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畵談)] 제 3 화(畵) : 분노, 빨강으로 화(化)하다

잘못된 분노, 개인적 분노, 사회적 분노의 빨강
글 입력 2017.12.07 00:4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오늘의 세 번째 그림은 다소 충격적일 수 있습니다.)



0. 분노



죽어버려라! 싸우다가 죽어버려라! 둘 다 불에 타죽어라! 집아, 너도 불에 타라! 타서 다 바스러져라! 나도 죽겠다! 우리 모두 다 죽자!

(중략)

하지만 내게는 미지의 목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계속 쓰겠다.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쓰겠다. 다 쓴 다음에 나는 울겠다. 왜냐하면 팔이 아프니까. 다 쓴 다음에 나는 팔이 아프겠다. 왜냐하면 울고 싶으니까.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 놈들은 다 죽여버리겠다. 왜냐하면 내가 말하고 있으니까.

- 김사과, '영이' 중


소설 ‘영이’에서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소녀는 열렬하게 죽음을 바란다.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 뿐 아니라 함께 싸우는 엄마도, 폭력의 현장인 집도, 자신도 죽기를 바란다. 작가는 소설 틈틈이 개입하여 자신의 분노를 함께 드러낸다.

분노외부의 위협을 인식했을 때 이를 즉각적으로 멈추거나 없애려는 행동을 취하거나 취하기로 결심하면서 느끼는 감정이라고 정의된다. 당신은 ‘영이’처럼, 혹은 작가 김사과처럼 어떤 것에 분노한 적이 있나?


당신은 언제, 어떤 위협에 분노 했나?




1. 잘못된 분노 – 일랴 레핀, 1581년 11월 16일,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ivantheterribleandhissonivanonnovember161581,Ilya Repin, oil on canvas ,1885.jpg
[ Ivan the terrible and his son Ivan on november,16,1581, Ilya Repin, oil on canvas , 1885 ]


화려한 융단이 깔린 방이다. 구겨진 빨간 천위로 나뒹굴고 있는 지팡이. 지팡이 보다 더 힘없이 노인에게 안겨 있는 젊은 남자는 누구인가. 그를 안고 있는 늙은이의 눈은 무언가에 잠식되어 있다. 눈을 감지도 못한 채 그는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막아보려 해도 속절없이 흘러내리는 저 피를 왜 그는 애써 붙잡으려 하는 걸까. 손 틈 사이 빠져나가는 피는 누구의 죄 때문일까.

방의 모습을 보며 짐작할 수 있겠지만 두 사람은 결코 신분이 낮은 사람이 아니다. 그림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둘은 부자 관계이며 황제와 황태자의 신분이다. ‘뇌제’라고 불리며 러시아의 사람들이 두려워한 황제 이반 4세가 그의 아들을 죽인 친자 살해의 현장이 고스란히 그림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이반 4세는 평소에도 성격이 좋지 않았다. 아들을 죽인 저 날, 임신한 황태자비가 몸이 좋지 않아 간소한 차림으로 행사에 참석했다. 발끈한 황제는 자신의 며느리를 지팡이로 때렸고, 황태자비는 유산했다. 황태자가 따지러 오자 후회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류한 분노에 사로잡혀 지팡이를 휘둘렀다. 자신의 대를 이을 소중한 황태자이자, 자신의 피를 이은 아들이 자신조차 감당 못할 분노에 먹혀버린 것이다.

그림은 분노라는 감정의 현장을 그리지는 않았다. 분노가 휩쓸고 지나간 폐허를 담고 있다. 뇌제의 손으로 빠져나가는 새빨간 피. 그것은 결국 그의 분노가 남긴 흔적이다. 우리가 분노를 경계하는 이유는 저것 때문이다. 혹여 그 불같은 감정에 오히려 내가 잠식당하여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분노는 필요하지만, 잘못된 표출은 분명 경계해야 한다.




