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상상은 '내 공간'에서 시작된다

알렉산더 지라드, 디자이너의 세계展
글 입력 2018.01.06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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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선 디자인 역사에 큰 획을 그은 20세기 패턴 디자이너 알렉산드 지라드의 대규모 회고전이 진행 중이다. 그의 작품 5,000여 점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과의 협업을 바탕으로 기획된 이 전시에선 지라드의 작품 외에도 그가 열성적으로 수집해온 포크아트 작품들을 한눈에 만나볼 수 있었다.
 
전시는 '인테리어 디자인' '컬러, 패턴, 텍스타일' '기업에서 토털디자인으로' '수집과 설치' 등 총 4개 섹션으로 구성돼 있다. 이 전시는 디자이너 알렉산드 지라드의 거대한 포트폴리오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어떤 것에서 영감을 받는지, 어떻게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는지 이 전시를 통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우선 그의 작품은 시작과 끝이 명확하다는 느낌을 준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마감선이 떠오른다고 해야 하나. 패턴 대부분이 복잡하지 않고 심플하면서도 상징적인 의미를 잘 드러내고 있었다. 그가 '효율'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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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통틀어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알렉산드 지라드가 창조한 세계, 파이프 공화국(Republic of Fife)이었다. 지라드는 1917년부터 1942년까지 영국 기숙 학교 베드포드 모던학교에서 학생으로 생활하는 동안 상상 속 나라인 파이프 공화국을 창조했다. 파이프라는 명칭은 스코틀랜드 파이프 지역에서 차용했다. 그는 파이프 공화국의 지도, 깃발, 화폐, 동전, 우표, 게임 등을 디자인한 뒤 이를 활용해 파이프 공화국 시민들이 사용하는 비밀 언어와 암호를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상상이라는 행위에 대해 회의적이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이미 현실의 치부를 여러 번 목격해버린 그들에게 무언가를 상상하는 건 지나친 욕심이라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지라드의 방식을 적용하는 건 어떨까?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나의 머릿속에 오롯이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세계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내 손으로 그곳의 체계를 구축해 나가고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그 무엇보다 거대하고 장기적인 상상 프로젝트로 불려야 마땅하다. 지라드는 이를 훌륭히 실행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후에 디자이너로서 발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유사한 방식으로 그는 자신의 집을 디자인적 실험에 활용하기도 했다. 실제로 전시 기획자는 설명을 통해 "그가 다른 문화에 느끼는 흥미,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디자인에 대한 관심, 상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그의 능력, 그리고 디테일에 대한 그의 애정"을 볼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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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발판마저 직접 창조한 그의 천재성을 보고 나니 전시가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다. 천재의 포트폴리오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고 있다니! 그는 1960년대 변화에 목말라있던 브래니프 항공사의 기업 디자인을 맡았다. 이를 위해 지라드는 7개의 색채조합을 만들었고 하나의 항공기를 이 중 하나로 칠했다. 항공기 내부와 공항의 서비스 운송수단에도 동일한 색채조합이 적용됐다. 그는 항공사의 서체, 로고 등 인쇄물 작업에도 힘썼다. 장시간 비행으로 고통받은 적이 꽤 많은 나에게 알렉산더 지라드가 디자인한 비행기를 타보고 싶은 욕구가 솟아났다. 그간 내가 타온 비행기들은 비행시간만큼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인내의 고통을 피하려고 타자마자 눈을 감아버린 이유도 있겠지만 지라드의 눈길을 끄는 디자인과 함께였다면 힘들여 자는 시간이 조금은 줄지 않았을까 싶다. 이탈리아 패션 디자이너 에밀리오 푸치가 제작한 승무원 유니폼도 인상적이었다.
 
삶에 애정이 담긴 사람의 일생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나에게 조금 더 열심히 살아가라는 가벼운 충고이자 나의 인생도 더 재밌고 흥미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오래 표류 중인 나는 알렉산더 지라드를 통해 약간의 활기를 얻게 되었다.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며칠 가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오늘은 평소에 끝없이 해오던 고민에서 잠시 멀어져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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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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