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추천받는 인간 : 일직선의 길 [문화 전반]

맞춤형 시대를 살아가는 당신에게
글 입력 2019.03.0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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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듣던 음악을 듣다 보면 새로운 플레이리스트에 대한 욕구가 생기기 마련이다. 최근 음악 스트리밍 앱을 이용하다가 새로운 음악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새롭지만 좋은 음악을 선택하는 방법으로 앱의 다른 사용자인 DJ들의 추천 플레이리스트를 선택했고, 마음에 드는 주제별로 음악을 재생했다. 전문가 선곡도 빼놓지 않고 들었다.


하지만 취향에 딱 맞아서 탄식이 나올 만한 음악은 들을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일련의 주제를 갖고 선별해 둔 음악은 말 그대로 복불복이었고, 그나마 ‘어떤 상태일 때 들을 만한 음악’이라는 주제는 내 취향과 맞을 확률을 조금 높여주는 정도일 뿐, 전혀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운이 좋으면 플레이리스트에 수록된 대략 40곡 중 2곡 정도를 취향과 맞는 좋은 곡이라고 느꼈고, 그 이외의 곡들은 취향에 맞지 않아 별 감흥이 없었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에, 지금 나의 상황(context)에 딱 맞는 음악을 한 번에 골라 들을 수 있기를 바랐다. 마치 1+1을 입력하면 정확하게 2를 내어주는 컴퓨터처럼, 탐색하는 일련의 과정은 겪을 필요도 없이 내 취향을 입력하면 딱 맞는 콘텐츠가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간편하기 때문이다.



멜론r.jp.jpg

[Melon For U]


그래서 내 음악 취향을 기반으로 추천해주는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내 음악 재생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 되다 보니, AI의 선곡이 꽤 믿음직했다. 그러다 문득 추천을 받는 것이 가장 편리한 방법이라서 계속 이렇게 추천만 받게 된다면, 이게 내 취향에 맞는 곡인지 아닌지, 내 취향이란 무엇인지, 나아가 AI 없이 혼자서 내 취향을 제대로 탐색할 수는 있을지 본인조차도 확신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효율을 높이기 위해 만든 서비스가 역으로 취향을 주입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거라는 걱정과 함께 말이다.




정확한 추천, 콘텐츠 시장의 궁극적인 목표



음악 추천, 영화 추천, 쇼핑 추천 등 최근 다양한 콘텐츠 시장에서 사람들에게 이러한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엔 추천 서비스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플랫폼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넷플릭스(Netflix)와 왓챠플레이(Watcha Play) 이외에 멜론의 Fou You 서비스나 페이스북의 친구 추천 기능, 그 외에 아마존의 쇼핑 상품 추천 등 주변에 이미 사용 중인 서비스들도 많다. 이런 서비스들은 사용자의 취향을 분석해두고 나서 사용자가 다음번에 선택하게 될 때, 결정 장애가 오지 않도록 아예 먼저 선택지를 제시한다. 당신의 취향에 딱 맞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사실 현재 배급 중인 서비스들의 취향 파악의 정도는 플랫폼마다 다르지만, 확실한 점 하나는 취향 파악의 정도가 놀라우리만큼 정확해진다는 것이다. 즉, AI가 조만간 당신의 취향에 딱 맞는 추천을 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데이터 알고리즘과 딥러닝 기술의 발전 때문인데, 그런 기술들을 개발하는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오차를 줄여서 사용자의 취향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취향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사용자 개개인의 모든 선택을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예측 가능한 지표를 통해 사용자가 서비스를 더 많이 이용하도록 유도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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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tflix]




정말로 추천에 실패할 일이 없어진다면?



그렇다면 추천 서비스가 고도로 발전된 상황을 상상해보자. 추천 알고리즘은 정확하게 당신의 취향을 예측해서 제안하고, 당신은 그 추천이 너무나도 잘 맞아 만족스러운 경험을 한다. 만족스럽게 영화를 시청했고, 만족스럽게 밥을 먹었고, 만족스럽게 쇼핑을 했다. 그래서 다음의 결정에 또 추천 서비스를 이용할 것이다. 얼마나 편리한가? 너무 많은 선택의 폭 때문에, 새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한 서비스가 될 것이다. 수만 개의 콘텐츠가 쏟아지는 와중에 흥미 없는 콘텐츠에 내 시간을 쏟기에는 아깝다는 넷플릭스 사이언스 부사장의 말처럼, AI의 추천으로 후회 없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추천이라는 서비스는 모두에게 유익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실시간으로 사용자의 곁에 딱 붙어서 음성으로 대화를 시도하며, 사용자의 생활 전반 데이터를 수집해 취향을 파악하는 AI 데이터 알고리즘의 방식은 사용자의 개인정보 노출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유발한다. 개인정보가 악용되거나, 흔히 우려하는 ‘플랫폼 시장의 빅 브러더 화’가 실제로 가능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개인정보 등의 제도적 문제보다는 좀 더 본질적인 문제를 떠올려볼 수 있다. 취향에 맞는 서비스를 계속 이용하는 것은 하나의 취향을 고수하게 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즉, 비슷한 카테고리의 유사 경험을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AI가 나를 한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다 보면, 나는 ‘내 취향’이라는 카테고리의 전문가가 될 수도 있다. 점점 더 오차를 줄여 완벽해진 AI는 당신에게 이제 또 다른 자아로 느껴진다. 그런 AI에게 잔뜩 의존하게 된 당신은 이제 모험적인 선택은 하고 싶지 않아졌다.