2. 개인적 분노 – 프리다 칼로, 몇 번 찔렀을 뿐.

 
unos cuantos plquetitos(A Few Small Nips), flida khalo, oil on metal, 1935.jpg
[ Unos cuantos plquetitos(A Few Small Nips), Flida Khalo, oil on metal, 1935 ]


침대에 힘없이 한 여자가 널브러져 있다. 그 옆에 칼을 들고 있는 남자. 그는 결코 살인으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거나, 후회하거나,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다. 한 쪽 주머니에 손을 꽂고 있는 여유로운 자세이며, 오히려 귀찮아하는 듯 한 표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가 여자를 찔렀을 때 사용했을 칼 뿐 아니라 그의 옷, 침대 이불, 방바닥은 모두 피범벅이다. 심지어 액자까지. 그림의 제목이자, 그림 위에도 써 있는 저 문구는 실제 사건의 가해자가 판사를 향해 한 말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그저 몇 번 찔렀을 뿐이라고요”

멕시코의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는 질투 때문에 살해당한 여성의 기사를 읽고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림에는 화가 자신의 분노도 담겨있었다. 프리다 칼로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는 남편감으로는 최악이었다. 멕시코의 벽화운동을 주도한 남편은 프리다와 결혼을 하기 전부터 외도를 일삼았다. 프리다가 그림을 그린 1935년의 외도 상대는 동생인 크리스티나 칼로였다. 그녀가 형부의 벽화 모델을 두 번 섰던 이후로 관계가 발전한 것이다. 그림에 희생된 여자는 곧 프리다였고, 뻔뻔한 얼굴의 저 남자는 그녀의 남편과 여동생이었다. 아니면 반대로 그 둘을 몇 번이고 찌르고 싶었던 그녀의 심경이 저렇게 표현된 것은 아닐까. 액자까지 번진 새빨간 선혈은 자신이 어떤 쪽이든, 그 분노를 더 강하게 표현하고 싶었던 프리다의 마음을 표현하는 듯하다. 이 후에도 이혼과 재결합을 반복한 프리다 칼로는 디에고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일생 동안 나는 심각한 사고를 두 번 당했다. 하나는 16살 때 나를 부스러뜨린 전차이다. 두 번째 사고는 바로 디에고다. 두 사고를 비교하면 디에고가 더 끔찍했다




(다음 그림은 다소 충격적일 수 있습니다)



3. 사회적 분노 – 한효석, 감추어져 있어야만 했는데 드러나고 만 어떤 것들에 대하여 12


감추어져 있어야만 했는데 드러나고 만 어떤 것들에 대하여 12, 한효석, 캔버스에 유채, 2008~2009.jpg
[ 감추어져 있어야만 했는데 드러나고 만 어떤 것들에 대하여 12, 한효석, 캔버스에 유채, 2008~2009 ]


새빨갛다. 말 그대로. 피부 한 겹 벗겨냈을 뿐인데, 인간의 형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고깃덩이와 다를 바 없다. 근육 조직과 지방이 선명하게 드러난 그림은 징그러울 만큼 사실적이다.

사진이 아니다. 그림이다. 책에서 처음 이 그림을 마주했을 때의 충격을 기억한다. 연작 시리즈가 모두 각각 폭 2m 가량이 된다고 하니, 이 그림을 커다랗게 보면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 모르겠다. 작가 한효석은 사회의 고정관념과 편견에 대한 분노를 극사실적인 그림으로 표현한다. 한국 전쟁 후 미군이 주둔하며 1,000명 이상의 성매매 여성이 거주한 평택에서 작가는 태어나고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많은 혼혈아들을 접하고 그들과 어울렸겠지만, 사회가 혼혈아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결코 곱지 않았다. 작가는 그런 현상을 보며 자라왔고, 이런 성장배경은 그의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효석의 작품 모델은 여성, 아이, 외국인 등 한국 사회에서 차별받는 소수자들이 대부분이다. 인종, 성, 연령 등 어떤 기준에서든 차별을 허락해 온 사회를 향해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인간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존귀감을 가진 존재이고 생명체인데 사람들은 자꾸만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것을 ‘파괴’하고 싶었어요.”





