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코끼리에게 한판승으로 패하다 : 연극 < 엘리펀트송 >

글 입력 2017.10.06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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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황정은에게 물었다. “문학 속 인물 가운데 누구라도 될 수 있다면 누가 되고 싶습니까?” 황정은은 이렇게 말했다. “문학 속 인물이라뇨. 그런 것이… 되고 싶겠습니까?” (젊은 작가의 책, 문학동네, 2016) 황정은의 답변대로, 문학 속 인물로 사는 것은 그리 유쾌하고 행복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들의 기질이나 성격, 꿈을 닮고 싶다고 느낄 순 있을지언정, 이야기 속 그들의 삶을 그대로 살아야 한다면, 아마 대다수의 사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것이다. 올해 필자가 만난 연극의 인물만 꼽아 봐도 그렇다.

유대인 학살의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노인, 공권력과 언론에 의해 인생을 난도질당한 가정부, 남편의 배신으로 두 아들을 죽여야 했던 여자, 장애가 있는 아들을 두고 죽어야 했던 아버지, 지구를 지키기 위해 엽기적인 납치, 고문 행각을 벌였던 청년, 하루에 4만 개의 손을 잘라야 했던 근위병 등.

정말이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것이… 되고 싶겠습니까?
 
연극은 우리의 삶을 그대로 본떠서 재현하기보단, 문제적 상황 속 문제적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진실을 무대에 펼쳐준다. 나와는 다른, 심지어는 내가 살고 싶지 않은 인생들을 보며, 우리는 삶의 다면을 목도하고 느끼고 고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무대 위에 펼쳐진 문제적 인물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것은 전적으로 관객의 몫이며, 이에 따라 작품 주제의식의 폭이 결정된다.
   
크리스마스이브, 정신병원, 코끼리에 애착을 보이는 소년이 의자에 앉아 있다. 소년의 모든 이력이 적힌 보라색 차트는 은폐되어 있다. 역시나 ‘되고 싶지 않은’ 이 소년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소년을 통해 어떤 삶의 진실을 목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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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수사극을 표방한 퍼즐 게임

 
연극 <엘리펀트송>은 미스터리 수사극을 표방한다. 연극은 로렌스라는 정신과 의사의 행방불명에서 시작한다. 행방불명이 된 로렌스와 그의 행방을 찾아내려는 병원장 그린버그, 그리고 로렌스 행방의 키를 쥔 정신병원 환자 마이클. 그린버그는 로렌스를 찾기 위해 마이클을 취조하고, 마이클은 그린버그에게 진실을 알고 싶다면 자신의 조건을 들어달라고 제안한다. 첫째, 마이클의 진료기록을 보지 말 것. 둘째, 마이클에게 초콜릿을 줄 것. 셋째, 피터슨을 제외시킬 것. 로렌스의 행방을 알기 위해 그린버그는 썩 내키지 않는 게임에 동참하게 된다. 코끼리 이야기만을 늘어놓는 마이클과 로렌스의 행방을 계속해서 캐묻는 그린버그의 팽팽한 대화의 대치 속에서 미스터리의 긴장이 유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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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은 의도적으로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한다. 관객은 마이클이 제공하는 퍼즐 조각을 들고 고심하게 된다. ‘로렌스는 어디에 있는가?’, ‘로렌스가 정말 마이클을 성적으로 학대했는가?’, ‘마이클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정박하지 못한 퍼즐들은 표류한다. 이때, 관객과 같은 시선의 높낮이로 마이클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인물이 그린버그다. 그는 마이클의 보라색 차트, 마이클의 모든 것이 적혀있는 기록을 확인하지 않고, 마이클과의 게임에 임한다. 이때, 로렌스의 행방을 둘러싼 그린버그와 마이클의 심리 게임은 팽팽한 머리싸움이라고 보기엔 어렵다. 로렌스의 행방을 쫓는 그린버그와 마이클의 대화는 동등한 관계의 심리 게임이라기보단, 권력을 지닌 자와 권력을 지니지 못한 자의 심리 게임이다. 즉, 그린버그가 ‘STOP’을 외치면 언제든 끝날 수 있는 게임이다. 그래서 마이클은 로렌스의 행방을 미끼로, 진실에 허구를 섞으며 그린버그가 심리 게임을 계속 이어나가도록 만든다. 다만, 연출은 이 긴장감을 극대화시키지 못한다. 두 사람의 층위 있는 심리 게임은 다소 단조롭게 다음 전개로 넘어가며, 진실을 쥔 마이클과 게임을 언제든 포기할 수 있는 그린버그의 관계를 반복하기만 할 뿐, 별다른 연출의 강조점 없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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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게임에서 피터슨의 존재는 독특한 위치를 점유한다. 마이클과 그린버그의 심리 게임 중 두 사람은 지속적으로 피터슨을 진료실 안으로 부르는데, 이때 피터슨의 존재는 관객의 믿음을 교란시킨다. 피터슨의 등장으로 인해 마이클의 거짓말이 그린버그와 관객에게 탄로 나는데, 마이클의 발화에 의해 피터슨 역시 의심의 대상이 되며, 극은 긴장감 있게 전개된다. 그린버그에겐 마이클을 경계하라는 피터슨, 그러나 어쩐지 마이클을 대하는 모습에서 사랑이 느껴지는 이 캐릭터조차, 여전히 표류하는 퍼즐이다.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 드러나는 코끼리