이러한 이유로 점점 당신의 취향과 반대의 것을 볼 기회는 사라진다. AI는 당신의 취향과 맞지 않는 것은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의 취향과 맞지 않는 것은 접할 기회가 없는 당신은 스스로 취향을 알아가는 시도조차 할 필요가 없어져서, 혼자서 취향을 탐색하는 방법 자체를 잊어버릴 수도 있다. 나아가 이 선택들이 내가 진정 원하던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무분별의 상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극단적으로는 당신과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을 이해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자신과는 다른 것에 대해 반감을 느껴 존중 자체를 할 수 없게 되면 단순히 취향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또 한편,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 당신은 본인의 취향에 싫증을 낼 수도 있다. 인간관계에서도 일방적으로 나에게 맞춰주는 관계는 처음에는 잘 맞아서 즐거울지 몰라도 이내 싫증을 느끼며 권태로운 관계가 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맞춤형 서비스들도 싫증을 느끼게 되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언젠가는 취향에 맞지 않거나 취향과는 정반대의 콘텐츠를 요구하게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싫증이 났을 때마저도 새로운 것을 스스로 탐색하지 않고, AI를 통해 추천받을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두 가지 중 어떤 경우이든 간에, 제일 우려되는 점은 앞서 언급했듯 간파당하고 조종당할 위험이 있는 개인이 아니라, 그 개인이 스스로 탐색하며 시도해보려는 것 자체에 무던해지는 것이다.




오차가 낳는 의외의 결과물


 

시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의외의 발견을 할 기회를 차단한다는 말과도 같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아주 고전적인 명언이 있다. 실패가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실수를 비롯한 오차가 의외의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드라마 <매니악> 에서도 오차를 적극 활용한다. 인공지능 컴퓨터 기반으로 운영되며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하는 신약 프로젝트에서, 인공지능 컴퓨터가 인간의 감정을 배워버리는 예측 불가한 변수 때문에 프로젝트가 실패하게 된다.


하지만 실패로 끝난 이 프로젝트 덕분에 주인공들은 자가치유라는 진정한 방법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오차 덕분에 발견하게 되는 새로운 경험은 오차가 생기지 않는다면 전혀 경험하지 못할 것들이다. 실제로 세상에 유명한 발견 중에서도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의외의 것을 발견하게 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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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iac]



또 다른 예시로 최근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미디어 아트를 떠올려 볼 수 있다. 미디어 아트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인풋 코드의 변수가 만든 무한한 그래픽 결과들은 의외성이 낳은 새로운 창조의 산물이 되기도 한다. 틀린 수치 하나가 창조를 낳는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서비스들은 편리한 것을 오차 없이 정확하고, “예측할 수 있게” 제공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둔다. 의외의 것을 알 기회는 더욱 사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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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tive art]




오차를 줄이는 것만이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



사용자 취향 예측의 오차 정도를 점점 줄여나가고 있는 가운데, 정확한 추천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AI 기반의 추천 서비스들이 가득한 지금의 흐름을 역행하자는 것도 아니다. 쓸데없는 결정의 시간을 줄여 더 나은 가치를 위해 시간을 쏟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삶의 방향임을 부정하는 것도 역시 아니다. 다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개인이든, 서비스를 개발하는 개발자이든, 플랫폼을 운영하는 책임자이든 질서 정연한 하나의 방향으로만 흐르는 편리함에 대해서 말이다.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방향성을 인지하지도 못하는 상황에 이르지는 않도록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 다양한 시도와 실패의 경험으로 무언가를 얻는 것이 인간의 본질 중 하나라면, 의외의 경험마저 AI가 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말자. 완벽하게 인간이 되는 방법을 배워버린 AI에게 인간이란 무엇인지 물어보기에는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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