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왜 도덕인가-마이클센델 [문학]

글 입력 2017.08.31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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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거짓말은 어디까지 용인이 가능할까요?
일단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스캔들을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그는 백악관 인턴과 혼외정사를 가졌다는 혐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니라고 발뺌했죠. 하지만 그의 거짓말은 공무수행이 아닌 사적인 잘못과 관련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공무수행에 관한 정치인의 거짓말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964년 베트남 전쟁에 관하여 존슨은 대통령 선거운동에서 전쟁을 확대하려는 의도를 숨겼고, 루즈벨트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려는 계획을 부인했습니다. 두 대통령 모두 국민을 속였지만, 당선이라는 개인의 부당한 목적을 위해서 거짓말을 한 존슨과 미국이 처한 시대적 상황에 불가피한 전쟁확대, 즉 정당한 목적을 위한 루즈벨트의 거짓말의 도덕적 지위는 서로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존슨의 거짓말이 루즈벨트보다 상대적으로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하는 이유는 도덕적으로 가치 없는 목적을 위해 행해졌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의 인기가 시들지 않았던 이유는 그의 성생활이 미국 시민의 공동체에 해악을 미치는 범위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미국은 시민의식과 공동체라는 키워드에 주목합니다. 가치중심적인 공동체를 지켜내려는 진지한 노력은 필연적으로 그것을 손상시키는 힘과 부딪힙니다. 베넷과 같은 보수주의자들은 미덕을 위협하는 범인으로 대중문화와 큰 정부를 지목합니다. 랩 음악과 천박한 영화들이 아이들과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있으며, 큰 정부와 복지국가가 공동체의 역할을 앗아간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베넷과 같은 문화 보수주의자들은 족쇄 풀린 시장경제의 파괴적인 힘을 놓치고 있습니다. 공동체를 회생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사회구조를 해치는 문화적 힘은 물론 경제 권력과도 대항해 싸워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마이클 센델이 말하고자 하는 공동체 주의의 정의 지표는 ‘공동체’, 즉 집단에 있습니다. 각 집단에서는 자신들의 정의 기준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순응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는 정의롭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각 공동체에는 각각의 정의가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죠. 결론적으로, 공동체주의의 기준은 집단 전체의 이익과 행복입니다.

지금까지 정치와 도덕을 공동체주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는데요, 공동체주의적인 시각뿐만이 아닌 우리의 관행과 제도에 내재된 정치철학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저자는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정의와 공정성,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가장 중요시 합니다. 시민들이 모두 동등한 자유를 갖고 각자의 목적을 추구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선에 우선하며 선과는 별개의 도덕적 범주인 ‘옳음’이라는 개념을 따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이상은 ‘옳음이 좋음에 우선한다’는 주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현대 도덕철학 및 정치철학에 상당 부분 녹아 있는 자유주의의 논리입니다. 칸트에 의해 철학적 토대가 마련되었고 롤스에 의해 가장 완벽하게 다듬어졌습니다. 

칸트와 롤스의 자유주의가 ‘최대 다수의 최대 이익’의 원리를 따르는 공리주의와 다른 점은 개인의 권리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 희생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권리를 서술하는 정의 원칙들은 결코 좋은 삶에 대한 비전을 전제로 삼을 수 없다고 합니다. 옳은 것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목적론점 관점과는 대립되는, 칸트의 의무론적 사상에 연계하여 생각 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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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인 칸트는 ‘절대적인’도덕률을 지켜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목적론적 윤리설 대신 의무론적 윤리설을 강조했는데, 무엇을 위해 윤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옳기 때문에 행하는 선의지를 갖고 도덕법칙에 의해 윤리를 행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정치에 대해서도 특정 목적을 전제로 삼지 않는 통치를 받을 때에만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자유를 갖고 자신의 목적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율의지를 가진 주체가 선의지를 실천하고 선험적 주체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비판합니다. 내가 칸트가 말한 순수실천이성을 실천할 수 있는 주체라는 것을 무엇이 보장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선험적 주체는 그저 가능성일 뿐이라는 것이죠. 이렇듯 칸트의 주장은 지나치게 선험적인 것에 치중한다는 비판을 듣습니다. 이를 롤스가 보완합니다.

롤스는 칸트의 선험적 논의에서 나오는 의문점을 보완하고자 ‘원초적 입장’이라는 이론을 가지고 옵니다. 무지의 베일에 싸인 상태에서 인간을 원초적 입장에서 바라보면 인간은 자기조건을 인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 무관심하고 자기의 선호가치를 인식하지 못한다고 가정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초적 입장’이 중요한 이유를 설명 드리기 전에 롤스의 정의론에 대하여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롤스의 정의론에는 두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모두에게 동등한 기본적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평등한 자유의 원칙이고, 두 번째는 가장 불리한 사회구성원들에게 혜택을 주는 사회, 경제적 불평등만을 허용하는 차등의 원칙입니다. 롤스는 무지의 베일에 싸인 상태에서 원초적 입장을 고려할 때만이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을 주는 분배 방식에 합의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합니다. 차등원칙이 절실히 필요로 하면서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가진 자산을 누구와의 공동 자산으로 간주해야 좋은가를 파악하는 방법이라는 거죠.
우리 자신을 독립적인 자아로, 우리의 정체성이 목적과 애착에 얽매여 결정되지 않는 완전히 독립적인 자아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저자는 단연코 아니라고 비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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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족과 공동체와 국가와 민족의 구성원이자 그 역사를 떠안은 사람으로, 공화국의 시민으로 간주하는 것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러한 도덕과 확신은 내가 사회적 합의(사회계약론자 얘기인 듯) 때문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나의 정체성을 공동체가 정의해 주즌 애착과 책임감에서 비롯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현대의 관행과 제도는 주로 칸트, 롤스 그리고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의 이론에서 중심이 되는 생각이며, 궁극적으로 옳음이 좋음에 우선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마이클 샌델은 권리가 존중되는지의 여부보다 좋은 삶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이 권리의 정당화를 위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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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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