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염소 시뮬레이터는 왜 성공했을까 [게임]

무엇이 게임인가, 무엇이 좋은 게임인가
글 입력 2019.02.1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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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염소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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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 시뮬레이터는 차세대 염소 시뮬레이션을 당신에게 가져다줄 최신 기술입니다. 더 이상 염소가 되는 상상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의 꿈이 현실이 됩니다! WASD로 역사를 쓰십시오.



위에 쓰여져 있는 글은 염소 시뮬레이터를 구매하기 위해 클릭했을 때 나오는 글이다. 당신은 염소가 되기 위해서 돈을 주고 이 게임을 살 것인가? 잘 모르겠다면 아래에 있는 글을 읽어보자.


염소 시뮬레이터는 작고 엉망이고 멍청한 게임입니다. 이 게임을 만드는데 2주 걸렸습니다. 그러니까 염소로 하는 GTA같은건 기대하지 마세요. 사실 아무것도 기대 안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걸 10달러를 주고 사느니 차라리 훌라후프나 벽돌 몇 장, 아니면 진짜 염소를 사는게 훨씬 낫습니다.



고객 평가가 이러니까 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착각한거다. 이건 고객 평가가 아니라 공식 홈페이지에 써있는 게임 소개 멘트이다. 왜 굳이 염소가 되어야 하는지, 이게 무슨 재미가 있는지, 이 게임을 만든 회사에서도 하지 말라고 하는데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게임을 누가 돈을 주고 사서 하려고 할까?

놀랍게도 이 게임은 불티나게 팔렸다. 발매 후 4개월동안의 수익이 게임을 제작한 스튜디오의 수익보다 더 높다고 한다. 얼핏 보면 우스꽝스러워보이는 이 게임에 무언가 대단한게 있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면 개발사의 소개멘트를 다시 보자. 그런 건 없다. 그렇다면 왜 이 게임이 성공했을까?



뭐 어때,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원래 이 게임은 정식으로 발매할 게임이 아니었다. 내부 콘테스트용으로 장난삼아 만든 게임인데 유튜브에 올린 게임플레이 영상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면서 정식으로 발매하게 된 게임이다.

2주만에 만든 게임답게 염소가 돌아다니면서 아무거나 들이박거나 무언가에 치이는 것 외에는 별다른 컨텐츠가 없다. 그래픽은 제법 괜찮은 편이지만 물리엔진이 이상하게 작동해서 기괴한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고 버그가 쌓여있다. 개발사에서는 게임이 갑자기 종료되는 버그를 제외하면 나머지 버그는 재미있으니까 고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말도 안되게 못 만든 게임이지만 오히려 이게 이상하게 재미있다는 이유로 이 게임은 인기게임이 되었고 문제점을 고칠 생각 없이 이상한 게임으로써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게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간에 게임은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얘기다. 뭔진 모르겠지만 염소 시뮬레이터는 재미있고, 그래서 성공했다.



'좋은 게임'이란 무엇일까

재미있으니까 좋은 게임이다. 게임인데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얼핏 듣기에는 맞는 소리다. 고작 게임인데 뭐 그렇게 대단한게 필요할까. 하지만 잘 생각해보자. 요즘 게임들은 '고작 게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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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게임으로 유명한 시드마이어의 문명 시리즈는 인류와 문명의 발전과정을 심도있게 담아냈다. 문명 시리즈를 플레이하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될 수 있고 게임을 유리하게 풀어나가기 위해 국민들의 불만을 억누르고 석유를 얻기 위해서 다른 대의명분을 끌여들여서 전쟁을 거는 자신을 보면서 왜 국가의 지도자들이 그런 선택을 하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도 있다.


스펙옵스 : 더 라인 은 전쟁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한 사람이 망가져가는 과정을 통해서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심도있게 다루었으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하다보면 어느새 호드를 위하여! 를 크게 외치며 웅장한 대서사시의 일원이 되어있는 자신을 찾을 수 있다.

게임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심심풀이용 오락에서 벗어나서 하나의 예술이 되었고 수많은 회사들이 대단한 작품들을 내놓는다.

그리고 이 웅장하고 거대한 작품들도 그래픽이 이상하다. 스토리가 어색하다. 밸런스가 안 맞는다 등의 이유로 수많은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게임회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하나라도 더 발전된 게임을 만드려고 한다.

그런데 이 냉혹한 게임의 세계에 왠 염소 한마리가 버그도 안 잡고 특별한 컨텐츠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오직 해보니까 재미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떻게 보면 불공평한 얘기이다. 이제까지 조그마한 트집거리도 남겨놓지 않으려고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누가 염소를 하나 주더니 별거 없고 버그도 많고 딱히 대단한 시스템이 있는것도 아니지만 해보라고 하니까그 엄격하고 불만많은 게이머들이 박수치면서 재미있다고 깔깔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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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쌔신 크리드 : 유니티는 프랑스 대혁명을 배경으로 파리 시내를 그대로 재연했으며 부드러운 파쿠르 액션을 구현해 아름다운 도시를 뛰어다닐 수 있게 했다. 암살단과 템플 기사단의 대립이라는 거대한 스토리를 이어가면서 선과 악, 자유라는 가치에 대한 철학을 담았으며 이전 작품에 비해서 전술적인 전투가 가능하도록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나 이 게임은 시리즈 최악의 작품이라는 혹평을 받았고 유비소프트는 큰 손해를 봤다. 버그가득하고 컨텐츠 없는 염소 시뮬레이터보다는 잘 만든 게임인데도 말이다. 어쌔신 크리드 : 유니티는 염소 시뮬레이터를 보면서 억울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대중 문화가 원래 그렇다. 사람들이 재밌어하면 좋은거고 사람들이 재미없어하면나쁜거다. 재미라는 가치에 객관적인 측정기준은 정해져있지 않다.

염소 시뮬레이터는 재미있기 때문에 성공했고 어쌔신 크리드 : 유니티는 그만큼 재미있지 못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

물론 염소 시뮬레이터는 시드마이어의 문명 시리즈처럼 잘 만든 대작 게임들만큼의 위치를 차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2주동안 대충 만든 게임이 재미있다는 소리를 듣고 히트를 칠 수는 있지만 대작의 반열에 올라서지는 못한다. 하지만 염소 시뮬레이터가 성공한 것은 사실이고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 비용을 투자했지만 재미없다며 버려진 게임들보다는 높은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그래서 이 성공하고 못 만든 게임은 좋은 게임일까.
일단은 그렇다. 사람들은 이 게임을 사서 재미있게 플레이했다.



마치며

염소 시뮬레이터는 기존의 게임들에게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만든 게임이 아니다. 현재 시장에서의 게이머들의 심리를 날카롭게 찌른 멋진 기획의 결과물도 아니다. 그냥 우연히 올린 영상이 인기를 끌자 출시한 게임이다.

하지만 우연히 인기를 끌어서 우연히 성공한 이 게임은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무엇이 게임인가, 무엇이 좋은 게임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에 있어서 염소 시뮬레이터는 중요한 힌트가 될 것이다. 염소 시뮬레이터는 재미있고, 그래서 성공했다.




[양준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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