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공존하는 방법

글 입력 2018.06.22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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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피티, 예술인가 범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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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피티(Graffiti)는 ‘낙서’를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뉴욕 브롱스 슬럼가의 갱스터들이 벽에 낙서를 남기며 영역을 표시하던 것이 그것의 시작이다. 그래피티는 이후 갱스터뿐만 아니라 사회에 반항하고자 하는 이들의 중요한 표현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그들은 그들을 억압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기 위해 사적재산, 공공재산을 훼손했고, 도시 공간의 불법점유를 신성화하였다.

1980년대에는 뉴욕 지하철에 그래피티를 그려놓는 것은 당국에게 큰 골칫거리인 사회적 현상이었다. 물감 폭탄을 훔치고 금지된 장소에 낙서를 남기고, 때로는 시민의 안전에 위협적인 테러행위를 하는 것은 특히 보수적이던 당시 사회에서는 결코 환영받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1994년, 뉴욕시장으로 선출된 루돌프 줄리아니와 신임 검찰국장인 윌리엄 브래턴은 뉴욕의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문제로 그래피티를 꼽기도 했다. 예술과 관용의 도시, 프랑스에서도 그래피티 미술에 ‘제로 톨레랑스’를 선포하며 그래피티가 설 공간을 말살하고자 했다. 그래피티는 예술이라기보다는 범죄행위로 인식되어왔다.



그래피티의 현주소 – 스트리트 아트로의 확장


그렇다면, 현재의 그래피티의 위치는 어딜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신분 수직 상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랫동안 조롱당하던 존재인 그래피티는 그 명성을 획득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래피티를 ‘힙한 벽화’라고 생각할 정도로 예술적인 대상으로 여긴다. 최근에는 태크, 스텐실과 같은 기술혁명을 맞이하면서 스트릿 아트(street art)라는 장르로 발전하였다. 특히 뱅크시(BANKSY)와 스틱(STIK)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트릿 아티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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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그래피티가 반사회적 메세지를 주로 담았다면, 점차적으로 사회적 이슈에 대한 풍자, 거리의 특성을 살린 위트있는 작품 등 아티스트의 창의력이 발휘된 다양하고 개성있는 형태로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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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의 일상에서 그래피티 이미지가 들어가지 않은 것을 보기가 더 어렵다. 가수의 뮤직비디오, 의류의 로고, 심지어는 루이비통과 같은 고가의 명품 브랜드에서도 그래피티 이미지를 차용한 제품을 많이 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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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회와 공존하는 방법 _ 신촌의 토끼굴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그래피티는 도시를 미화하려는 목적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공공기물을 훼손하고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출발한 것인만큼, 불법에 그 정체성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국내에서는 형법상 재물손괴죄와 경범죄 처벌법상 광고물 무단부착규정, 그리고 건조물 침입죄, 공동재물손괴죄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행위이다. 이런 반사회적인 예술행위가 우리 사회에서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을까? 필자가 다니는 학교 근처에는 그래피티가 가득한 ‘토끼굴’이라는 지하통로가 있다.  그곳에서 나는 감동적인 화합의 모습을 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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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이렇게 사회와 공존하고 있었다. 예술과 사회, 자유와 질서는 이렇게 공존하고 있었다.

이곳의 그래피티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서대문구를 나타내는 인물, 이한열 열사, 유관순 열사, 윤동주 시인 등을 담은 작업, 평창올림픽, 세월호 사건 등 우리가 잊지말아야 할 사건들을 기록한 작업, 그 외 작가들의 개성있는 창작활동이 질서있게, 동시에 자유롭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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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범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길을 걷던 그래피티는 이렇게 사회와 화합을 이뤄가고 있다. 물론 이러한 공존을 좋게만 바라볼 수는 없을 것이다. 최초의 '아래로부터의 예술'인 그래피티가 사회 질서 안에 편입되면서 그만큼 그 자체의 정체성을 잃고, 필연적으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작아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들이 서로 양보하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협의하고, 결국 그렇게 공존하면서, 사회에서의 그들의 무대는 넓어져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은 곧 예술이 될 것이다.


[안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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