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각예술]

글 입력 2018.12.0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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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현대사는, 참 많이 아프다.

사회진화론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서양 열강들의 힘겨루기 사이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역사책 속 우리 민족을 볼 때마다 참 안타깝다.

서양의 제국주의를 이어받은 일본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사지에 내몰렸던 사람들. 그들 또한 누군가의 아버지였을 것이고, 어머니였을 것이며, 이 세상 단 하나뿐인 딸과 아들이었을 것임을 생각하면 다시금 가슴이 미어진다. 1945년에 해방을 맞은 이후 정부에서는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고, 그 결과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아무런 사과도, 인정도 받아내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21세기가 되었지만, 진전된 것은 없다. 여전히 일본은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이 문제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차차 잊혀지고 있다.

얼마 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김순옥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스물 여섯 명으로 줄었다. 이는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피해자 할머님들이 살아 계실 때 일본의 역사 인정 및 진심 어린 사과를 받기 위해서는 이 문제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필자 역시 피해자들과 같은 ‘여성’이기 때문이다. 열다섯 살에 강제로 연행되어 조직적, 강제적, 그리고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지만 사과조차도 받지 못한 그들의 편에 서서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어떻게든 진실을 밝히고 싶은 마음이 크다.

故 김순옥 할머니의 사망 소식을 접하며, 필자는 지난 마리몬드 전시에서 보았던 신혜원 작가의 작품들을 떠올렸다. 다섯 작품들이 유난히도 마음을 울려 전시장에서 가장 오랜 시간동안 감상했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다.
본고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된 신혜원 작가의 다섯 작품들을 소개하고, 짦은 감상을 덧붙일 예정이다. 이를 통해 세상을 떠난 모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추모하며, 동시에 이 문제 해결의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신혜원 작가의 작품은 검은색과 흰색이 주를 이룬다. 검은색은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를 형성하기도 하고, 모든 스토리를 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필자는 이 작품에서 검은색은 어린 나이에 위안소로 끌려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 받아야 했던 소녀들의 심정을 담아내고 있다고 보았다. 해방 이후 돌아온 조국에서도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소녀들. 해방이 된 지 70여 년이 흘러 할머니가 된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지원도, 인정도, 사죄도 받지 못한 그 이루 말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쌓이고 뭉쳐 검은색 안에 전부 녹아들었다. 바탕을 두고 있는 스토리가 결코 가볍게 접근해서는 안 되는 심각한 주제이기 때문에 이 그림에서 검은색은 전체적으로 무거운 느낌을 준다. 또, 관객들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여 위안부 문제와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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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원, Surrounded


<Surrounded>, <Eye>, <Mouth>, <Ear>, <In Blossom>. 다섯 작품들은 그 시대에 살았던 소녀 한 명의 삶을 그림 다섯 점으로 압축해서 표현했다는 느낌을 줌으로써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서사적 특징을 갖는다.

먼저, 첫 번째 작품인 <Surrounded> 에서는 작은 꽃들이 등장한다. 이 꽃들은 소녀를 둘러싸고 있지만, 가운데 검은색으로 그려져 있는 소녀 안에는 꽃이 없다. 소녀를 둘러싼 꽃들은 작고 흐릿하며, 흰색보다는 회색에 가까운 색깔로 표현되어 있다. 꽃이라는 것은 대부분 밝은 이미지인데, 이 꽃이 소녀 안에는 존재하고 있지 않다. 이는 소녀가 부정적인 상황에 처해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필자는 처음에 이 그림을 가까이서 보았을 때 윤곽선이 없어 그림 속에 소녀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한 두 발자국 떨어져 작품을 본 다음에야 그림 가운데의 검은 부분이 소녀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소녀의 모습을 검은색으로 그린 것일까.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첫째로, 앞서 설명했듯 어둡고 우울한, 그러면서도 모든 스토리를 담고 있는 색이 검은색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특정한 한 명이 겪은 일이 아니라, 이 시기에 유년시절을 보냈던 많은 소녀들이 위안부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소녀의 부재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세 번째 이유를 좀 더 설명하자면, 이 그림은 인물 사진에서 인물을 지워 버린 듯한 느낌을 준다. 소녀가 원래 이곳(고향)에 꽃(행복)과 함께 있었는데, 소녀는 어느 순간 떠나가고 주변의 꽃들은 마치 소녀의 생활이 순탄치 않다는 것을 암시하듯 바깥쪽부터 차례로 흐릿해져 가기 시작한다. 또, 작품명이 현재형이 아니라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 작품의 제목은 <Surrounded>로, 이는 분사형과 형태를 같이하는 과거형이다. 수동 분사형으로는 ‘둘러싸였다’라는 의미를, 과거형으로는 ‘둘러싸였었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결국 작가는 작품과 작품명 전체에서 소녀의 부재를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어린 소녀가 겪어야 했던 고통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을 갖도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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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원, Eye


