보고 있는 것이다.

 

여성에 관한 이야기들, 페미니즘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전통’ 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왔던 부당함과 불평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80년대 초창기 여성주의 예술가들이 작품을 통해 표현한 불평등은 아직도 해소되지 않았다. 여성의 영역을 제한하고, 어떠한 동의와 근거도 없이 그 영역 안에 여성을 위치시키려는 그릇된 사고는 사회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 라는 조롱은 그러한 사고를 그대로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표현하는 움직임은 이전부터 이어져 왔으며, 다양한 시도들은 결국 느리게나마 세상을 변화시켜 왔다. 본고에서 언급한 김인순 작가와 윤석남 작가의 작품들은 감상하는 이들로 하여금 현재 사회를 보다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분명 세상은 변화하고 있으며,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끊임없이 부당함을 폭로하고 담론을 이끌어가는 힘, 그것이 80년대의 여성 작가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여성들의 움직임이 그릇된 사고 아래 함부로 재단될 수 없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김보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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