 
“코끼리는 모계사회에 살고 있죠.
코끼리는 동족의 뼈를 알아봐요.
게다가 가족의 죽음을 슬퍼한대요.

다윈이 말했어요.
코끼리는 눈물을 흘리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악어를 제외하고요.

코끼리는 포유류 중
임신 기간이 제일 길다고 해요.
22개월간 새끼를 품고 있대요.”
 
 
로렌스의 행방을 찾는 미스터리 수사로 시작한 극은, 시종일관 코끼리라는 퍼즐을 건넨다. 로렌스의 행방을 묻는 그린버그에게 마이클은 생뚱맞은 코끼리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려준다. 코끼리라는 오브제는 하얀 코끼리인 마이클, 뚱뚱한 코끼리인 피터슨, 마이클이 가장 사랑하는 코끼리인 인형 안소니로 형상화되는데, 마이클의 독백에 의해 코끼리가 사랑과 결여의 상징물이었음이 드러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하룻밤으로 태어난 아이, 그 아이가 어린 시절 목격한, 눈물을 흘리며 죽어가는 코끼리의 모습, 오페라 가수로 명성을 떨쳤으나 죽어가면서도 아들 걱정은 하지 않았던 어머니. 사랑받고 싶어 하던 한 아이의 욕망과 상처가 코끼리라는 상징물로 응집되어 발현되었음이 진실로 드러난다. 이때, 로렌스의 진료실에 조명이 덧입혀지며, 마이클이 진실을 밝히는 순간이 효과적으로 구현된다. 진료실의 벽은 사파리 푸른 초원이 되기도 하고, 크리스마스트리가 되기도 하고, 코끼리를 형상화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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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이 자신의 이야기를 그린버그에게 모두 털어놓은 후, 그린버그는 로렌스의 번호가 적힌 쪽지를 받게 되고, 마이클은 약속대로 초콜릿을 받는다. 뒤이어 로렌스의 부재는 누나의 병세로 인한 일시적인 것이었음이 밝혀지고, 어쩐지 미스터리 수사극은 다소 허망하게 종결되는 듯하다. 그리고 상처를 공유한 마이클과 그린버그 사이의 휴머니즘이 수사극의 허망한 종결을 덮으며 다소 훈훈하게 결말지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마이클은 자신이 원하던 초콜릿을 얻었고, 그린버그도 원하던 로렌스의 행방을 얻었으니, 이 게임은 두 인물에게 win-win으로 남는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든다. 그리고 냉철했던 그린버그가, 마이클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기까지의 인간적인 변화 또한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자유’를 원한다던 마이클의 발화가 맞춰지지 않는 퍼즐 조각이 되어 바닥을 뒹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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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라고 했으면 진짜 최고였을 텐데,
‘미안하다’라고 했어도 난 눈물이 났을 거예요.
도와달라고만 했어도 이해를 했을 텐데,
엄마가 뭐라고 한 줄 알아요?
음정 세 개를 틀렸어.”
 

