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의 묘약 : 열 개의 마음, 세 개의 방
글 입력 2017.11.1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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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부암동을 방문했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조금 걸어 나와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 정도 가 내리면 바로 맞은편에 부암동에 위치한 서울미술관이 나온다. 조금 쌀쌀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보기 위해 부암동으로 온 듯했다. 가에타노 도니체티가 창작한 오페라 '사랑의 묘약'은 1832년 5월 초연 이후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극중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은 오페라에 문외한인 나도 한 번쯤 들어본 곡이라 전시를 보기 전부터 친근감이 느껴졌다.전시는 극중 남녀 주인공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색다른 방식으로 그려낸다. 정체성이 뚜렷한 작가 10명이 함께한 이 전시는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전체적인 통일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알아채기 쉽지 않다. 각 작품의 형태와 구조를 비롯해 표현 방식 등 모든 것이 다른 게 큰 이유다. 그렇기에 나는 차라리 각 작품을 독립적으로 감상하는 것을 택했다. 오페라의 전체 내용과 연관 짓기보단 개별 작품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에 집중한 것이다.이런 식으로 접근하다 보니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내가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마도 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을) 사진가 Bob Carey의 작업이었다. 2003년 암에 걸린 아내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캐리는 분홍색 발레복을 입고 세계 곳곳에서 사진을 찍는다. 암을 이겨냈던 그의 부인은 불행히도 3년 뒤 재발한 암으로 다시 투병 생활을 시작한다. 캐리는 여전히 분홍색 치마를 입고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이러한 사진들은 『The Tutu Project』라는 책에 담겨 출간됐고 큰 성공을 거뒀다. 아내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해내는 그의 모습을 보며 '진정한 사랑'에 대해 탐구하는 전시 의도와 가장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람객들을 위해 마련된 분홍색 치마도 인상적이었다.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 있는 연인. 속 사정을 잘 알지 못해도 그저 사진이 예뻐서 한참을 서있었던 곳이다. 조금 뜬금없는 말이지만 장거리 연애는 정말 힘든 것 같다. 우선 주변에서 장거리 연애에 성공한 사람이 없다. 처음엔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외버스, 기차 가리지 않고 이동하더니 나중엔 그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고 한다. 이 둘의 연애가 어떤 식으로 흘러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작업은 어쩌면 장거리가 주는 필연적인 시난을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난 이렇게까지 공들이고 노력해가며 장거리 연애를 할 자신은 전혀 없다는 것.서울미술관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곳은 단연 석파정이다. 조선 말기에 조영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된 이곳은 흥선대원군의 별서로 사용된 공간이라고 한다. 전시를 다 관람하고 맨 위층으로 올라오면 석파정이 등장하는데 맑은 공기 덕에 머리가 시원해지는 것은 물론 고즈넉한 가을이 느낄 수 있었다. 함께 간 친구와 사진 찍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곳이기도 하다. 전시도 그렇고 공간 자체도 가을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던 하루였다.[이형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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