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겨울은 어떤 계절인가요? [문화 전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그리고 비클래스
글 입력 2018.11.2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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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또 겨울이다. 창밖에 푸른 녹음 대신 붉은 낙엽이 흩날리더니, 이젠 새하얀 눈발이 공중을 떠도는 계절 속에 와 있다.

정신없이 살다보니 계절이 녹아내리는 것도 잊고 그저 하루하루를 날려 보낸 게 아닌가, 하며 잠시 사색에 잠기기 좋은 첫눈 내리는 날이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무엇이냐는 뻔한 질문에 나올 수 있는 대답은 네 가지뿐이란 걸 알면서도 우린 낯선 사람에게 빼먹지 않고 묻는다. 무슨 계절을 좋아하세요?

겨울이 가진 지독한 추위 탓인지, 햇빛만 닿으면 처치곤란해지는 눈 탓인지, 그간 겨울은 늘 조금씩 외면 받고 조금씩 미움 받았다. 하지만 온도만큼 상대적인 개념도 없어서 겨울이 추워야 봄이 따뜻하고, 여름이 더워야 가을이 선선한 법이다. 추운 계절에서 미약한 온기를 찾을 때면 더없이 따뜻해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마지막 연이다. 세상이 온통 하얀 겨울날, 내 머릿속을 떠도는 나타샤와 이 속세를 떠나 행복하게 살 생각을 해본다.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단지 생각에 그칠 뿐이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따스한 계절이 아니겠는가. 햇빛이 쏟아지는 여름날보다도 한없이 포근할 터다.

겨울만 되면 어렴풋 생각나는 극들이 있다. 그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는 단지 배경이 겨울이라서가 아니다. 극이 그리는 겨울이 너무도 춥지만 너무도 따뜻하기 때문이다. 가난과 추위에 떨던 백석과 자야가 마지막에 새하얀 조명을 그대로 받으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부르는 모습은 ‘아름답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그리는 겨울이 포근함이라면, 연극 ‘비클래스’가 그리는 겨울은 혹독함 그 자체다. 택상이 이겨내야 할 성장통이고 치유해야 할 상처다. 어린 시절 한 번의 실수가 평생의 상처가 된 택상이 자신의 어린 날을 회고하는 계절도 겨울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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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입니다. 잘 지내시죠. … 그곳을 떠난 이듬해 봄, 저는 아버지가 일하시는 현장에 함께 있었어요. 눈이 아주 많이 내리는 곳입니다. 그해 봄에 녹기 시작한, 더 이상 깨끗하지도 않은 눈을 보며 묘한 동질감에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새하얗고 깨끗한, 순수하고 아름다운 눈이 아닌 더럽고 질펀한 눈. 택상은 그 시절을 그렇게 묘사한다. 너도 아프고 나도 아팠던 그 사춘기. 생각할 사(思)에 봄 춘(春), 봄을 생각하며 혹독한 추위를 견뎠던 우리 모두의 환절기가 담긴 극이다. 택상에게 있어서 누구보다 춥고 아팠을 계절이 겨울이었을 것이고, 그게 겨울만 되면 이 작품이 떠오르는 이유다.
 


“햇살은 겨울을 잊은 듯 굴어도, 바람은 겨울을 잊지 못한 계절입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은사님께, 김택상.”



누군가에겐 더없이 따스할 수도, 누군가에겐 더없이 차가울 수도 있는 계절인 겨울, 당신의 겨울은 어떤 계절인가요? 건강 조심하세요, 여러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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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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