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팝아트, 여전히 신선한

글 입력 2018.01.29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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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i, POP! >을 보러 가기 전 마지막으로 본 전시는 마리 로랑생의 전시였다. 19세기를 살았던 그녀의 작품은 ‘입체파’와 ‘야수파’의 결합이라고 명명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니까, 전형적인 미술 사조에 완전하게 들어맞진 않지만 그것을 이용해 어떤 방식으로든 설명될 수는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팝아트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팝아트는 새로운 시도였다’라는 문장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엄청난 간극을 한 달의 시간을 두고 연달아 만나본 두 번의 전시로부터 분명하게 전달받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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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는 신논현역에 위치한 M컨템포러리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강남역 근처에서 동생과 함께 점심을 먹고 전시장을 찾아가는데 멀리서도 이 건물이 팝아트 전시장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전시의 대표작을 커다란 포스터로 만들어 걸어놓는 대부분의 전시와는 달랐다. 팝아트가 그러했듯이, < Hi, POP! >도 거리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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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입구

 
 만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품활동을 했던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것으로 보이는 '폭발'이미지를 뚫고 전시장에 들어서면, 로버트 라우센버그에서부터 로이 리히텐슈타인, 키스 해링, 로버트 인디애나, 앤디 워홀 순으로 팝아트를 대표하는 5명의 예술가들의 작품이 숨가쁘게 늘어서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구성된 전시였으나, 전체를 찬찬히 둘러보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들지는 않았다. 아마 이들의 작품이 '굳이' 심오하고 진지한 의미를 담아내려고 노력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아니,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그것을 해석하고 캐내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줄곧 안심시켰기에, 난해한 작품이 눈 앞에 등장해도 그냥 응시하는 행위 자체에 집중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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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미술에 관심이 거의 없는 동생은 전시장을 거니는 내내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이게 직접 그린거야, 그냥 가져다 놓기만 한거야? 미술이 맞아?" 나 역시 예술에 조예가 깊지 않기는 마찬가지지만, 미술 교양 수업 덕분에 팝아트에 대해 들은 바가 있어 이들의 작품이 엄청 당황스럽진 않았는데 동생 입장에서는 꽤나 혼란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재밌었다. 동생이 내뱉은 몇 마디 말에 왜 팝아트가 대중예술(popular art)이라며 지탄을 받았고, 어떻게 팝아트가 신선했으며, 팝아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고 세상에 떡 하니 내놓은 발상이란 게 무엇인지가 조금씩 묻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미 없음이 곧 의미가 되고, 실물과 복제의 경계가 없어지고,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의 차이가 희미해지는 것. 팝아트가 갖는 매력은 정확히 이 지점에 있다는 사실이, 이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점차 명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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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팝아트는 진부한 전시장을 탈출해 거리를 지배함으로써 온 세상을 전시장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애초에 이들의 존재 자체가 혁신이었던 것이다. 예술계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주변을 떠돌았던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정통의 언저리를 과감히 떠나 비주류로서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일은 '용감했다'고 밖에 표현이 안 된다.

 < HI, POP! > 그런 팝아트의 정신을 본받을 요량이었을까, 팝아트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을까. 전시는 밖으로 나간 팝아트를 안으로 불러들이는 대신, 그 '안'을 바깥처럼 꾸미려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기하학적 무늬로 점철된 횡단보도를 연상시키는 바닥, 지하철역의 빈 광고지면을 무대로 삼은 키스 해링 섹션을 가득 채운 지하철역의 모습. 전시가 팝아트의 중요한 본질, '공간'의 확장을 얼마나 중요하게 인식하고 또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는가를 이러한 설치물로부터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 Hi, POP! >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전시였다. 개인적으로 한 번도 육안으로 접한 적 없었던 팝아트 작품을 만나볼 수 있어서 그랬고, 다른 뜻 없이 쉬워보이기만 하는 팝아트가 자꾸만 생각을 베베 꼬아놓아서 더욱 그랬다. 이를 테면 지금도 그렇다. 앞선 문장에서 팝아트 작품을 '한 번도 육안으로 접한 적 없었다'는 것은 팝아트를 일컫는데 있어 어패가 있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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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건 몰라도 로버트 인디애나의 'classic love'만큼은 티셔츠에서, 길거리 조형물에서, 여타 잡동사니들에서 한 번 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로버트 인디애나가 직접 제작했을 'classic love' 와, 이제껏 살면서 마주친 수많은 'classic love'들과,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위의 'classic love'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아니, 과연 차이가 있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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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소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팝아트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앤디 워홀의 <켐벨 수프> 판매가를 알고 나면 원본이나 복제나 똑같다는 이유로 이들이 저평가받아야하며, 실제 그랬을 거라는 추측이 틀렸음을 깨닫게 된다. 본 전시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 앤디 워홀의 <켐벨 수프>는 판매될 당시 1500달러에 거래되었다. 하지만 정작 그 밑에 놓은 작가의 사인이 담긴 실물 켐벨 수프는 겨우 6달러에 팔렸다. 그렇다면 팝아트에서 작품이 갖는 의미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실물보다 가치있는 복제, 복제의 복제, 복제의 복제의 복제...그 모두가 인정받는 세계에서 말이다.

 이 질문에 대해 스스로 내린 답을 고백하자면, 바로 '힘'이었다. 1960년대를 기점으로 등장한 팝아트가 2018년 지금의 나조차도 혼돈 속에서 허우적대게 만드는 그 파워말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팝아트를 우습게 보고 뒤쫓아 가다 보면, 결국 미술과 세상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불편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그 긴 여정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임없이 반복하게 만드는 게, 알면서도 또 다시 혼란의 늪에 빠져버리는 게, 팝아트의 가장 큰 저력이 아닐까. 한편, 미술엔 아직도 무궁무진한 변화의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팝아트는 충분히, 그리고 여전히 신선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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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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