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백예린과 윤석철 트리오 [음악]

(1) 대중음악과 재즈 이야기
글 입력 2019.04.0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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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대중문화란 말 그대로 대중이 주체가 되는 문화로 신분제 폐지 후 전반적인 생활 수준의 향상에 힘입어 형성되었다. 매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기술의 진화 또한 대중문화의 발달을 어마어마한 규모로 촉진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중문화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보기는 어렵다. 최근 음원차트를 석권하고 있는 백예린과 스탠더드 재즈를 연주하는 윤석철 트리오의 합동 콘서트를 설명하기에 앞서 대중문화의 정의를 운운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들이 들려주는 '재즈'가 바로 대중문화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재즈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뉴올리언스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유럽의 악기를 자신들의 스타일에 맞춰 연주하면서 시작된 장르로, 서민들은 거의 접할 수 없었던 클래식 음악의 경계를 부수고 대중들이 향유할 수 있는 음악의 길을 열었다. 그들은 쉬는 날이면 광장에 모여 자신들의 애환, 이를테면 흑인 노예로서의 울분을 음악에 담아 노래했다. 재즈 이전의 음악이란 오로지 클래식뿐이었고, 이마저도 귀족들이나 즐길 수 있었던 탓에 재즈는 마치 '악마'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넓게는 두 그룹으로 나뉜다. 긴 머리에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프로그레시브 록을 좋아하는 히피 유형과 말끔한 옷차림에다 고전음악이 아닌 모든 것을 끔찍하게 여기는 유형으로 말이다. (...) 그러므로 '그레이트 아메리칸 송북'을 음미할 줄 아는 사람, 그것도 여자를 발견한 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었다.


- 가즈오 이시구로 『녹턴』 (민음사, 2010, 45쪽)



클래식 음악이 지루하다는 편견 아닌 편견은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얘기다. 이미 18세기부터 하이든이 조는 청중들을 깨우기 위해 놀람 교향곡을 작곡했으니,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흥겨운 '음악'의 이미지는 재즈의 탄생과 함께 비로소 그 막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대중들의 인기를 얻은 재즈는 블루스로, 로큰롤(Rock n Roll)로 진화하면서 BTS부터 테일러 스위프트까지 모던 팝의 근간을 이룬 대모(大母)가 되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재즈는 그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녹턴의 한 구절처럼, 사람들은 재즈를 들을 바에는 모던 팝을 듣거나 아예 고전음악을 들었다. 재즈는 그렇게 현대음악이라기엔 낡고, 고전음악이라기엔 천박한 장르가 되었다.


재즈는 모호하다. 재즈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로  재즈는 어디에도 속할 수 있다. 2018년 5월, 대중가수 백예린과 재즈 아티스트 윤석철 트리오가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서 손을 잡았다. 비록 스탠더드 재즈곡을 백예린의 목소리로 부른 것에 불과했지만 사람들은 재즈의 매력에 열광했다. 그리고 2019년 4월, LG 아트센터에서 그들이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한층 모호하고 매력적인 재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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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철 트리오



최근 콘서트에서는 패러디 형식의 막간 영상과 화려한 무대 연출이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 문장은 모순적이다. 공연장의 울림과 공연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노래의 떨림보다 화려한 조명과 퍼포머(Performer)의 연기 실력이 더 중요한 콘서트는 진정한 의미의 콘서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러시아워 콘서트는 요즘에는 보기 드문, 본질에 집중한 콘서트다.


내가 좋아하는 표현대로 설명하자면, '껍데기를 벗어던진, 알맹이만 남은' 콘서트다. 관객과의 약속에 충실하기 위해 정시에 등장한 윤석철 트리오는 어떠한 소개 멘트도, 간단한 인사도 없이 합을 맞춰 연주를 시작한다. 오로지 음악이라는 본연의 가치에만 집중하는 그들의 결연한 의지는 너무 순수해서 투명하게 보일 지경이다.


