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청춘과 황혼의 무게에 대하여 [여행]

글 입력 2018.04.1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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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블라냐의 전경
 

  교환학생의 신분으로 암스테르담에서 학기를 마친지 10일째, 내내 친구들과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를 여행하다 마침내 홀로 슬로베니아에 도착했다. 43kg에 159cm, 체구가 작고 마른 만큼 힘도 없는 나는 암스테르담에서부터 25kg짜리 몸집만 한 캐리어를 끌고 다녔다. 트램이나 버스에 오를 때는 주변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힘들었고 평지에서 끄는 것 조차 쉽지 않아 두 손으로 질질 끌고 다니곤 했다.

  슬로베니아의 작은 수도 류블랴나에 도착한 날은 겨울의 동유럽이 으레 그렇듯 흐리고 안개가 자욱했다. 버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 한 쪽 어깨에 노트북, 카메라 두 대, 책 한 권과 파우치가 든 에코백을 둘러메고 25kg을 끌기 시작한다. 한 손에 핸드폰을 쥐고 지도를 보랴, 짐을 챙기랴 정신없이 걸어가던 와중에 저 앞에서부터 한 노인이 보행보조기구를 끌고 가까워진다. 한 손에 손잡이 하나씩, 떨리는 손으로 기구를 꼭 붙들고 천천히 밀며 걸음을 걷는다. 10분 넘게 걸어 이미 지친 나는 한참 전부터 에코백을 캐리어 위에 얹은 뒤 캐리어를 앞에 두고 두 손으로 밀며 걷던 중이었다. 마침내 우리가 서로를 지나쳤을 때, 내가 포토그래퍼였다면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순간은 그만큼 기이했다.

  청춘은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감당도 못 할, 제 몸무게의 절반이 넘는 짐을 끌고 걸어가고 있는데, 황혼은 태어난 나라 익숙한 도시에서 걸으면서도 제 몸 하나 가누지 못 해 그 무게를 나눠 감당할 보조기구가 필요하구나. 우습다. 나도 곧 43kg을 채 다 못 가눌 날이 올텐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꼭 필요한 것도 아닌 잡동사니를 25kg이나 짊어지고 다닐까.


[이자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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