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5필리어' - 여성들의 비극을 낱낱이 보여주다.

사느냐 죽느냐, 정말 그것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글 입력 2018.02.2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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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 난 나 니, 나니 난 나 니"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소극장 산울림 연극 '5필리어' 리뷰_그녀윤양


2월 25일 일요일 오후 2시 45분, 홍대 산울림 소극장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5분 후 입장이 시작되었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차례대로 자리에 앉았고 정각 3시엔 모든 조명이 하나둘씩 꺼지더니 칠흑 같은 어둠이 숨 조이듯 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잠자코 앞을 주시할 때쯤 인기척이 들리며 몇몇의 사람들이 무대 위로 올라온다. 희미하게 보이는 5명의 배우, 바로 다섯 오필리어의 '신진경, 윤이나, 최영신, 최배영, 고다윤'이다. 의자 3개를 놓고 무언가의 자세를 취한다. 그러곤 불이 켜진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낯설고 괴기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홍대 연극 '5필리어'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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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사를 통해 실제를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홍대 산울림 소극장에서 펼쳐진 연극 '5필리어'는, 약 100분이란 시간 동안 다섯 명의 여배우가 비극적 여성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그간 봐왔던 연극 중 몰입도가 가장 좋았을 만큼 훌륭한 연기로 극한 비극을 경험했다. 요 며칠 사이, 놀랍게도 봇물 터지듯 곳곳에 가려졌던 성추행, 성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대한민국이 울릴 정도로 계속해서 파헤치기 시작했고, 그 진실들을 온종일 온몸으로 접하며 연극, '5필리어'를 감상하니 더욱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여자인 이유도 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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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속된 삶과 그로 인해 고여버린 관념에서 파생된 아주 더러운 관례, 관습들.

말 그대로 여성의 '성차별적인 문제'를 러닝타임 100분 동안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여자라서, 단순히 여자라서 받게 될 가혹함을 보여주었다. 생각보다 자극적이었다. 배우들의 표정, 눈물, 그리고 몸부림. 연극이라는 하나의 예술로 등한시했던 삶의 일부분을 보았다. 고로 이 문제를 위해 나는 조금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했다.

인정하는 시선으로 들춰보자면 성차별로 인한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는 한두 개가 아니었음을 우리 모두는 알 것이다. 종속적인 태도와 삶으로 굳혀진 관례 관습들이랄까. 성 문제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에서도 여자들은 항상 뒷전이었다. 단지 여자란 이유로. 책이나 언론에서 간간이 접했던 사실이었다. 고위직은 대부분이 남성이 꾀 차고 있고, 심지어 여자란 이유만으로 제외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그런데 거기에 성 노리개까지 전락해버린 여성들.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란 이유로 묵살. 그리고 연예계 여자배우들의 자살문제. 그놈의 스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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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남성이 그렇지 않겠지만, 치욕스럽고 공포스러울 만큼 크나큰 사회적 문제로 점점 자리가 커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남성과 여성을 나뉘고 싶지 않지만 이 순간만큼 문제를 마주하게 되니 자꾸만 나뉘게 돼버린다. 그 부분에 있어서도 무척 비통하다. 그리고 연극 '5필리어'는 여성의 성차별, 성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라 세월호 사건을 묘사해 연기를 펼쳐 보이며 '어른들의 강압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이처럼 산울림 소극장에서 준비한 '5필리어'의 연극은 현대 비극의 주인공들을 낱낱이 보여주었다.

데이트 폭력, 그로 인한 살인, 예술을 빙자한 희롱과 폭력, 입막음, 비리. 이게 정녕 일어나고 있는 현실인지, 믿을 수 없지만 믿어야 하고 믿기 싫어도 역시나 믿어야 하기에, 배우들을 통해 마주 보는 우리의 삶은 적지 않게 충격적이고 혼돈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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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갈등을 동반한 예술이라 했던가. 

연극 '5필리어'는 우리 사회 근원적인 문제를 깊이 새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이 연극, 즐겁게 볼 연극 아니다. 그렇지만 피해야 할 연극도 아니다. 여성이기에 겪는 사회적 문제를 연극이라는 하나의 장르 예술로서 접해볼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5필리어의 대사가 떠오른다. "죽는다는 건 잠잔다는 것, 잠잔다는 건 꿈을 꾼다는 것."

연극이 끝난 뒤 또다시 나만의 연극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여자로 산다는 것,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는 무엇일까. 부모가 된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 그리고 사랑을 한다는 것 또한 무엇일까. 정말이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연극 '5필리어'가 던져준 수많은 질문들은 밤늦도록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삶은 지극히 평범하고도 단순하다. 하지만 잔잔하게 흐르는 삶 이면에 감춰진 수많은 비극들을, 우리는 의식적으로라도 직면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무대 위 다섯 명의 오필리어가 절망 끝에서 부르는 구슬픈 가락.

"헤이 난 나 니, 나니 난 나 니"

고통받았을 수많은 이들을 기억하며, 나도 한번 따라 불러본다. 

"헤이 난 나 니, 나니 난 나 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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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윤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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