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고야, 게몽주의의 그늘에서 - [도서]

고야, 그를 통한 계몽주의의 또 다른 시각
글 입력 2018.04.07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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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삼학년, 미술시간. 미술 선생님은 실습보다는 화가와 그의 작품에 대해 집중해서 설명해주셨다. 그전 까진 나에게 있어 미술작품은 그저 스쳐 지나가기 바빴던,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필자는 시든, 미술이든 하나하나 해석하려고 드는 걸 개인적으로 싫어했다. 하지만 그날,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셨던 작품. 피카소의 게르니카. 흑백과 흰색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도, 그저 피카소 작품이니까 유명하겠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그림을 자세히 보고 나선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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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니카 - 피카소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 나치가 게르니카를 폭격한 사건을 담은 그림이다. 1500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내전을 다루지만, 피가 흐르거나 잔인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단지 정형적이지 않은 인물과 대상의 표현이 괴기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자세히 보자. 죽은 아이의 시체를 안고 절규하는 여인, 부러진 칼을 쥐고 쓰러진 병사, 분해된 시신이 보인다. 그 그림 하나하나가 단지 그림을 채우는 오브젝트가 아닌 내전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였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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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년 5월 3일 - 프란시스 고야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게르니카를 보고 붓도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했다. 전쟁의 참혹함을 표현하기 위해, 100마디 말보다는 하나의 그림이 사람에게 그대로 다가온다. 고야의 그림도 그렇다. 당시 필자는 게르니카와 함께 고야의 작품, 1808년 5월 3일을 보았었다. 이 그림은 게르니카의 그림보다는 조금 더 직접적인 느낌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시체와 피, 그리고 총. 이 작품 역시 스페인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다루고 있다. 마드리드 시민들은 1808년 5월 2일, 프랑스 군대에 대항하여 폭동을 일으킨다.

하지만, 다음 날 5월 3일 밤, 이 폭동에 가담했던 이들이 처형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으로 희생된 사상자 수는 수천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작품을 자세히 보면, 피해자의 얼굴은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묘사되어있다. 그 쪽으로 비치는 빛까지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그와 마주 본 프랑스 군대는 얼굴이 가려진채로, 총을 겨누고 있다. 무자비한 폭력과 수많은 목숨들의 희생. 단순히 그 사실을 고발했다는 것보다,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당시의 미술작품들은 고야처럼 '희생자'에 집중하기보단, '영웅'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들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고야는 희생자의 시점에서 작품을 그려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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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4세 가족의 초상 - 프란시스 고야


고야에 대해 궁금했다. 음, 어쩌면 그가 사회의 반대편에서 그곳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었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프리뷰를 작성하면서, 고야에 대해서 찾아봤더니 젊은 시절 주로 종교화를 그려왔었지만 그의 출중한 실력으로 1789년엔 궁정화가가 된다. 하지만 그는 왕정을 미화시키기보단, 비판했다고한다. 대담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궁중화가면서, 그들을 비난하다니. 그의 작품 <카를로스 4세 가족의 초상>을 보았을 때는 그런 느낌은 잘 들지 않는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의 작품은 그들의 기품보다는 천박함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런 점이 매력적이었다.

필자는, 사실 불의에 대항하는 타입은 아니다. '불의'라고 하니까 주제와 살짝 벗어난 이야기 같지만 여기서 '불의'는 고야가 참혹함을 참고 덮어두며, 수많은 목숨을 희생하게 한 사회 그 자체라는 의미이다.

