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즐거운 나의 집, 나의 취향들 [시각예술]

즐거운 나의 집, 전시를 보고
글 입력 2017.05.11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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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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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을 만들기 위해서 처음에는 돈이 필요했고 차차 돈 말고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즐거운 나의 집을 위해 마음에 드는 벽지를 고르고 싶지만 월세를 내며 간간히 사는 대학생에게는 사치였고, 즐거운 나의 집을 위해 원목 가구를 두고 싶었지만 원목 가구를 파는 사이트에 들어가서 확인한 건 감히 세볼 엄두가 안 나는 공들이었다. 그렇게 차차 포기하거나 체념하거나 관심을 끄며 일부분 인정해야 할 것을 인정하고 대신 돈 말고 다른 곳에서 즐거운 나의 집을 위한 프로젝트는 새로 시작되었다. 마음에 드는 엽서를 자주 보는 벽에 붙여둔다거나 창문에 좋아하는 글귀를 오려 붙인다거나. 오렌지 색 불빛이 드는 등을 하나 마련하거나 침대 옆에 책을 쌓아둔다거나 하면서. 나의 취향은 분명 사소한 것인데 그 사소한 것은 가끔 터무니없이 비싸고 그 앞에서 취향을 잃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어쨌든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어서 나는 나의 집이 즐겁고 즐겁다 못해 사랑하기에 이른다.
 

취향들이 모이고 모여서 전시를 할 수 있다면, 그건 얼마나 특별하고 분명한 일일까.
 

토드 셀비의 즐거운 나의 집 전시를 다녀온 후로 집에 들어와서 괜한 구석자리에 앉아보는 일이 잦아졌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 있는 턱 위에, 침대 모서리에, 행거에 걸린 옷들 사이에, 집에 들어가면 바로 있는 신발장 한 편에. 크게 넓지도 않은 집을 돌아다니며 불을 켰다가 껐다가, 조금씩 다른 화장실, 신발장, 옷 방의 조명들. 그런 것들을 찬찬히 훑어가면 어느 구석엔가 내 취향이 가볍거나 깜찍하거나 신중하게 놓여있는 걸 발견한다.
 

아직은 미숙하여서 어떤 게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지, 뭐가 그리 좋거나 무엇은 그리도 싫은지 확실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자꾸 손이 가거나 시선이 가는 것들, 그런 것들을 하나씩 리스트에 올려둔다. 그렇게 하나 둘 채워나가면 즐거운 나의 집, 구경꾼들로 북적이지는 않더라도, 우리 집 한 구석이 포토존이 되진 않더라도 들어서면 내 집이다! 할 수 있는 즐거운 나의 집이다.
 

몇 가지 사소하지만 손이 자주 닿는 것들을 적어볼까. 색이 바래도 버리지 않고 모아두는 것들 몇 가지, 남들의 눈에는 쓰레기여도 내 눈에는 보석인 것 몇 가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나름의 규칙으로 배열된 것 몇 가지. 그런 몇 가지들에 가장 진한 부분은 즐거운 나의 취향들. 즐거운 나의 집이다.


[양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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