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VOGUE like a painting 展 [시각예술]

그림과 사진의 역할, 패션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다
글 입력 2017.07.3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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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전시갈무리.jpg
 
사진은 전시회에서 사온 굿즈들(엽서와 티셔츠)과 본인의 노트.




 VOGUE like a painting 



 < VOGUE like a painting >전은 단순히 보그 잡지에 실렸던 패션화보들을 나열해놓은 전시가 아닌, 명화를 오마주하여 과거의 패션과 문화의 전통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의미 있는 시도들을 큐레이팅한 것이었다. 더 나아가 이 전시는 그림과 사진에 부여되었던 역할을 과감히 부수고 패션과 예술의 경계에 대한 강한 물음을 던진다. 이 전시를 통해 사진은 더 이상 단순한 기록의 수단이 아닌 예술가의 작품으로써 그 무한한 상상력의 캔버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으며, 패션은 '특정 시기에 유행하는 복식'이라는 사전적 정의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았다. 많은 패션계 종사자들의 참여로 이루어진 보그의 사진 '작품'들은 특정 시즌의 패션유행을 예측하고 선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독립된 예술사조가 되어가고 있다.

 전시 구성은 크게 5가지의 섹션과 '보그 코리아 스페셜 섹션'의 추가 섹션으로 나뉜다. 이 글에서는 그 중 '초상화'와 '정물화', 그리고 '풍경화' 섹션에 대한 코멘트를 남긴 후 전시에 대한 전체적인 감상을 작성하려 한다. 단순히 글의 정리를 위해 크게 나눈 것일 뿐, 이 글의 모든 감상은 서로 다른 섹션들에 대해서, 또한 언급되지 않는 '로코코' 섹션과 '아방가르드에서 팝아트까지' 섹션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감상임을 미리 밝혀둔다.



초상화



초기 르네상스에서 시작하여 바로크와 로코코를 거쳐 20세기 초반까지 예술의 역사와 함께해온 초상화가 패션사진계에 미친 파급효과를 알아본다. 에곤 쉴레, 앵그르 등 유명 초상 화가들의 작품으로부터 특별한 요소를 빌려온 작품들.

-  VOGUE like a painting 안내책자 -


 고전적인 초상화를 단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패션을 현대의 패션으로 재해석하는 것. 이 과정에서 작품이 주는 온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화려한 것은 간결한 것으로, 따뜻함은 차가움으로 돌변한다. 때로는 고요하고 어두운 배경으로부터 갑자기 일상에서는 전혀 접할 수 없을 듯한 어떤 것이 돌출되기도 한다.


어윈 올라프.jpg
 
사진 : Vogue NL 06 - Erwin Olaf, 2013


 인물에 대한 기록을 위해, 그 지위와 권력, 인물상을 표현하기 위해 그려졌던 초상화의 목적은 점차 추상화되어 현대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인물/작가의 감성과 분위기를 담아내는 데에 이룩했다. 그 분위기는 단순히 과거의 그림을 모방한 것이 아닌 시대를 입힌 재해석으로써, 어떻게 현대의 패션으로 과거의 초상화만이 줄 수 있는 회화적인 요소와 아름다움을 재현할 수 있을지를 연구한 결과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그의 명화 재해석은 단순한 패러디가 아닌 시대 간의 이질성을 극복하고자 한 시도로 보인다.

 시대가 흐르면서 기록을 위한 그림은 어느덧 작가의 개성을 드러내는 예술의 영역이 되었다. 이러한 그림의 역할은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카메라의 등장으로 더 강해졌다. 곧 자연스레 그림보다는 사진이 사실을 담아내는 역할에 고정되어있으며, 그림은 보다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는, 추상화된 요소를 잡아내는 역할을 한다는 이분법적인 인식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전시된 원작 그림과 보그의 사진을 비교해보았을 때, 이전 시대의 그림은 대부분 기록을 위한 것으로 기능했던 반면 이를 재해석한 사진은 작가의 예술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역설적이게도 이 전시를 통해 서로 다른 시대에서 사진과 그림의 역할이 전복된 것이다.
 
 더불어 현대의 사진작가는 패션이 돌고 도는 것임을 알기에 지난 시대의 패션을 담은 회화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는다. 지금으로선 조금 난해해 보이는 하이패션 화보일지라도, 보그는 현대의 복식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과거 패션의 유려함을 토대로 이상적인 미래의 유행을 전망해본다.



정물화



 명화 속의 정물을 패션의 어떤 물건과 배치했을 때 조화로울 수 있는가. 보그의 몇몇 정물화는 반 고흐, 카라바조, 폴 세잔 등의 작품에 어떻게 현대의 패션이 녹아들 수 있는지를 연구한 것 같다. 여기에는 정물의 색감뿐 아니라 질감에서 오는 느낌과 같은 것들까지 고려의 대상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전시된 것은 전 시대 화가들의 정물화를 각색, 재창조한 사진이지만 나는 사진을 통해 역으로 '화가가 이런 사물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추상화해서 그렸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때문에 사진 그 자체보다도 사진의 영감이 된 정물화의 추상성에 눈이 가는 작품이 많았다.
 