사실, 필자가 교내 신문사 활동을 할 때 수많은 불의를 보았다. 수 많은 진실을 감추려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에 대항하는게 힘들어서, 그냥 그렇게 불의에 굴복해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드러내고, 대항하는' 작가들과 작품들을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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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안식일 - 프란시스 고야


고야는 점차 인물에 집중하기 보단, 참혹함과 잔인함. 그리고 폭력성에 집중하게된다. 이 책의 내용 중 <15.두 번째 병, 검은 그림, 광기>가 이를 잘 나타낼 것이다. 고야는 화가로서 그의 일생 중 '검은 그림'을 그리는 시기가 바로 이 시기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마법사의 안식일>은 대중들의 무지함으로 억울하고 잔인한 죽음을 풍자한 작품이라고한다.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고야의 작품은 이 검은 그림을 그렸던 시기일 것이다. 이는 책의 제목에 언급되어있는 계몽주의와도 통하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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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프를 먹는 두 노인 - 프란시스 고야


계몽주의, 계몽(Enlightenment, 啓蒙)이라는 단어에 담겨 있는 의미만 보아도 '깨어난, light, 열다'라는 의미가 두드러진다. 당시 고야가 그리고자 했던 그림과 이 계몽주의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고야는 계몽주의는 그들에게 저항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이자, 반대로 그들의 무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모순적이다. 이미 계몽주의는 그들의 참혹함과 잔인함을 정당화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버렸고, 대신 고야는 이를 '알리기' 위한 작품을 쏟아낸다. 이제 조금은, 이 책의 제목이 이해가 갔다. 계몽주의 그 자체가 아닌, 계몽주의의 '그늘'이라는 것은 그 그늘에서 탐색을 통해 이성만큼이나 인간의 삶을 조종하여 폭력과 광기에 이르는 어두운 힘에 집중했다는 의미일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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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맛보기>

고야는 계몽주의 사상이 침략과 억압과 학살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계몽주의 사상은 폭력을 막기에는 충분치 않았고, 오히려 반대로 계몽주의 사상의 이름으로 나폴레옹 군대는 폭력을 자행했다. 고야가 사회악에 대한 치료제라고 믿었던 것은 효력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고, 심지어 더 피해를 입혔다. 이성의 잠만 괴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각성 상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한층 더 회의적이 된 고야가 특정한 이념에 찬동한다는 것을 드러내기를 꺼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160쪽

고야는 왜 『전쟁의 참화들』을 제작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한 듯싶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직접 겪고 보았기에 그는 귀중한 증인이 되었다. 강제 수용소의 생존자들이 살아 돌아왔을 때 인간이 어떤 짓을 할 수 있는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자신들이 아는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낀 것처럼, 그도 비탄의 외침을 내뱉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것이 모든 희생자들과 연대하고 살인에 살인으로 답하지 않아도 됨을 보여 주는 그의 방식이었다. - 185쪽

그는 자기의 일 자체에서 존엄성을 찾았다. 세계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데 온전히 바친 삶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60년 가까이 이어져 벽화와 회화, 판화, 석판화, 데생의 형태로 2천 점 가까이 전해지는 엄청난 수의 작품에 우리는 그저 놀랄 뿐이다. 화가가 여든 살일 때 그려진 "나는 늘 배운다"라는 설명이 붙은 데생은, 여기서 선언의 가치를 갖는다. 이 상징적인 자화상은 창작자의 고집뿐 아니라 자기가 선택한 길에 대한 그의 신념을 분명히 드러내 준다. 그 무엇도 그를 그 길에서 멀어지게 할 수 없었다. - 310쪽





<목차>


1. 고야, 사상가
2. 고야, 입문하다
3. 예술 이론
4. 병과 그 영향
5. 치료와 재발, 그리고 알바 공작부인
6. 가면, 캐리커처 그리고 마녀
7. ‘변덕들’의 해석
8.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적으로
9. 나폴레옹의 침략
10. 전쟁의 참화들
11. 살인, 강간, 산적, 군인
12. 평화의 참화들
13. 희망을 갖다, 경계심을 품다
14. 두 가지 길
15. 두 번째 병, 검은 그림, 광기
16. 새로운 출발
17. 고야의 유산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
- Goya A L'Ombre Des Lumieres -


지은이 : 츠베탕 토도로프

옮긴이 : 류재화

펴낸곳 : 아모르문디

출간일 : 2017년 8월 30일

분야 : 예술, 예술가, 예술 이론

규격 : 149*211*24 mm

쪽 수 : 328페이지

 정가 :  16,000원

 ISBN : 978-89-92448-63-5 (03600)

도서문의 : 아모르문디 0505-306-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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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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