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기억] 미안, 흰장미야. 붉지 않아도 예쁘구나.

2017.08.10 2.
글 입력 2017.08.10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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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장미


할머니네 아파트 화단은 항상 잘 가꾸어져 있었다.
하루는 할머니께서 한 덤불을 가리키시더니
장미라고 일러주셨다.

꽤 오래 머물던 그 시기에
매일 놀이터를 나가며
덤불을 확인하고 꽃이 피기를 기다렸다.

어느 날 갑자기
흰색 장미가 피었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흰 꽃잎이 곧
붉게 물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흰 장미는 빨갛게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 왜 장미가 흰색이에요?”

7번째로 흰 장미가 그대로인 것을 확인한 날 물었다.

할머니는 웃으며 말씀해주셨다.
빨간 장미만 있는 게 아니라
흰 장미도,
심지어는 노란 장미도 있다고.


미안, 흰 장미야.
붉지 않아도 예쁘구나.






#7 바위산


할머니네 집 근처에는 바위가 많은 바위산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종종 그 산에 오르셨는데,
하루는 나도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함께 나섰다.

멀리서 보면 낮아 보이던 산이
가까이서 올라보니 왜 그렇게 높은 건지
금방 지쳐버린 어린 나는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할아버지는
몇 발자국 후에 꺾이는 길에 약수터가 있으니까
물을 가져다 줄 테니
아주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눈앞에서 사라지신 할아버지

곧 산은 공포로 가득 찼다.

밝았던 하늘이 어두워지고,
바람에 떨리는 나뭇잎은 괴물의 발소리 같아,
눈물이 고여오던 순간.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아주 찰나의 순간, 사라지는 공포.


다행이다.






#8 석류


할머니와 시장을 지나다
신기한 과일을 보았다.

처음 보는 모양이었는데,
동그랗지만 투박한 붉은 과일이었다.
안에는 붉은 알갱이가 잔뜩 들어있다고 했다.

“하나 사서 먹어볼까?”

할머니의 말에
곧 내 손에는 석류 하나가 쥐어지게 되었다.


해가 들어오는
조용한 거실 한 켠에 앉은
그날의 따스함
손끝이 붉게 물든 할머니의 손
톡 하고 터지는 새콤했던 석류 알갱이.


그 순간이
기억에 깊게 남았다.
기억하려 애쓴 것이 아님에도.






#9 잠수


나는 수영을 꽤 잘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수영보다도 더 좋아하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잠수였다.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
중급용 풀에서 나와서
아무도 없는 성인용 풀로 들어갔다.

들킬세라 얼른 숨을 들이쉬고
물 속으로 들어가 수영장 안 바닥에 누우면,
그곳은 나만의 공간.

물 속은 소리가 들리는 듯 들리지 않는다.
고요한 듯 하지만 움직이는 물은 계속해서 소리를 낸다.

숨이 모자라면 물위로 올라가
다시 내려오기를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저 멀리서 들려오는
날 찾는 선생님의 목소리.

그럴 때면 수영장의 반대편으로 나가,
온수풀에서 몸을 녹이고 오는 척하면
그날의 잠수도 끝이 난다.


지금도 수영장에 가면
마음껏 잠수를 할 수 있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운 마음이다.







#10 빛의 스펙트럼


하루는 유치원에서 햇빛에 대해
배운 적이 있었다.

선생님의 물음.
“햇빛은 무슨 색이지요?”

흰색? 노란색?
대충 그 즈음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비슷하게 대답한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햇빛은 사실 많은 색을 가지고 있다며,
우리를 밖으로 데려가셨다.

그리고 주신 검은 색 원통.

한 명씩 눈에 대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드니
작은 아이들의 작은 탄성.

나에게 돌아온 순서에
서둘러 원통을 눈에 대고 하늘을 마주하니
쏟아지는 형 형의 색들.

그렇구나.
햇빛도 숨은 무지개였네.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전문필진 명함.jpg
 

[정연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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