4. 빨강


unfiltered anger, louisdyer, digitalart,2012.jpg
[ Unfiltered Anger, Louis dyer, digital art, 2012]


빨강은 색채어 중 가장 앞에 있는 말이다. 밝음과 어두움을 뜻하는 흰색과 검정을 제외하고 색의 이름으로 ‘빨강’이 가장 먼저 생겨났다고 한다. 빨강은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실존적의미를 지니는 피와 불을 상징한다. 화가 난 캐릭터를 표현할 때 얼굴을 빨갛게 표현하는 것은 얼굴에 피가 몰리는 것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분노를 불과 비슷한 성질로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빨강은 열정을 상징한다. 그 열정이 긍정적인 사랑일 수도, 부정적인 분노, 파괴, 경고일 수도 있다.

‘1581년 11월 16일,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에서는 빨강의 색채가 주요 색채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뇌제와 그의 아들을 비추는 불빛과 솟구치는 새빨간 피는 사건을 직접 목격한 듯한 생동감과 잘못된 분노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몇 번 찔렀을 뿐’의 빨강 역시 피의 빨강이다. 그림의 전체에 묻어 있는 피, 액자까지 번져 있는 피는 침대에 누워있는 피해자의 피이자, 그림에 피해자와 자신의 상처를 담아내려 한 화가의 분노일지 모르겠다.

‘감추어져 있어야만 했는데 드러나고 만 어떤 것들에 대하여 12’의 빨강은 인간 본연의 색이다. 한 꺼풀만 벗겨내면 마주할 수 있는 인간의 본래 모습이다. 화가는 저 섬뜩한 그림을 통해 ‘너도 똑같은 인간이다’라는 저항의 메시지를 사회에 던지고 있다.

당신은 어떤 그림이 가장 공감됐나? 어떤 그림의 사연에 가장 분노했나? 나는 프리다 칼로의 그림에 담긴 사연에 가장 분노했다. 질투 때문에 살해당한 여성의 이야기도, 화가의 이야기도 모두 열 받는 일이었다. 가해자가 인간이라면 어찌 저렇게 뻔뻔할 수 있으며, 화가가 성인이 아닌 이상에야 저런 여동생과 남편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었을까?

‘시작하는 화(畵)’에서 내가 가장 서투른 감정이 분노라고 밝힌 바 있다. 나는 화가 나면 일단 목소리가 커진다. 평소에도 큰 편이지만 그 때의 발화 목적은 나를 열 받게 한 사람(혹은 상황)을 상처 입히는 데 맞춰진다. 마음에 있는 소리, 없는 소리를 하다보면 나중에 화해를 하더라도 그 사람과의 관계회복이 쉽지 않다. 다음 단계에서는 손에 있는 물건을 던진다. 가장 많은 피해는 내 휴대폰이 겪게 되고, 나에게 금전적 피해를 안긴다. 마지막 단계에서 나는 내 감정을 감당하지 못하고 울어버린다. 아이가 울 듯 숨을 삼켜가며 억울함을 표현한다. 요새야 기껏 길에서 흡연하는 사람들로 인한 일시적 분노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울만큼 열 받은 적이 없지만, 사람을 대하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 분노는 조심해야하는 감정인 동시에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야하는 감정이다. 물론 화가 날만한 상황에서 분노를 느끼지 못하거나, 분노를 표현해야 하는 순간 화를 내지 못하는 사람은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성숙하게 분노하는 사람이란 분노를 경험하되 즉각적이고,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방식으로 표출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뒷일도 생각하면서 내 분노도 충분하게 전달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분노 역시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껴야할 감정 중 하나이다. 인류는 올바른 분노를 양분삼아 변화와 발전을 이뤄왔다. 분노의 불길에 먹히지 않고, 그 불길을 잘 이용하고 다스려야 한다.





[참고문헌]

김사과, 영이, 창비
이유리, 검은 미술관, 아트북스
나카노 쿄코, 이연식 옮김, 무서운 그림으로 인간을 읽다, 이봄
문지현, 감정, 작은씨앗




[김마루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30876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