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극과 극을 달리는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10.26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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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거리에서 종종 서로 다른 계절을 살아가는 이들을 본다. 원래 가을이라는 계절이 사람으로 하여금 갈피를 못 잡게 하는 큰 일교차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올해는 유독 더 한 것 같다는 느낌이다. 한 거리에 반팔 티셔츠와, 트렌치 코트와, 롱패딩이 모두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란.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며, ‘가을’이라는 단어로 이제 이 계절을 정의하기에는 어쩐지 생경한 기분이 든다.


아마 내년은 더, 그리고 5년 후는 더욱 더, 그리고 10년 후는 훨씬 봄과 가을을 예전처럼 정의하기가 힘들어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에겐 이제 앞으로 지구 온난화로 인해 더움 혹은 추움, 각각 극과 극에 놓인 여름과 겨울만이 계절의 전부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이미 들어맞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로 끝과 끝을 오가는 계절, ‘중간’이란 것이 사라져버린 것만 같은 요즘의 날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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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편 이런 날씨 이슈에서 조금 눈을 돌려 사회적 이슈들을 보고 있으면, 혹시 ‘지구 온난화’라는 것이 사회문화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 아닐 수 없다. 최근의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얼굴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극단적인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헤겔이 그의 이론인 ‘변증법’을 통해 말하는 것처럼 사회가 언제나 대립과 분열을 통해 끝내 발전을 거듭한다고는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정반합’일지도 모르는 이 극한의 대립은 현재까지 겪어 왔던 수많은 대립과는 그 ‘결’과 ‘양상’이 너무나도 다르다.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 ‘꼰대’와 ‘안꼰대’와 같은 문제들이 그렇다. 대립은 곧 조롱이나 혐오로, ‘모가 아니면 도’라는 흑백논리로 변질되어 우리 사회의 수많은 이들은 오늘도 서로 칼끝을 겨누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실로 요즈음의 우리 사회 또한 이 계절처럼 끝과 끝을 오가는, ‘중간’이란 것이 사라져버리고 있는 극단의 사회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존중과 혐오의 ‘한끗’ 차이



오늘도 온라인 상에서는 성(性)과 성(性)의 대립이 한창이다. 젠더 감수성에 관한 문제, 남성과 여성의 시각차와 그 대립은 사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계속되어 왔지만, 특히 최근에 이러한 젠더 이슈가 성별 간 갈등 심화와 사회적 논란까지 이르게 된 계기에는 1년 전 시작된 ‘미투(Me Too) 캠페인’이 있었다. 2017년 10월, 미국의 영화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행을 폭로하기 시작한 이후 시작된 ‘미투(Me Too)’ 캠페인은 곧 미국 전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빠른 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전세계적으로도 빠르게 확산되었다.


한편 국내의 여성주의에 대한 본격적인 사회 이슈화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통해서부터 다. 하지만 올 1월 미국에 이어 하나 둘씩 국내에서도 미투 폭로가 터져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사회에서 젠더 이슈, 특히 ‘페미니즘’과 같은 주제들은 본격적으로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그런데 현재 전개되고 있는 페미니즘 운동과 이에 기인한 양 성(性)간의 대립 양상을 보면, 간혹 일부의 사람들에 의해 상대 성별을 존중이 아닌 ‘혐오’의 시선으로 지칭하는 모습이 보이곤 한다. 상호 존중과 평등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는 ‘인권’ 운동의 일종인 페미니즘의 전개에서 오히려 양 성(性)간의 간극이 더 벌어지고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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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JTBC 뉴스)



한편 이러한 양 성(性)간의 대립 이외에도, 이른바 ‘꼰대’와 ‘안꼰대’ 간의 세대 갈등도 서로를 향한 우리 사회에서 현재 나타나고 있는 대표적인 상호 혐오의 양상 중 하나다. 지난 해인 2017년을 기준으로 노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서며 고령 사회로 접어든 후, 우리 사회의 세대 간 갈등은 해소되지 못하고 오히려 더 빠르게 혐오의 양상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이를 반영하는 신조어가 바로 ‘틀딱’, ‘연금충’, 그리고 그 반대로 노년층이 청년층에 대한 혐오를 담아 주로 던지는 말이 바로 ‘요즘 것들은…’과 같은 것들이다. 과거 공경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노년층은 이제 젊은 층에게 고지식하고 이기적인 존재가 되었고, 반대로 젊은 세대는 노년층에게 버릇 없고 ‘아래 위도 없는’ 존재들로 서로 여겨지고 있다. 참 씁쓸한 현실이다.


