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잠 못 드는 새벽, 홀로 편지를 썼던 그녀를 생각하며 - 스위밍 레슨 [도서]

새벽 바다보다 더 차가운 진실
글 입력 2019.04.0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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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풀러 <스위밍 레슨>

 



1992년 7월 2일 바다에서 사라진 잉그리드. 어느 날 남편 길은 사라진 줄만 알았던 잉그리드를 목격하고 그녀를 따라가다 크게 다치고 만다.


그런 아버지를 간호하기 위해 두 딸은 옛날에 가족이 함께 살았던 ‘스위밍 파빌리온’에 모이고 길이 환상을 본 것이라고 주장하는 현실적인 낸과 달리 동생 플로라는 엄마가 어디엔가 살아있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집 안의 무수히 많은 책. 그 안에 담긴 잉그리드의 편지. 과연 편지는 어떤 진실을 말해줄까? 잉그리드는 정말 죽은 것일까, 떠난 것일까?


 



서정 미스터리




길 콜먼은 서점 2층 창문으로 인도에 서 있는 죽은 아내를 보았다


p.9



책은 첫 문장부터 죽은 아내를 보았다는 모순적인 말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 첫 문장 하나로 독자는 읽는 즉시 어떻게 죽은 사람을 볼 수 있는지, 그 아내는 무슨 이유로 죽었는지 궁금해지고 긴장감을 가득 안고 다음 문장, 다음 문장을 차근차근 읽게 된다.

 

책은 길이 죽은 아내를 보고 따라가다 부상을 입고 두 딸이 그 소식을 듣고 그에게 찾아가는 현재의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사라지기 한 달 전, 1992년 6월 2일에 1976년을 회상하는 잉그리드의 편지를 보여준다.

 


새벽 4시인데 잠이 오지 않아요. 이 노란색 노트를 발견하고 당신에게 편지를 써야지 했어요. 실제로는 하지 못한 말들, 시작부터 우리의 결혼에 관한 모든 진실이 담긴 편지를 말이에요.


p. 25



편지의 시작 부분을 읽으면 누구든 모든 진실이 이 편지 안에 담길 것을 예측하게 된다. 대체 왜 그녀가 1992년 7월 2일에 사라졌는지 편지의 날짜가 그날에 가까워질수록 진실도 그만큼 더 가까워질 것을 기대하며 책장을 넘기게 된다.

 

스위밍 레슨을 읽게 만드는 원동력은 궁금증과 긴장감이다. 그것은 곧 미스터리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책에서 교차로 나타나는 스위밍 파빌리온에 모인 세 부녀, 길과의 만남을 담아낸 편지의 내용은 잉그리드가 사라진 원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듯 그들의 일상만을 충실히 묘사한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일상의 순간들이 곧 원인일 것이라는 믿음을 안고서 끝까지 그래서 왜 잉그리드는 사라졌느냐는 의문을 마음속에 품고 읽고 또 읽었다.




진실이라는 흉기



스위밍 레슨은 훌륭한 미스터리 소설이다. 그와 동시에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다. 미스터리 장르의 목적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원인을 알기 위해 모든 내용을 할애한다. 그런 점에서 스위밍 레슨은 훌륭한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잉그리드가 왜 사라졌는지에 대한 의문 하나로 독자를 끝까지 이끌고 가는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미스터리가 아닌 이유는 이 책엔 사건의 범인, 함정, 알리바이, 반전 등이 없기 때문이다. 책이 후반부에 다다르면 다다를수록, 독자가 잉그리드가 사라진 원인을 짐작하게 될수록 결국 이 책에서 중요한 건 1992년 7월 2일의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잉그리드가 길을 처음 만난 1976년 4월 6일부터 시작된 정신적 고통의 연대기임을 알 수 있다.

 


이 편지에는 감추지도 않고 외면하려 하지도 않는 발가벗은 진실만 있을 거예요.


p. 77



그리고 그 고통의 연대기를 담은 편지는 잉그리드가 유일하게 진실을 폭로할 수 있는 공간이다.

 

소설의 도입부에 길이 강의 시간에 수선화와 관련된 비밀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나온다. 어머니의 임종 직전 수선화를 드리기 위해 노력한 이야기.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거짓이다. 애초에 그 수선화는 잉그리드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길은 매력적인 작가이며 거짓말에 능숙한 사람이다. 그 능숙한 거짓말에 수선화의 주인인 잉그리드뿐만 아니라 독자마저도 순간 속아 넘어가게 된다. 길은 그런 인간이다. 상대방이 그의 매력에 눈이 먼 틈을 이용해서 거짓말을 속삭이는 인간. 잉그리드가 그의 매력으로부터 해방되는 순간 곧바로 길의 추악한 본질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처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나는 서서히 드러나는 길의 실체와 상처받는 잉그리드를 보면서 사람이 타인에 대해서 다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느꼈다. 우리는 쉽게 누군가에 대해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 다 알아.’ 라고 말한다. 하지만 보통 그런 자신감은 오만과 편견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값을 입력하면 정해진 결과가 나오는 수학 공식이 아니다. 아무리 가깝게 지낸다고 해도 그 내면에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다른 사람과 있을 땐 어떤 모습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그 이면이 수면 위에 떠오를 때 상상도 할 수 없는 파장이 생기게 된다. 길이 곧 무수히 많은 이면을 지닌 사람이었고 그래서 잉그리드의 삶은 생각지도 못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진실을 마주할 때마다 잉그리드는 더욱 더 비참해져갔다.

