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도하듯 춤추는 [공연예술]

이철진의 < 승무 >
글 입력 2017.04.13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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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힘들어도 참아야 할 때가 있다. 이번 다이어트는 반드시 성공하겠노라며 어려운 요가 자세를 버틸 때, 러시아워 버스에서 성추행범 되기 직전일 때, 사무실에서 급한 파일을 처리하느라 엉덩이 뗄 틈도 없어 울고 싶을 때 등등. 

두툼한 버선발을 경계삼아 바닥과 몸이 함께 일렁인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는 않으나 휩쓸려가지도 않는. 아, 나라면 너무나 힘든 자세일 거 같은데. 마치 일시정지를 눌러둔 것처럼, 그러나 흐르는 땀방울이 시간성을 상기시켜주는.

얼마 전 보았던 현대무용 공연에 대한 감상으로 ‘그들과 내게는 작동하는 중력이 다른 것 같다’고 했더랬다. 그만큼 몸과 움직임이 유연하면서도 단단했다. ‘승무’ 연희자 이철진의 몸짓은 또 다른 감상이 들었다. ‘발바닥 가득 중력을 흡수하는 듯’ 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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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서구의 그것과 한국무용의 큰 차이 중 하나는 포인트-플렉스라고 생각한다. (정강이와 발등이 일자가 되도록 발끝을 곧게 펴는 것이 포인트, 발가락을 배쪽으로 바짝 당겨 발등과 발목의 각이 90도가 되게 종아리를 당기는 자세가 플렉스다.)

포인트와 플렉스에서 세계를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발레로 대두되는 ‘포인트’ 자세는, 위를 향한다. 몸을 조금이라도 더 띄워올려 하늘에 가닿고 싶은 인간의 욕망. 가볍고, 우아하며, 중력이 없듯이 보이는 게 관건이다. 하늘하늘 아름답다. (물론 그 가벼움을 만들어내는 몸은 가녀린 듯하지만 실은 매우 단단하다.)
한국무용의 ‘플렉스’는, 아래를 향한다. 땅과 가깝고자 한다. 대지를 향한 마음, 중력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자세. ‘순리’를 중시한다. 자연과 조화롭고자 하는 동양적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작은 소극장의 맨 앞자리에 앉았다. 무대와 거의 같은 높이. 연희자를 살짝 올려다보는 정도로 쳐다봐야 하는 자리였다.
코 앞에서 그의 땀방울까지 볼 수 있는 게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낮은 천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장삼자락 치대는 기개. 같은 동작을 얼마나 무수히 반복했을까. 혼자 선 무대인데도 극장이 좁아보였다. 관객이 한 명이었을지라도 그는 그토록 춤을 췄을 것이다.
무용수의 유려함이 얼굴 바로 앞을 지나가기도 했다. 함께 관람한 이는 살짝 놀라기도 하였으나, 내가 느낀 건 옷자락의 끝이 어디를 지날지 그가 정확하게 알고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시종 느릿하게 움직인다. 중력이나 시간을 무시한다기보다, 온몸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며 수도하듯 만끽하는 것 같다. 관람마저도 인내심을 요하는. 그 호흡에 나도 들렸다 놓였다 하게 되는.
살풋이 당겨쓴 고깔 아래 표정의 반만 읽힌다. 앙다문 입꼬리. 공연이 끝나고 내 턱이 아플 지경이었다. 눈물인지 땀인지 알 수 없는 무엇이 얼굴에 계속 흐른다. 어떤 경이 같은 게 느껴졌다.
그러다 점점 장단이 몰아친다. 춤사위도 격해지고, 움직임과 옷자락들로 훑어내는 공간이 점점 넓어진다. 고조되던 분위기 속에 갑자기 둥, 북을 친다. 둥둥, 작은 극장에서 내 가슴까지 울리는 깊고 넓은 북소리. 연희자가 굳게 쥔 북채와 장삼자락이 어지러이 바쁘게 움직이지만 결코 엉키지 않는다. 그 몸의 감각. 옷과, 악기와 음악과, 극장과, 관객과, 강하게 존재하는 동시에 강하게 연결된다. 뭐랄까, 온몸에서 보이지 않는 거미줄 같은게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떠올랐던 단어는 ‘조화’였다. 몸과 공간-물리적 조화로움, 몸과 기운-영적인 조화로움, 극장 안의 우리-우연적 조화로움. 내가 오늘 이 공연을 보러 온 것은 우연이되 우연이 아니다. 그가 내 앞에서 연희를 펼치는 것도 우연이되 우연이 아니다. 나 역시 그 앞에서 숨차게 고요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를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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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 공연 시작 전, 전통춤꾼 이철진에 대한 다큐 영상도 10분쯤 봤다. 자기도 왜 ‘승무’에 꽂혔는지 모르겠다는 그. 하지만 영상 속 그는 극장을 매일 직접 손보고, 정성스럽게 옷을 다린다. 단 한 분의 관객이라도 계신다면 그래서 춤출 수 있기에 감사하다는 그. 내가 관람을 갔을 때도 관객이 많진 않았으나, 공연을 설명해주시던 분도 연희자 이철진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서 구도자(求道者)의 형상을 보았다. 예술 행위는 결국 각자의 진리를 찾는 여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승무: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불교적인 색채가 강한 독무. 연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불교의식 무용설과 민속무용으로서의 유래설 몇 가지 등이 있다. (조지훈의 시 ‘승무’로 인해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지들이 있으나, 이철진 공연에서 설명을 들은 바 절에서 달밤에 스님이 승무를 출 일은 없다고 한다.)




[정한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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