이 ‘혐오’의 시대에 대해서, 우리는 가장 먼저 서로가 서로를 겨누는 이 모든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인권’에 대한 문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권의 문제에서 가장 뿌리에 있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인간 존중’의 개념이라는 것 또한 명심해야 한다. 모든 인간에 대한 감수성과 윤리는 바로 상호 간의 존중과 이해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이 인간 존중의 테두리를 벗어나서도 안된다. 존중과 이해의 정도가 과해지면 그것은 곧 타인에게 ‘오지랖’ 혹은 ‘참견’이 되고, 그것은 곧 ‘오해’로 번지고, ‘갈등’이 되고, 결국 지금과 같은 ‘혐오’의 모습으로까지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언제나 ‘적당히’ 열려 있을 줄 아는 인간이어야 한다. 무심함과 오지랖 사이, 가장 기본적이지만 또 가장 어렵기도 한 ‘중도’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단은, ‘편견’을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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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혐오의 시대를 벗어나기 위한 ‘중도’의 자세를 견지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가지고 있던 ‘편견을 버리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무의식 속에서 이미 많은 것들을 규정짓고, 분류하여 정의 내리며 살고 있다. 특히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현대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즉 자신이 특히 듣고 싶고 알고 싶은 것을 위주로 정보를 취사 선택해 받아들인다. 그래서 현대 사회는 필연적으로 편견이나 고정관념들이 만들어지기 쉬운 환경이 되었다. 사회와 정보의 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점점 복잡해져 가고, 이를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그것들을 ‘분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보가 곧 고정관념으로, 혹은 편견으로 자리잡는 과정은 아주 간단하다. 가령 ‘A라는 여성이 어떤 행동을 했다더라’, 혹은 ‘B라는 남성이 어떤 말을 했다더라’ 라는 정보에서 A와 B라는 고유 명사를 지우고, 여성과 남성만을 남긴 뒤 이것을 개인의 문제에서 확장시켜 ‘여성’이라는 집단, 혹은 ‘남성’이라는 집단으로 생각해버리면 곧 편견이 된다. 그렇다. 편견을 만들기 위해서는 세상을 살고 있는 70억 인간의 다양성을 한 순간 간과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편견은,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된 혐오는 우리에게 한 번 덜 생각해도 되는 일말의 단순함을 주는 대신 우리의 분열과 갈등을 극과 극까지 이르게 하는 무서운 결과로 되돌아왔다. 마치 편리한 생활을 위해 무심코 사용했던 환경 오염 물질들이 지구 온난화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 온 것처럼 말이다. 지금의 우리 사회가 계절이라면, 이 곳 그 어디에도 봄과 가을의 모습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각자가 이미 가지고 있는 편견의 단 ‘한꺼풀’ 씩이라도 거두고 서로를 보면 어떨까? 혐오의 문제가 단순한 갈등을 넘어서서 범죄의 연속으로 이어지고 있는 지금, 서로를 겨누던 칼날을 거두고 혐오를 화합으로 바꾸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이자 현재의 우리 사회를 ‘살리는’ 유일한 길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편견의 얇은 껍질을 벗기고 나면 우리는 너무나도 명백히 ‘인간’이라는 것을. 청년 혹은 노인이기 이전에, 여성 혹은 남성이기 이전에 분명한 ‘인간’이라는 것을 반드시 생각해야 할 때다. 그리고 그런 지금은 극과 극만이 존재하는 계절이 아닌, 결국 서로가 저마다의 얇은 편견의 껍질을 버리고 오롯이 ‘인간’으로 서서 서로를 살려야 할 계절. 칼날을 거두어야만 하는 계절. 우리 사회의 온난화를 끝내야만 할 ‘기회의 계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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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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