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르 꼬르뷔지에' 시대를 앞선 건축가 [다원예술]

르꼬르뷔지에 프랑스의 건축의 거장
글 입력 2017.03.2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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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샤를에두아르 잔레그리( Charles-Édouard Jeanneret-Gris) 그러나 우리에게 더 유명한 이름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 1887년 10월 6일 ~ 1965년 8월 27일)는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 작가이며 현대 건축에 큰 공헌을 했다.

단순히 사람 사는 집에서 더 많은 사람이 더 효율적인 공간에서 함께 살아나아가는 집을 추구한 그는 기존의 건축양식의 틀을 꺠고 그만의 건축양식을 고안해 냄으로써, 가장 기초가 되는 건축이론 확립으로 지금까지 항상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건축가이다.

또한 그는 현대 디자인의 이론적 연구의 선구자이며 밀집 도시의 거주자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데에 노력하였다. 그는 50여 년 동안 활동하면서 중앙유럽, 인도, 러시아에 자신의 건물들을 만들었으며, 아메리카에도 하나씩 건축물을 만들었다. 그는 20세기 가장 유명한 건축가였으며, 또한 도시 계획가, 화가, 조각가, 그리고 가구 디자이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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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랜 건축연구 끝에 100년간의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구조를 발표한다 이 아이디어는 최소한의 숫자의 얇은 철근 콘크리트 기둥들이 모서리에서 지지하는 단순한 구조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구조는 유럽의 건축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일단 벽이 필요 없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벽은 물론이고 창문도 지붕도 바닥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즉, "건물의 주요기능들을 구획하는 벽체와 지붕은 구조체와 분리하여 모든 하중을 기둥이 지탱하되, 내부의 입면이나 평면은 자유롭게 구성하게 된다. 이 내용을  '현대 건축의 5원칙'이라고 이름붙인다.


1. 필로티
육중해 보이는 시멘트 건물을 철근 콘크리트 기둥인 필로티로 무게를 지탱하여 가벼워 보이게 하고  1층지표면을 자유롭게 이용한다. 
2. 옥상정원
자연을 공간 안으로 끌어들인다.
3. 자유로운 평면
지지벽이 필요 없이 바닥공간이 방들로 자유롭게 배열된 열린 평면을 만든다.
4. 자유로운 파사드
과거와 달리 정면이 없는 건물형태로 건축가가 원하는 대로 설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재료의 변화로 다양한 구조입면을 만든다.
5. 가로로 긴 창
채광효과가 좋은 띠유리창을 사용한다.


자연과 조화 그리고 황금비에 의거한 건축 그리고 실용성. 당시 프랑스의 산업사회와 전쟁 후 산업혁명과 자유와 안정을 꿈꾸던 사회분위기를 반영한 건축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르꼬르뷔지에의 건축물에 대하여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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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중심부에서 30Km 정도를 벗어나면 푸아시(Poissy)란 작은 마을이있다. 이곳에는 르 꼬르뷔지에의 대표작 중에서도 으뜸이라 할 만한 작은 집, 사보아저택 또는 빌라 사부아 Villa Savoye 가 있다.1929년, 사부아Savoye 부부를 위해 르 꼬르뷔지에가 설계한 주말 주택이다,  이 집은 르 꼬르뷔지에의 대표작이기도 하며 근대건축의 표상과도 같은 건축물이다.

이 집은 근대 건축의 여러 상징적인 모습들을 품고 있다. 집이 있는 푸아시는 포화상태에 이른 파리 근교에 있는데, 빌라 사부아는 근대 이후 복잡한 도심의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주말 주택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 집의 1층 평면은 자동차의 회전반경에 맞춰 U자형으로 설계되었다. 빌라 사부아는 자동차의 궤적을 몸에 세기고 있는 당시 최신식 집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집은 르 꼬르뷔지에가 정립한 현대건축의 5가지 원칙’을 옹골차게 반영하고 있다.
  
근대에 맞는 합리적인 건축 방식을 적용하여 새로운 건축을 만든 것이다. 근대 건축의 상징인 이 집은 집 자체가 박물관화 되어 있는데, 아직도 수많은 사람이 오직 이 작은 집을 보기 위해 파리의 외곽까지 오는 수고를 마다치 않는다. 황금비등 정교한 법칙들을 통한 건축방법을 사용하였고 르꼬르뷔지에가 발표한 현대건축 5대 법칙이 가장 잘 나타나있는 건축물로 르꼬르뷔지에의 작품을 대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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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이유 거대 주거동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e d'habitation: Large residential unite)은 1947년 10월에 기초 돌이 놓인 후 5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숫한 어려움 속에서 완공되었다. 그후 낭트, 베를린, 브리이,피르미드에서 계속하여 같은 형태의 거대 주거동이 지어졌다.

마르세이유 거대 주거동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길이 137m, 폭 25m, 높이 70m에 이르며 이는 도시의 공간구조와기능적 측면에서 기존 공동 집합주택의 개념에 대한 도전이었다.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은거대주거동이 갖고 있는 규모의 장대함과 그 실행의 대담성에 있다.이는 2차 세계대전 후에 발생하였던 유럽 주거문제에 보편적 해결안으로서 하나의 건축유형을 제제하였다는 점에서 르 꼬르뷔제의 의미있는 공헌 중에 하나라고 간주할 수 있다.