 

그렇게 잔인한 진실일지라도 책은 절대 진실을 외면하라고 하지 않는다. 과거 잉그리드에게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으니까 모르는 편이 낫다고 말했던 길조차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진실을 받아들인다. 어떤 진실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지만 진실을 외면하는 건 그 비참함을 끝맺지 못하게 만든다.


 

 

엄마가 되어버린 여성의 이야기


 

잉그리드의 편지는 잉그리드가 절친한 친구 루이즈와 가부장제에 얽매이지 않은 자신들의 미래를 그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물론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의 의미 없는 삶이라고 치부하는 (전업주부로 살림하고 애를 키우는) 엄마들의 삶과 다를 거라는 데는 동의했죠.

 

“맞아. 아이, 남편, 집, 남자, 그런 것들은 다 걸림돌이 될 뿐이야. 하고 싶은 걸 못 하게 만든다고. 요즘은 공부가 가장 중요해. 우리 엄마들은 공부를 못 한 게 문제였어. 학위가 없잖아. 그러니 어디에 쓸모가 있겠어?”


p.25~26



그들의 열정 가득한 대화는 내게 조금 씁쓸하게 들렸다. 왜냐하면 나는 처음부터 잉그리드가 길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화를 나눴었던 시간이 무색하게 그녀는 금세 자신보다 나이가 두 배 가까이 많은, 자신이 듣는 수업의 교수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20살이라는 나이 차, 교수와 제자 사이. 길과 잉그리드의 사랑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거부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 당장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책의 초반부는 서정적인 문체로 잉그리드가 그랬던 것처럼 독자도 그 사랑에 빠져들게 만든다.

 

하지만 세기의 사랑일 것만 같았던 둘의 사랑은 결국 현실과 마주하고 만다. 그리고 그 현실을 가장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사람은 잉그리드였다.

 


“하지만 다음 주부터 기말고사인데요.”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집에 가서 남편과 아기를 돌보세요. 이젠 그게 토르젠슨 양의 자리니까.”

“하지만 제 자리는 여기에요. 전…… 꼭 졸업해야 돼요.”

……(중략)……

내 대학 생활은 그날 학장실에서 그렇게 끝났어요. 단 일주일을 남겨 두고 말이죠.


p. 170



어머니가 된 잉그리드는 루이즈와 이야기했던 우물 안 개구리의 삶을 살게 된다. 문학을 공부했던 대학생은 밖에서 가슴을 드러내며 젖을 물리고 생활비 한 푼에 연연하는 사람이 되었다. 소설은 그러한 과정을 아주 현실적으로, 세세하게 드러내고 있다.


어머니가 되었다는 혼란, 삶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남편과 자식이라는 회의감은 계속 해서 잉그리드를 괴롭힌다. 분명 같이 사랑하고 같이 아이를 만들었음에도 그 책임은 온전히 잉그리드만의 것이다. 플로라의 말이 그 사실을 잘 나타내준다.

 


“아빠들이 자식을 버리는 일은 비일비재하잖아. 그래도 어깨를 으쓱하는 일 없이 다들 약간 실망할 뿐이지. 반면 엄마가 자식을 버리면 왜 그렇게 충격을 받는 거지?”


p.309



잉그리드가 편지에 담은 고통의 연대기는 나에게 만큼은 임신과 유산, 육아라는 혹독한 전쟁을 오로지 혼자서 치뤄야 했던, 그럼에도 자신을 잃고 싶지 않았던 한 사람의 투쟁처럼 느껴졌다.



 

다 읽고 난 뒤



다 읽고 난 뒤 책읖 덮고 표지 속 잉그리드를 바라보았다. 공허한 눈빛으로 바다에 있는 잉그리드를,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그 누구에게도 털어 놓지 못한 속마음을 편지에 쏟아 내고 책에 꽂아 두던 잉그리드를, 물에 들어가 수영할 때에만 행복을 느꼈던 잉그리드를, 땅 위의 사람에게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아버린 잉그리드를. 진실을 회피하고 잘못을 부정했던 길과 달리 그 모든 것들을 받아들였던 잉그리드를.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 새벽 바다보다 더 차가운 세상과 홀로 싸웠던 그녀를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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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밍 레슨
SWIMMING LESSONS


지은이: 클레어 풀러(Claire Fuller)

옮긴이: 정지현

분량: 372쪽

정가: 13,800원

출판사: 도서출판 잔

발행일: 2019년 3월 18일

판형: 130×195(mm) / 페이퍼백

ISBN: 979-11-965176-3-2 03840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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