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윤동주 탄생 100주년, 그가 남긴 성찰의 울림 [문학]

저항시인 윤동주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시금 꺼내보는 그의 삶과 문학.
글 입력 2017.07.16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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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버스를 기다리며 접한 한 공중파 뉴스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시가 흘러나왔다. 윤동주 시인이라 하면, 항상 나에게 현재를 성찰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어릴 적 그의 시를 교과서에서 접했을 때도, 그가 나에게 주는 의미는 서정적이면서도 어딘가 묵직한 구석이 있었다. 그가 일제 강점기의 저항 시인이어서라는 단순한 이유가 아니라, 잔잔한 듯 보이는 그의 시는 강력한 힘이 있어 어느 때에 읽더라도 나에게 현재를 성찰하게 하는 깊은 울림을 주었었다. 또한, 그 힘은 현재도 마찬가지로 나에게 크게 다가온다. 오늘은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인 '윤동주'의 삶과 그의 시를 한 번 더 생각해 보려 한다.



윤동주 탄생 100주년, 그가 남긴 성찰의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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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윤동주 (1917. 12. 30~1945. 02. 16)


  사실 윤동주 시인은, 앞서 말했듯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생애는 조금 더 설명할 필요가 있는데, 그는 1917년 12월에 태어나 1945년 2월에 숨을 거둔 27년간의 아주 짧은 삶을 살았다. 그의 이름을 검색했을 때, 청년의 모습만을 찾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영원한 청년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는 북간도 명동촌에서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이 마을은 조선인들이 모여 살던 농촌이었다. 이 마을은 교육과 독립운동도 활발하게 일어나곤 했다. 소학교 시절부터 '새 명동'이라는 등사 잡지도 만들며 문학을 사랑했던 소년은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그 꿈을 키운다. 용정 은진중학교에 다녔던 윤동주는 교내 잡지를 발간하느라 밤새 원고와 씨름을 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평양 숭실중학교로 유학을 떠나서도 윤동주는 시 '공상'을 발표하는 등의 활발한 활동을 이어간다. 윤동주의 학창시절 기록을 확인하면 그가 얼마나 문학과 시에 대한 열정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기성복 맵시를 위해 옷을 줄이거나, 또는 농구와 축구를 사랑하는 등의 기록은 그가 오늘날의 우리와 다름없는 소년이었음을 입증해주지만, 또 끊임없이 문학을 사랑하고 글을 쓰는 모습은 어른이 된 우리도 따라 하기 어려운 열정으로 보인다.



공상


공상―
내 마음의 탑
나는 말없이 이 탑을 쌓고 있다.
명예와 허영의 천공에다
무너질 줄도 모르고
한 층 두 층 높이 쌓는다.

무한한 나의 공상――
그것은 내 마음의 바다
나는 두 팔을 펼쳐서
나의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친다.
황금 지욕의 수평선을 향하여.

윤동주의 '공상'


  그러던 어느 날, 신사참배 거부로 숭실중학교가 폐교되었고, 시간이 흘러 그는 소학교 때부터 친구이자 고종사촌인 송몽규와 함께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다. 이때, 윤동주는 의학을 공부하길 원하는 아버지와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갈등을 빚고 결국 뜻대로 문과반에 진학하였다고 한다. 연희전문학교에서 그는 우리말에 대한 자긍심, 민족의식에 대한 것을 배우고 큰 관심을 가졌으며 졸업할 때에는 그의 시 19편을 묶어 우리에게도 익숙한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라는 이름의 시집 세 권을 엮어냈다. 그는 출판을 원했지만, 일제의 검열에 걸린다는 만류에 끝내 생애 동안 출판은 하지 못한다. 그 후에 그는 송몽규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혹자는 윤동주의 생애를 송몽규를 빼고는 말할 수 없다고 하기도 하는데, 이는 송몽규가 그의 가장 가까운 벗이자 내성적인 문학 소년이었던 윤동주와는 달리 행동주의적인 독립 운동가였기 때문이다. 그런 송몽규를 보고 윤동주는 나라가 어려운 시기에 시인이 되고자 하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갈등을 겪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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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전문 시절의 윤동주와 송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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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윤동주의 삶과 송몽규와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추천 영화, '동주'


