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또라이 보존의 법칙에 관한 고찰 [기타]

무례한 사람에게 대처하기 위해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마세요!
글 입력 2018.12.03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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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모르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직접 법칙의 내용을 가져와봤다.



1. 직장 상사 중에 또라이가 있다. 팀을 옮겨도 그 팀에 똑같은 또라이가 있다.

2. 옮긴 팀의 상사가 조금 덜 또라이다. 대신 그런 또라이가 여러 명 있다.

3. 내가 이 악물고 버티면 또라이가 회사를 그만두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러나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또라이다.

4. 또라이를 못 이기고 결국 탈출한다. 그러나 도망친 곳에 역시 또라이가 있다.

5. 만에 하나 내 주변에 또라이가 없을 수도 있다. 그 경우에 또라이는 바로 당신이다.


가장 소름 끼치는 마지막 5법칙..하하



인터넷으로 퍼져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명했었던 이 명언(?)은 이제는 ‘고전’이 되어 아직까지도 길이길이 회자되고 있다. 직장인들에게만 그리고 ‘상사’라는 직책에만 국한되는 말이 아니다. 이 또라이 보존 법칙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일명 조별과제빌런(*대화도 안되고 참여도 안 하고 팀 전체의 효율까지 후진시켜버리며 다른 사람에게 손해까지 끼치는 데 고집까지 센 조원을 뜻함)을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되기도 하며 정말 많은 ‘공동체’에 적용이 된다. 특히 성향 간의 차이가 있다고 해서 관계를 끊을 수 없으며 함께 결과를 내야 하는 목표가 있는 공동체(대표적으로 회사)에서 특히 많이 회자된다.


사람마다 관계에 있어서 허용할 수 있는 기준과 가치관이 다르기에 당연히 이 법칙이 완벽한 참(true)은 아니지만, 이 말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공감하며 아직까지 자주 쓰이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유형의 무례한 사람들 (또라이 보존 법칙 속 또라이들) 때문에 힘들어했고, 힘들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렇게 길게 또라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또라이 보존 법칙처럼 어딜 가나 한 명쯤은 있는 무례한 사람들을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나의 생각(이자 의식의 흐름)을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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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또라이란 주로 정말 정말 정말 무례한 사람들이었다.(무려 3번 강조) 사실 ‘또라이’라는 부정적인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모호하지만 사람이란 다채로우면서 아이러니하게 한결같기도 해서, 공감능력이 거의 없으며 항상 무례한 말과 행동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쉽게 주며 공동체의 효율도 후진시키는 사람을 꽤 자주 겪었다.(나의 경우에는 1년에 1-2명꼴로) 그들의 존재감은 꽤 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20살 이후로 계속해서 이런 사람들을 대하는 법에 대해 고민하고 여러 가지 것들을 시도했던 것 같다.


그들이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명 또라이라 불리는 그들은 본인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지 모르고, 그런 말과 행동이 자신을 깎아먹는지도 모른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한마디로 대화가 잘 안된다. 대화의 시작은 서로 대화의 논점에 동의하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인데, 시작부터 소통이 안되니 그냥 숨이 탁 막히듯이 답답하다.


그래서 생각해낸 나의 또라이 대처 방법이 바로 ‘또라이 되기’었다. 대부분 (이상하게도) 공통적으로 역지사지가 되지 않는 그들처럼, 나도 그들과 똑같이 그들을 대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무례한 사람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통쾌하게 한방 날려주는 것을 꿈꾸는 것처럼 말이다. 무례한 사람에게 무례하게. 그런데 또라이들을 상대하기 위해 똑같이 행동하려는 나의 계획은 완성형이 되지 못했다.


그들은 웬만해선 타격을 잘 입지 않기에 (애당초 본인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법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둘째치고, 나의 회심의 대처 방법은 나에게도 그다지 좋은 영향을 주지 못했다.