재즈의 본질은 즉흥성에 있다. 정형화된 형식과 딱딱한 규율을 벗어나 서로의 리듬과 선율 속에서 음악을 찾아가는 여정. 악보를 넘겨주는 페이지 터너는커녕 그들에게는 악보 자체도 없지만 눈앞의 공허를 채워주는 서로의 연주가 그들에게는 악보다. 재즈의 이러한 즉흥성은 재즈를 처음 접하는 이에게는 난해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초반의 어긋남과 무질서를 조금만 견뎌내면 의미 없이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은 저도 모르는 새에 하나의 그림이 되어 다가온다. 처음은 언제나 피아노로, 그다음에는 베이스로, 드럼으로 이어지는 여정은 규칙보다 불규칙이, 질서보다는 무질서가 더 아름다울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백예린의 Square.
미발매곡이지만 조회수는 300만을 훌쩍 넘는다.



'CD를 씹어먹다'. 보정이 들어간 음원만큼이나 라이브 실력이 좋을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 문장을 볼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찝찝함을 느끼곤 한다.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매끈하게 정돈된 기계의 목소리를 더 사랑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백예린의 라이브에는 무손실 FLAC 파일로도 담아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백예린에게 'CD를 씹어먹다'라는 표현은 결례다. 그녀는 라이브보다 CD가 우위에 있는 '껍데기'의 시대에 우리가 공연을 보러 가야만 하는 이유를 정확히 짚어낸다.


그녀가 그날 느끼는 감정의 깊이와 바람의 온도, 입고 있는 의상 하나하나도 그녀의 무대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녀가 보이는 것에만 치중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모든 요소는 음악이라는 본질에 집중하기 위한 관객들을 향한 진심 어린 기교다. 분명 똑같은 멜로디와 리듬의 노래지만 그녀의 라이브는 매번 새롭다. 그녀는 그런 의미에서 재즈의 즉흥성과도 닮았다. 이번 콘서트는 윤석철 트리오와의 두 번째 공연이지만 그녀가 부른 노래들은 LG 아트센터에서 새롭게 태어난 듯 재즈의 모호함과 공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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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예린의 최신 앨범, Our love is great



그녀의 최신 앨범에 윤석철 트리오와 작업한 재즈곡이 수록된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3번에 수록된 <Dear My Blue>와 마지막 곡 <지켜줄게>는 재즈의 향기를 가득 머금고 대중에게 바투 다가갔다. 대중가요와 만난 재즈는 한층 더 성숙하고 매력적이다. 그녀의 앨범을 듣고 '이 노래가 재즈풍이구나!'하고 알아차린 사람은 많이 없겠지만 <Our love is great>은 모호함이라는 재즈의 진가가 십분 발휘된 명반임은 분명하다.


러시아워 콘서트에도 가장 좋았던 부분도 이 두 곡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어폰을 타고 흐르는 그녀의 목소리도 물론 훌륭하지만, 공연이 끝난 후 듣는 MP3 파일은 어딘가 모르게 생기를 잃어버린 듯 밋밋했다. 무언가에 이끌린 듯, 손이 또 그녀의 라이브 영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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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워 콘서트 끝인사.
오른쪽부터 윤석철, 백예린, 정상이, 김영진



그냥 준비한 곡 중 마지막 곡을 앙코르곡이라고 하면 될 텐데, 끝까지 포장된 거짓을 거부하듯 그들은 '앙코르곡이 없어 죄송하다'는 말로 공연을 마쳤다. 깊게 숙인 그들의 마지막 인사에서 나는 또다시 공연의 본질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화려한 무대 연출과 막간 영상은 어쩌면 비싼 돈을 내고 찾아 준 관객들에 대한 일말의 예의이자 성의일 수도 있다. 또 어쩌면 그런 요소들이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예술을 부흥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화려함'에 너무 현혹된 나머지, 콘서트의 본질인 음악, 그 자체는 너무 경시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공연 내내 진솔한 자세로 관객과 음악을 대했던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답례는 고작 말뿐이지만 그래도 적어본다. 그냥 음악이 좋았던, 러시아워 콘서트.



* 재즈이야기는 다음 주 (2) 국악과 재즈이야기로 돌아옵니다!





[김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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