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학종에 관한 씁쓸한 기억: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보며 [기타]

글 입력 2019.01.23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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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스카이 캐슬>을 몰아봤다. 친구들이 모두 드라마 얘기만 해서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얼마나 재미있기에 금요일, 토요일 밤마다 TV 앞에 앉아있는지 궁금했다. 이틀 동안 16화를 볼 만큼 몰입감이 높았다. 고3 대입 원서 접수 때가 많이 생각났다. 고3 생활이 생각보다 즐거웠지만 “다시 고등학교로 돌아가고 싶어?”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답은 “NO”다.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하고 활동한 것만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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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꿈인 예서는 어릴 때부터 노력해왔다
드라마 <스카이캐슬> 홈페이지

 


극 중에서 예서와 예서의 엄마는 서울의대에 가기 위해 학습 코디네이터까지 고용하면서 고군분투한다. 그것도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 합격이 일차적 목표이다. 코디네이터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예서의 성적뿐만 아니라 봉사, 자율활동, 동아리 심지어 생활까지 모든 것을 관리한다. 학종이 무엇이길래 목숨을 걸까?

 

학종 도입의 취지는 수능 한 번으로 학생의 대학이 결정되는 체계를 보완하고 학교생활 기록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은 재능 있는 학생을 가려내기 위해서였다. 어느 순간부터 학종은 수능을 잠식시킬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고등학교 내신이나 수능 성적이 안 나오더라도 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가 특출나면 대학에 갈 수 있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학생이 생기부에 지나치게 의존해 ‘생기부의 개’가 되는 현상도 생겼다.

 

예서가 생기부 독서활동으로 캐슬 내 독서토론모임에서 읽은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 어려운 책을 읽거나 예서가 멋대로 조퇴하자 예서엄마가 조퇴가 기록에 남을까 걱정하는 장면은 시청자 관점에서 어리석어 보일 수 있다. 성인이 읽어도 어려운 책을 고등학생이 이해할 확률은 낮다. 무단 조퇴 또한 학생 때 반항심에 땡땡이를 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학종으로 대학에 가려는 고등학생이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엄마 화장품을 몰래 바르는 아이처럼 생기부에 한 줄 더 적으려고 발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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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부가 꼭 거창해야 할까?

아직 배울 게 많은 어린 학생이다.

@Elemant5 Digital, Unsplash

 


필자는 학종 전형으로 대학에 합격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모의모사를 몇 번 보니 정시로는 원하는 대학에 가기가 턱없이 부족함을 깨달았다. 선생님들은 정시와 수시 둘 다 놓지 말라고 입이 닳도록 말씀하셨지만, 필자는 학종에 모든 것 걸었었다. 교사가 모든 학생을 일일이 기억할 수 없으니 몇 줄 적기 위해 이런 걸 했다고 어필해야 했고 지루한 강연을 듣고 아무런 느낀 점이 없었는데도 머리를 쥐어 짜내면서 거창한 수사로 꾸며야 했다. 그렇게 1, 2년이 지나고 3학년이 되자 학교에서는 몇몇 성적이 뛰어난 아이들을 위해 활동을 만들어주거나 상을 신설했다.

 

여러모로 학종에서 합격하기 유리하기 때문에 그들을 지원하는 건 일리가 있다. 그런데 생기부를 화려하게 치장할 필요가 있을까? 본인 역시 고등학교 때 생기부 꾸미기가 우선이었다. 막상 대학생이 되고 시간이 지나니 겉만 번지르르한 종이 묶음이 너무 우스웠다. 전문가들도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도서를 몇십 권 읽었다고 하는 게 자랑스러운 것일까? 아무리 머리가 비상하다 해도 아이는 아이다. 분명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할 텐데도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해당 과목에 대한 흥미를 키움.’이라는 문장을 조금씩 고치면서 입력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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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들고 다니며 캠퍼스를 걷는 낭만은 고등학생은 꿈꾼다.

@Elemant5 Digital, Unsplash

 


고등학교 때 선생님은 가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씁쓸하지만 너희가 들어갈 대학이 인생의 절반을 차지하잖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당시 가장 급한 불은 대학에 가는 것이었으니 좋은 대학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건 당연했다. 수시제도를 절대 비난하는 게 아니다. 다만 학생과 학부모가 ‘화장하는 것’에만 목메고 있다. 다채로운 활동보다 진중한 태도를 강조할 수는 없을까? 3년이라는 시간을 수능과 생기부에 투자하기에는 고등학교 생활은 너무 찬란한 찰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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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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