무례한 사람들에게 대처하려 나를 무장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무례한 사람인지 계속해서 주시해야 한다. ‘또라이에게는 또라이처럼!’을 실천하기 위해서 나는 새로운 관계가 생길 때마다 그들이 혹시나 또라이인지 아닌지 판단하려 했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재는 태도 자체는 상대가 나에 대해 그렇게 할 때만큼이나 반대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경험이 아니었다. 어찌 됐든 나는 ‘나’여서, 아무리 큰 이해능력과 공감능력을 가졌다 해도, 타인을 완전히 알 수가 없다. ‘공감/이해’와 ‘경험’은 결코 다른 것이다. 게다가 감정의 영향력은 크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판단에 자꾸만 비합리적인 감정이 개입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상대를 판단하려 하는 습관은 이기적이고 편협한 시야를 가지게 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드는 회의감은 정말... 찝찝하다.


또한 좋아하는 마음만큼이나 싫어하는 마음도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더하여 어떤 사람을 싫어하는 마음은 나의 기분도 구리게 만든다. (표준어는 아니지만,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가 없다.) 나의 행복을 마음껏 영위하며 살기도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데, 무례한 사람에게 대처하기 위해, 그들에게 마음을 쏟는 일이 얼마나 억울한가. 10명 중에 한 명이 될까 말까 한 완성체 또라이들을 위해 나는 아주 적극적이고 성의를 다해 노력하고 있었고, 심지어 나를 위하는 줄 알았던 그 노력은 나에게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결국 관계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은 나를 향한 공격을 모두 쳐내고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낼 것은 흘려보내면서 그저 나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두꺼운 갑옷에 집중하다 보면 나조차도 정작 중요한 나를 보지 못하게 된다. 잃어버린다. 더 싫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말고, 휘둘리지 말고, 그저 그들이 그러함을 인정하고 (그들이 옳다는 소리가 절대 아니다.) 보다 옳은 것에 집중하며 나를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물론 특히 일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단순히 감정적인 부분을 넘어서서 여러 가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무례한 사람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가장 옳고 이성적인 말로 그 사람을 대하며 나의 선이 여기까지라는 것을 계속 그어주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이지만, 그럼에도 내가 제시한 선을 무시하고 아주 적극적으로 나를 갉아먹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이 상사이거나, 갑의 위치에 있을 때는 더 대처하기 어렵다. 그럴 경우엔 아예 그 관계를 포기하거나 그 공동체에서 나와버리는 것을 도망치는 것 혹은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포기하는 것만이 답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자신마저 자신의 선택을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않았으면 한다. 더러운 똥이 묻은 운동화를 벗어던진다고 해서 내가 운동화에게 진 것이 아닌 것처럼, 냄새나는 운동화를 참고 계속 신든, 어떻게든 닦아보든, 아예 버려버리든 그 운동화에게 내가 진 것은 아니지 않는가. (예시로 든 비유가 좀 이상하긴 하지만.) 선택은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길을 택하고 나아가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게다가 사족을 붙이자면, 어디에나 또라이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괜찮은(?) 또라이도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실은 언제나 보통인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희망을 잃지 않길)






모든 개인이 다 조금씩 다르기에 사람 관계에 있어서 완벽한 답은 있을 수가 없다. 어떤 조언이 약간의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언제나 예외는 있고, 어떤 상황들이 비슷할지언정 완벽하게 동일한 경우는 결코 없다. 그렇기에 인간관계에 있어 “이게 도움이 돼! 이게 옳아!”라고 말하는 것에 조심스럽지만, 그럼에도 나 스스로에게 도움이 됐던 생각이 바로 “애당초 나에게 상처를 주는 무례한 사람에게 대처하기 위해, 내 일상의 에너지를 쏟아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겪을 수많은 사람들의 여러 가지 날카로운 말들을 하나하나 담아두며 나를 얼룩덜룩하게 만들지 말고, 흘려보낼 건 흘려보내면 된다. 그건 지는 게 아니다. 스스로를 무례한 사람과의 링 위에 자꾸 출전시키지 말자. 나를 위한 싸움 같아 보이지만 계속 그 링 안에서 있다면 이기든 지든 나는 지치고 상처 입는다.


다소 현학적인 표현의 제목으로 시작한 이 글을 통해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간단하다. 말이 길어졌지만 나와 같이 무례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응원의 말을 외치고 싶다.


"무례한 사람에게 대처하기 위해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마세요!"



[이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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