  일본으로 건너간 윤동주는 도시샤 대학 영문과에 진학한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집에 귀향하려던 그는 사상범으로 교토 경찰서에 잡혀가고, 윤동주는 2년 형, 송몽규는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는다. 이들이 직접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런 것은 통하지 않았고 둘은 꼼짝없이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히게 된다. 이 때 송몽규의 증언에 따르면 교도소 내에서 주사를 맞았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일제의 소금물 혹은 세균 생체 실험으로 알려졌다. 결국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때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의 말에 따르면 그가 죽고 10일 뒤에 '2월 16일 동주 사망, 시체 가지러 오라'는 전보가 고향 집에 배달되었고 뒤늦게 '동주 위독하니 보석할 수 있음. 만일 사망 시에는 시체를 가져가거나 아니면 큐슈 제대 의학부에 해부용으로 제공할 것임. 속답 바람'이라는 우편 통지서가 고향에 배달되었다고 한다. 가족들로서는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

 
  글로는 짧게 정리하려 노력했으나, 윤동주의 생애를 더 알고 싶다면 영화 '동주'를 보는 것도 추천한다. 글로 보는 것보다 훨씬 생생한 배경 재현과 배우들의 연기가 어우러져 이해가 쉽고 몰입이 편할 것이다. 또 영화 전체가 흑백으로 이루어져 있어 암담한 그 시대의 분위기를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으며 영화 속 상황에 맞게 나레이션과 타이포가 함께하는 윤동주의 시도 몇편 접할 수 있다.


  윤동주의 생애를 간단하게 정리했을 때는 충분히 느껴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윤동주가 느꼈던 '부끄러움, 성찰'이다. 글을 쓰는 필자조차도 그 시대에 살았다면 윤동주처럼 일제를 비판하는 시를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처참하고 무서운 일제 통치하의 상황에서 그에 반하는 나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였을 것이다. 위에서 윤동주의 생애를 말할 때 송몽규와는 반대되는 '내성적인 문학 소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사실은 윤동주는 전혀 내성적인 시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문학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표현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문학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윤동주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부끄러움을 노래한 것이다.



쉽게 쓰여진 詩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줄 알면서도
한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윤동주의 '쉽게 씌여진 시'


  많이들 접했을 위의 시는 윤동주의 '쉽게 씌여진 시'이다. 이 시가 유명한 이유는 윤동주 자신이 느꼈던 부끄러움을 잘 그렸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시를 쓰고자 하는 자신의 열망이 부끄럽게 느껴졌던 그는 이 시를 썼다. 그리고 이 시는 나아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고 있다.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 또한 '부끄러움'이었다. 저항 시인으로 활동하다 일제에 목숨을 잃은 사람이, 그토록 사랑하던 문학을 공부하고 시를 쓰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꼈는데 현재의 나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렇게 느끼는 것은 비단 필자뿐만은 아니다. 이 시를 접하는 사람들도 그러한 감정을 느꼈기에 윤동주는 우리 곁에 아직도 성찰을 주는 청년으로 남아있다.


  비록 현재를 사는 우리는 과거를 살던 윤동주 시인과 함께일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남긴 깊은 성찰의 울림은 아직도 우리의 곁에 남아 항상 현재를 곱씹게 해주는 힘이 되어 준다. 그리고 그 힘은 때로는 현재를 살게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미래를 살게 하기도 할 것이라 믿는다. 그가 그토록 책으로 만들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던 시들, 그리고 그의 생애까지. 비록 필자가 항상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그에게 직접 감사를 표할 수는 없지만,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 글을 선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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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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