로렌스와 통화를 마친 마이클이 곧 발작을 일으키고, ‘초콜릿을 먹인 거냐!’는 피터슨의 절규에 마지막 남은 퍼즐이 제자리를 찾는다. 마이클이 원하던 것은 죽음으로서의 자유였고, 초콜릿은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던 마이클이, 죽기 위해 얻고 싶어 하던 보상이었다. 마이클은 자신의 어머니와는 달리, 어렸던 그 어느 날, 사파리에서 목격한, 눈물 흘리며 절규하는 코끼리처럼, 로렌스와 피터슨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며 죽는다. 자신이 어머니에게 듣지 못한 말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기며, 왜곡된 사랑을 표현한다. 미스터리 수사극의 의장을 걸치고 있었던 심리 게임은 한 소년의 상처와 결여의 이야기로 수렴된다. 마이클이 처음부터 은폐하고 있던 진실은 폭로되며, 모든 긴장이 해소되고, 마이클은 해소된 긴장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죽어간다.



마이클이 이긴 게임

 
마이클의 결말과 함께 모든 퍼즐은 약속된 제자리를 찾는다. ‘견과류 알러지가 있는 걸 몰랐느냐, 보라색 차트를 보지 않았느냐’는 피터슨의 외침에 그제야 관객은 연극 전체에 걸친 게임에서 관객 자신이 마이클에게 패했음을 깨닫는다. 진료기록을 보지 말 것, 초콜릿을 줄 것, 피터슨을 제외시킬 것. 마이클이 그린버그에게 걸었던 게임의 조건은 모두 마이클이 정한 한 가지 결말을 향해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가고 있었다. 마이클의 결말을 목도하는 순간 “어떤 사람은 견과류를 먹기만 해도 죽는대요.”라는 마이클의 대사와 “마이클은 이 병원의 그 누구보다 똑똑한 아이예요.”라는 피터슨의 대사가 불현듯 떠오른다. 그리고 “당신은 지금 나와 내가 원하는 것 사이에 있어요.”라는 그린버그를 향한 마이클의 대사는 마이클의 죽음 후, 명확하게 제 자리에 정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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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차트를 보지 않았던 그린버그처럼, 마이클이 은폐한 마지막 진실을 미처 알지 못했던 관객은 백기를 든다. 정교하게 짜 맞춰진 마이클의 죽음이라는 결말 앞에 객석에는 훌쩍이는 소리가 조금씩 들려온다. 마이클과 그린버그의 한 판 게임, 그리고 극 전체를 관통하는 마이클과 관객의 진실게임은 사랑받고 싶었던 한 아이, 마이클의 비극적 생애에 대한 진한 아픔을 남긴다. 알 수 없는 말들만을 늘어놓던, 개구지고 어딘가 위태로웠던 소년은 그렇게 크리스마스에 ‘엘리펀트송’이라는 비극적인 캐럴만을 로렌스에게, 피터슨에게, 그린버그에게, 관객에게 남기고 쓰러진다.
 
뛰어난 연출 없이도, 팽팽한 게임 없이도, 마이클이라는 인물의 비극은 인간의 사랑과 상처에 대한 진실을 들려준다. 분명 여전히 그런 것이… 되고 싶진 않다. 그러나 형형한 눈빛의 소년이 들려주던 진실은 오래고 관객들에게 사랑에 대한 여운을 남길 것이라 말하고 싶다. 여전히 되고 싶지 않은 소년에게 한 마디를 남기며 글을 마친다.


하얀 코끼리야, 아가,
내가 졌어, 네가 이겼어.



공연정보


공연명 연극 <엘리펀트송>

공연기간 2017년 9월 6일(수)~2017년 11월 26일(일)

공연장 수현재씨어터

공연시간 평일 8시 / 토 3시, 6시 / 일, 공휴일 2시, 5시 (화 공연없음)

티켓가격 전석 50,000원

관람등급 만 13세 이상

러닝타임 90분(인터미션 없음)

연출 김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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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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