이는 르꼬르뷔지에가 만든 최조의 현대식 아파트 였으며, 그 시기에는 중요하게 여기지 못했던 거주의 실용성을 위하여 많은 편의시설이 아파트 내에 있으며, 르꼬르뷔지에가 추구하던 자연과의 조화와 자연스러운 채광등을 생각하여 발코니창을 적극 사용하는것을 고안하였다. 현재에도이곳에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으며, 르꼬르뷔지에의 건축의 모토를 따라 발코니는 절대 개조할 수 없는 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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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말년의 르 꼬르뷔지에는 프랑스 리옹에서 떨어진 라브레슬(L'Arbresle)이란 곳에 수도원을 설계했다. 낮은 산 정상에 자리 잡은 라 투레트 수도원. 이곳은 건축 순례지라고할 정도로 유명하여 많은이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입구에서 드넓게 펼쳐진 초록 벌판을 배경으로 강렬한 육면체가 눈에 들어오는데 그 강렬한 기하학적 형태와 무채색의 파사드는 초록벌판과 극렬한 대비를 이루며 그 자신을 부각하고 있다.

초록바탕에 회색 박스 하나가“ 날 좀 보소!”라고 외치는듯 하다. 내부로 굳게 닫힌 듯 보이는 수도원은 가까이 갈수록 외부와 소통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필로티(기둥)는 내외부와의 소통을 가능케 하고 있으며, 리듬감 있는 입면과 다이내믹한 소성전의 형태는 주변 환경과의 유쾌한 조우를 가능케 하는 건축물형태이다.
 
하지만 내부의 공간은 침잠의 세계로 이어진다. 르 꼬르뷔지에가 고안한 인체척도에 따른 정교한 위치의 개구부와 그로 인해 절제된 빛, 무심한 듯 거친 벽과 사색으로 이끄는 복도, 6m X 1m X 2.4m의 고독과 침잠의 수방, 이 모든 것들은 고독한 삶을 추구하는 수도사들의 생활과 맞닿아있도록 고안했다. 대성당의 강렬한 육면체의 공간도 허허롭되 차분하고, 빛 대포, 빛 기관총 등에 의한 변주의 공간들은 대비의 모습으로 차분함의 분위기를 부각하고 있다.
 
또한 르꼬르뷔지에 말년의 건축인 라뚜렛 수도원. 그의 날카로운 감성에 덧붙여진 야성적인 건축 형태와 디테일은 거칠고 막돼 보이는 조악함이 아닌 모진 세파를 견뎌낸 노인의 두터운 주름을 떠오르게 한다. 라 뚜렛 수도원에서 느껴지는 이 범접하기 어려운 원숙미는 그의 깊게 팬 주름과 닮아 이런 디테일도 그의 건축센스를 엿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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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벨포르에서 약 30Km 떨어진 곳에 롱샹이란 작은 마을이 있다. 이곳은 아주 옛적부터 이곳은 성스러운 고장으로 여겨졌는데,  이 롱샹 마을의 언덕에 르 꼬르뷔지에는 성모 마리아를 위한 성당을 설계했다. '롱샹성당'이라고 흔히 불리는 이 성당은 시적 조형성으로 충만하다. 부드러운 곡선과 곡면 그리고 여러 추상적 은유들로 가득한 성당은 내부와 외부 모두 신화적 분위기로 가득하다.

르 꼬르뷔지의 말년 작으로 그동안 만들어내던 표준적이고 규격화된 건축이 아닌, 대지의 특별한 조건 아래 형성된 특별한 모양의 건축인 것이다. 롱샹의 교회는 준공되자마자 거의 모든 건축잡지가 기사로 써 냈고, 롱샹은 한순간에 혁신의 기수가 되었다. 기능성과 효율을 중시하던 철두철미한 건축가가 자신의 엄격한 법칙을 버리고는 감성적이고 숭고한 느낌을 주는 교회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추구했던 모토적 의식의 흐름은 같았다. 롱샹성당은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창조했고 빛의 채광의 향유를 생각하여 설계하였으며 조개에서 볼 수 있는 황금비를 바탕으로 성립된 것이면서, 자유로운 곡선형으로써 그의 근대 5대 건축원칙들을 적극반영한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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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택은 스위스 작은 마을(La Chaux-de-Fonds)의 저택으로 르 코르뷔지에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당초 하이디 웨버(Heidi Weber)의 개인 저택으로 1957년 설계를 시작하여, 1963년도에 착공하여 4년 후인 1967년에 완공하였다. 시공 도중에 르 꼬르뷰제가 사망하였고, 준공 후 건축주는 입주를 하지 않고 세계적인 건축가의 예술 혼을 기리기 위해, 마지막 설계에 혼신을 한 그의 드로잉 작품을 이곳에 한데 모아 기념관으로 기증하였다. 공식 명칭은 'Maison d'homme-Heidi Weber Museum/Center Le Corbusier'로비록 소규모이긴 하지만 많은 그의 작품을 집대성한 느낌을 준다. 채광과 자연을 적극 활용하면서도 르꼬르뷔지에의 건축양식이 그대로 반영되었으며, 르꼬르뷔지에 특유의 컬러감이 개성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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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꼬르 뷔지에는 프랑스의 대표 건축가이며, 근대에서 큰 패러다임을 가져다 주었던 대표 건축가이다. 그는 건축  외에도 가구를 디자인 하기도 하였고, 자연과 빛을 적극 반영한 도시계획을 설계하기도 하였다. 물론 그의 도시계획에 있어서는 한계점도 많았으나, 세계대전이 끝나고 산업혁명과 자유로의 길로 발전하던 프랑스의 주거와 삶 그리고 건축에 있어서 큰 영향을 준 인물에는 틀림없다. 20세기의 과거 건축가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건축을 버금갈 만한 매우 세련되고 모던한 건축으로 시대를 훨씬 앞선 그의 기술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서경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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