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따뜻한 겨울 하루의 끝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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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겨울 하루의 끝
- 故종현의 1주기를 기리며 -
2017년은 나에게 고단하고 외로운 해였다. 첫 직장, 그토록 꿈에 그리던 그곳에서 나는 모질게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작은 실수가 허용되지 않는 병원이라는 공간은 가혹한 곳이었다. 특히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신규라는 존재에겐 특히 그랬다. 모두의 처음은 어설프고 서툴다. 하지만 그곳에선 누구도 처음이어선 안 된다. 능숙하고 완벽하게 해내야만 한다. 병원은 모두가 자신의 백 퍼센트를 발휘해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쫓기듯 시간 위를 달리다 보면 하루가, 일주일이 금세 흘렀다. 붙잡을 수 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생명력을 잃어갔다. 상상력을 박탈당하고 가능성을 속박당한 채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렸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눈을 뜬 순간부터 잠에 들기까지 나는 계속해서 자기혐오에 시달렸다. 쓸모없는 존재, 무가치하고 독이 되는 사람. 오늘의 하루는 어떠했는지를 되짚으며 자책과 원망에 짓눌렸고, 풋잠에서 깨어나면 하루를 또 어떻게 보내야 할지 두려움에 몸이 떨렸다.
새벽 4시 30분, 통근 버스에 오르면 창밖은 어두웠다. 나는 버스가 영원히 달리길 바랐다. 길을 잃고 헤매길, 사고가 났으면, 영영 도착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가끔은 뛰쳐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이 버스는 어디로 가는 걸까, 목적지를 알면서도 가끔은 그런 궁금증이 들었다. 어둠 속 고요하게 나아가는 버스에 앉아 눈을 끔뻑이고 있으면, 문득 이 버스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알 수 없는 곳에 도착해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상상을 하며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를 위로해준 목소리가 있었다. 그는 따뜻한 손으로 나를 달래줬으며, 때론 서늘한 목소리로 나보다 더 크게 아파했다. 나의 새벽 4시엔, 종현, 늘 그가 함께 했다.
닫히는 엘리베이터에 비친 내 모습은
초라하게 남아 그래도 이렇게나마
눈 깜박거리며 숨 내뱉고 사는 이유
날 위해선 맞나 아니면 쫓기고 있나
솔직히 말해 봐요 솔직히 말해 줘요
숨기지 말아 줘요 숨기지 말아 줘요
언제부터 울고 있나요?
그대 어떤 표정 짓고 있는지 아는가요?
솔직히 말해 봐요 많이 외로워하잖아요
솔직히 말해 줘요 더는 무리인 걸 알잖아요
언제부터 혼자였나요?
거울 속 나와 눈 맞추는 게 어색할 정도죠 나는
- 엘리베이터 中 (종현)
평소 샤이니의 팬도, 종현을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았던 나는 종현의 솔로곡 <엘리베이터>을 계기로 그의 목소리를 처음 제대로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아프고 지독히 외로운 사람의 것이었다. 당시의 나도 그런 '아프고 지독히 외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는 단번에 그를 알아보고 사로잡혔다. <엘리베이터> 속 종현은 손짓하듯 노래한다. 외로운 사람들을 모아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그 위로 뺨을 비빈다. 다 안다는 듯, 이해한다는 듯. 나에겐 그런 사람이 필요했다. 나를 알아줄 사람. 내가 느끼는 이 고통과 아픔을 다 안다고, 다 이해한다고 말해줄 사람.
병원에서 부딪치는 수많은 보호자들, 그들을 보며 나는 환자들을 질투하고 부러워했다. 보호자들은 아픈 아이를 안아주며 귓가에 괜찮다고 속삭였고, 때론 환자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며 아파했다. 나는 그런 보호자들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철없이 질투했다. 나도 누가 괜찮다고 해줬으면 좋겠다. 나도 누가 잘하고 있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나도 누가 나보다 더 힘들어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종현의 음악을 듣는 순간, 나에게도 '보호자'가 생긴 기분이었다. 나대신 눈물을 흘려주는 사람. 안아주는 사람.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
다시 돌아온다는 말 참 예쁜 말이지
다시 또 만날 그날이 약속된 안녕인 거니까
따뜻한 겨울이 나에게 돌아왔듯이
네 맘도 언제나 내 곁을 돌고 있으니
있잖아 나 항상 하는 말이지만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말이지만
참 고마워 부족한 날 그대로 아껴줘서
덕분에 내 평생이 따뜻해
- 따뜻한 겨울 中 (종현)
4월에 발매된 소품집 '이야기 Op.2'를 참 많이 들었었다. 쌀쌀한 봄에 나온 앨범을 겨울이 될 때까지 들었다. 그는 내내 따뜻하고 쓸쓸했다. 이렇게 다정한 사람이 이렇게 아픈 목소리를 낼 수도 있구나, 그런 생각도 했다. '다정함'과 '아픔'은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하는 단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질적이고 어울리지 않는 느낌. 하지만 어느 날, 두 개가 서로 많이 닮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깊이 아파본 사람만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위로를 건넬 수 있다는 생각, 탁월하게 위로를 잘하는 사람은 어쩌면 그만큼 아파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에 몰두한 사람들, 그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잠들 수 없는 괴로운 밤의 공기를 기억하는 사람이다. 그 밤 자신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 사람들에게 바라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다정한 사람은 사실 다정함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2017년 겨울, 그의 소식을 뉴스로 접하고 많이 슬펐다. 그 해 나를 가장 위로해준 사람의 부고를 듣는 일은 기묘했다. 알 수 없는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이 슬픔과 뒤섞였다. 다음 날에는 이소라의 콘서트에 갔다. track4를 들으며 몇몇의 사람들이 흐느꼈다. 모두 널 그리워해, 안녕히 이제, 괜찮아 영원히.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종현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듯했다. 나는 생각했다. 반드시 나아가야만 하는 건 없다. 끝까지 버텨내야만 하는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까 괜찮지 않을까. 먼 곳에선 편안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017년의 마지막 일기에는 이렇게 적었다.
다사다난하고 길고 길었던 2017년도다. 친한 친구가 생겼고 또 그 친구와 멀어졌고, 새로운 친구들이 생겨났다. 일을 시작했고 많이 울었고, 결국엔 퇴사했다. 눈물과 괴로움으로 보내던 당시의 감정은 즐겨듣던 노래에만 간간이 흔적이 묻어있을 뿐이고, 그 노래를 부르던 가수는 세상을 떠났다. 나를 괴롭히던 보호자는 나의 사직 소식에 눈물을 보였고, 가장 무서워하던 선생님은 내 뒤에서 일할 때 든든하다 말했다.
한때는 도망치고 싶었던 공간인 병원을 마지막으로 떠나는 날엔 발걸음이 무거웠다. 아쉬웠다. 유독 북적북적 많은 사건과 사람들도 붐볐던 한 해다. 돌이켜보니 찰나다. 그토록 괴로워하고 힘겨워했던 시간들이 이제 와 순간으로 느껴지니 허무하고 허탈하다.
나중엔 결국 순간이 되어버릴 일들인데, 난 무엇 하러 마음에 담아두고 힘들어했을까?
2018년도엔 26살이 된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2018년 12월 18일, 종현의 1주기다. 그가 있는 곳이 다정했으면 좋겠다. 그는 우리에게 늘 다정한 사람이었으므로.
[송영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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