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는 1980년대의 부조리한 구조 속의 대한민국을 그린 블랙코미디 연극이다. 연극의 주인공 김두관은 '용감한 시민상'을 얼떨결에 수상하였고, 이 상을 위한 무고한 피해자가 생겼다. 훌륭한 용기와 공로를 치하하기 위한 상이 "어쩌다"가 이런 show가 되어버리고만 것일까.
작년의 한 기사가 떠올랐다. KBS 드라마 '학교 2017'의 배우 장동윤의 과거사였다. 그는 지난 2015년 서울 관악구의 한 편의점에서 흉기를 들고 점원을 위협하는 강도를 발견했고 친구와 통화하는 척하며 112에 신고를 하여 강도 검거를 도왔다는 기사였다. 이후 장동윤은 서울 관악경찰서장으로부터 감사 표창을, 모교인 한양대에서도 한양 에토스 상을 받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시민상 수상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물론 그들의 행동은 칭찬받아 마땅하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희생한 이들을 위한 상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상이 존재한다는 것과 누군가에게 수여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무릇 그 자리에 다른 어느 누구였어도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위험에 놓였을 때, 그 상황을 그저 보기만 하거나 피하거나 지나가는 것이 요즘의 모습이다. 이 시대가 이제는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된 것은 아닐까라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불의에 도전할 용기, 타인을 감싸줄 용기, 소신을 지킬 수 있는 용기 같은 것들이 보기 어려워졌다. 어쩌면 용기가 생존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부정의한 국가 권력, 부조리한 자본주의 앞에 '초능력'과 같은 판타지가 아니면 기댈 데가 없는 씁쓸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지 않던가.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 '용기'의 가치는 마치 초능력처럼 소수에게만 있으며 너무나도 소중하다. 하지만 이러한 용기가 더 이상 빛나고 귀한 것이 아닌 모두에게 있는 흔한 가치가 것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작가 최치언이 구사하는블랙유머와 극적인 성격이 돋보였다
다음은 공모 심사 당시 받은 평이다.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는 남산예술센터 2018년 시즌 프로그램 공동제작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품이다. 기발한 상상력, 한국 현대사 30년 세월을 가로지르는 드라마, 극중극 형태 등 연극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최치언 특유의 스타일로 웃음 뒤에 서린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감탄사로만 이루어진 제목이 재미있다. 그런데 이러한 제목이 지어진 배경을 들어보면 썩 재미있지만은 않다.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라는 제목은 주인공 2명의 삶을 지켜보는 연극 관객의 감탄사를 미리 담았다. 군사정권의 정당성을 포장하려는 국가 권력이 만들어 낸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두 주인공은 용기를 내지만, 그럴수록 수렁에 빠지는 모습이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를 연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웃음 속 비치는 씁쓸한 감탄사가 자아낼 연극 속 내용이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