 같은 정물이지만, 손으로 그려낸 것과 카메라로 담아낸 것은 다르다. 정물화를 그리는 화가의 눈은 사진을 찍는 렌즈와 같다. 손으로 그려내는 것에는 제약이 없어 화가의 눈을 통한 정물의 변형이 더 자유로울 것으로 생각된다. 정물을 손으로 담아낸 화가의 그림과는 달리 렌즈로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의 경우 빛과 정물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우연의 순간을 포착해내야 한다. 변수가 많은 만큼, 어떤 면에서는 사진이 작가의 예술적 의도를 표현하기가 더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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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Grant Cornett, Still life, 2014
(출처 : www.vougelike.com)


 최근 읽고 있는 구가야 아키라의 책 < 최고의 휴식 >을 보면 '마인드풀니스'라는 개념이 나온다. 이는 일종의 명상방법으로서 뇌과학적으로도 뇌의 기능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되며 스트레스를 감소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있을 정도로 검증된 휴식법이다. 또한 이는 스티브 잡스 등의 명사가 실천했던 명상법으로도 유명하다. 마인드풀니스 명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는 주된 이유는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걱정이므로, 우리가 현재의 감각과 호흡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과거와 미래에서 잠시 벗어나 뇌를 쉬게 할 수 있다. 많은 전문가는 마인드풀니스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첫 번째 명상법으로 눈앞에 놓인 음식을 처음 보는 것처럼 관찰하고 맛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을 추천한다.

 정교하게 계산된 정물과 이질적인 바탕의 사진은 우리가 접하던 일상으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해준다. 우리는 낯익은 것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지만, 처음 보는 낯선 것에는 모든 게 처음인 아이처럼 주의를 기울이고 자세히 보게 된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정물들은 한 자리에 모여 우리에게 낯섬을 선사함으로써 집중을 부른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그림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일종의 명상을 허용한다. 마치 낯선 곳으로 여행을 다녀왔을 때 정신적 피로가 해소된다고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정물화를 통해, 혹은 사진 속 배치된 정물을 통해 예술적인 영감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예술의 향유를 토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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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Sam Taylor Johnson. Still life, 2001
(출처 : samtaylorjohnson.com)


 정물화 섹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샘 타일러 존슨(Sam Taylor Johnson)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영상물로, 시간이 흐르면서 썩어가는 정물과 영상 내내 변하지 않는 펜의 모습을 담았다.
 
 샘 타일러 존슨은 이 작품을 통해 예술은 순간의 아름다움만을 담는다는 고정관념을 탈피시켰다. 그는 오랜 시간에 걸쳐 썩어가는 정물을 담아냄으로써 순간의 아름다움과 현재의 소중함, 혹은 덧없음을 일깨워주었다. 나의 경우 썩어가는 사과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의 소중함을 느꼈다. 많은 예술 작품에서 담아내고자 하는 아름다움의 모습들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현재의 소중함을 담아두기 위한 노력이다.



풍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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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clifford coffin. Untitled, 1949
(출처 : http://www.vogue.mx/galerias)


 추상적인 것으로 표현되지 않았던 부분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명료해지기도 한다. 보그의 사진작품은 패션잡지의 작품이라는 특성상 모델과 의상을 앞세워 재해석한 작품들이 많았다. 풍경화 섹션이야말로 예술과 패션 화보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섹션인 듯 하다. 풍경화에 인물이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사진작가들은 원작의 풍경화에 인물이 생략된 것인 양 과감하게 모델을 풍경화의 일부로 어우러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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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화에 대해, 보정을 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담아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오필리아와 같이 디지털 보정작업을 거침으로서 오히려 식물과 풍경이 주는 본연의 질감과 색감을 더 살릴 수 있고 작가의 의도를 살릴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사진은 더 이상 기록의 범주 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예술적 표현의 수단이므로 보정작업은 경우에 따라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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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그의 사진들은 일반인이 보기에는 다소 난해해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잡지에 수록된 화보나 전시장에 전시된 보그의 작품들을 보다 보면 '누가 사막을 여행하는데 저런 드레스를 입겠어?'라거나, '누가 사슴을 잡으러 가는 데 저렇게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달겠어?' 하는 의문을 제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연을 주제로 한 작품에서도 전혀 자연적으로 보이지 않는 인위적 소재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작품들은 현실적이지 않다. 어찌 보면 작가의 상상력이 보태진 화보는 엉뚱해 보이기까지 한다. 작품들은 우리가 거리에서 실제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의상이나 자연 현상이 아닌 오히려 작가의 무의식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작품에서 느끼는 인위성은 어떤 이미지(이는 고전 예술작품일수도, 그로부터 상기되는 어떤 색감, 질감일 수도 있다)를 상상했을 때 나오는 그 원형의 무의식에 더 가까워지고자 동원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면에서 사진들은 꾸밈새가 많아도 억지스럽다기보다는 더 과격하고 솔직하다. 복잡한 장치들을 동원함으로써 오히려 본질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이번 전시 어딘가에서 '예술은 아름다움이 아닌 새로움을 추구하기도 한다'는 문구를 보았다. 보그는 처음부터 'like a painting'이라는 제목과 전시의 구성으로 패션 화보와 예술의 경계는 없다는 것을 이미 전제했는지도 모른다. 무의식, 혹은 예술적 상상력의 원형에 가까운 작품들은 일반의 패션유행에 대한 영감을 불어 넣어줄 뿐 아니라, 다른 영역의 예술과도 상호 영향을 끼친다. 이는 곧 대중의 정서, 곧, 문화에 영향을 주는 예술이다. 우리의 문화에서 패션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보그는 패션이 영감을 줄 수 있는, 그리고 받을 수 있는 영역의 무한한 확장성을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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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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