<Eye>, <Mouth>, <Ear> 작품에서는 첫 번째 작품인 <Surrounded> 에서 어디론가 떠나버린 소녀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서 눈, 입, 귀는 모두 외부와의 소통을 위한 감각기관이다. 미술작품의 제목은 곧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작가가 이런 감각기관의 이름을 작품명으로 한 이유는 다섯 개의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삶’ 과 이것이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먼저, <Eye>. 한 쪽 눈을 가리고 있는 꽃에서는 마치 눈물처럼 이슬이 맺혀 있다. 꽃에 가려지지 않은 한 쪽 눈동자는 눈물이 고인 듯 일렁인다. 음영을 통해 다소 사실적으로 묘사된 이마 근육은 눈을 크게 뜬 것처럼 움직이고 있다. 이 세 가지 요소에서 울음을 참으려고 하는 사람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Mouth>에서는 꽃 너머로 굳게 닫힌 입술이 묘사되어 있다. 이는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연상시킨다. 웃음기 없이 일자로 닫힌 입술과는 정반대로 활짝 피어있는 꽃은 마치 문학 작품에서 대조법을 사용해 슬픔을 부각시켜 나타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Ear>는 귀보다는 꽃이 선명하게 표현되어 있어 꽃에 먼저 시선이 가는 작품인데, 아직 피지 않은 동백꽃으로 보이는 꽃봉오리가 그려져 있다. 그 뒤로 가만히 고개를 돌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꽃 이파리에 가려져 정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볼과 광대 부분을 보면 웃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완전한 측면보다는 살짝 왼쪽으로 좀 더 몸을 틀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옆모습에서는 쓸쓸함과 외로움, 혹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신혜원 작가의 다섯 작품이 한 소녀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 해석해 볼 때, 이 세 작품의 주인공도 <Surrounded> 속 소녀의 모습이다. 어디론가 떠난 소녀는 더 이상 그리운 것을 볼 수도, 말할 수도, 들을 수도 없다. 그래서 소녀는 더 이상 웃지 않고, 눈에는 눈물이 맺혔으며, 입술은 꼭 닫혔다. 만약 이 그림이 소녀의 모습이 아니라, 소녀가 없는 <Surrounded>의 배경이 되는 꽃이 있는 공간, 즉 고향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면, 이는 소녀의 소식을 포함해 일제에 의해 희생된 많은 사람들에 대하여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말할 수 조차 없는, 일제 치하에서 고통 받았던 우리 민족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개개인의 가치관조차 바꿔놓으려 했던 잔인한 일제의 모습이 바로 여기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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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원, In Blossom


<In Blossom>에서는 첫 번째로 살펴본 <Surrounded>와는 달리 주변으로 흩어져 퍼져 있던 작고 흐린 꽃들이 가운데에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꽃들은 제법 크고 선명해서, 꽃잎의 주름까지도 꽤나 생생하다. 또, <Surrounded>의 꽃에는 없던 이파리들이 생겨 꽃과 꽃을 연결하며 마치 꽃다발과 같은 느낌을 준다. 소녀의 빈자리를 꽃이 가득 채우고 있다.

필자는 이것을 소녀가 할머니가 된 후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꽃이 되어, 자신의 아픔에도 다른 사람에게 먼저 손 내미는, 이제는 할머니가 된 소녀의 모습. 꽃과 꽃 사이가 이파리로 연결된 것은 사회적 연대를 뜻하며, 이제 소녀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녀가 겪었던 고통을 나누고,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함께 걷겠다는 ‘You Never Walk Alone’의 의미가 있다. 그렇게 할 때에야 비로소 이 사회 전체가 아름다운 꽃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것이다.

신혜원 작가는 <Surrounded>, <Eye>, <Mouth>, <Ear>, <In Blossom> 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또한 이것은 엄연한 인권유린이었으며, 피해자의 신체적·정신적 피해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관람객들은 그림에 함축되어 있는 서사를 파악하며 이 문제의 해결이 이제 우리 세대에게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In Blossom>의 이파리가 되어야 한다. ‘I Marymond You’ 라고 아픔 없이 인사하는 날을 위한, 끈질긴 이파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세대에 주어진 일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절대 일시적인 이슈가 아니다. 이것은 발생 이후 지금까지 현재진행중인 문제다. 신혜원 작가의 작품은 이 지점을 정확히 지적해내며, 우리로 하여금 존귀함의 실천을 위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숙고할 시간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김보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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