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핏빛 세상 너머 - 연극 혈우血雨
글 입력 2017.02.20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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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정치의 비극!
누구를 위한 새로운 시대인가!
연극 혈우 血雨고려시대 무신정권을 배경으로 한 '혈우'는 제목만으로도 남자들의 이야기, 힘의 이야기의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가죽재킷을 입고 칼을 겨누고 있는 두 주연배우의 포스터 역시 뭔가 강한 액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130분이라는 시간동안 계속 싸우기만 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연극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는 '혈우'라는 제목이 그저 마음 아팠다. 힘에 의한 핏빛 세상이라기보다 핏빛 세상에 비가 내림으로써 피를 없애며 내린 혈우에 더 가까웠다.공연이 시작하기 한 5분 전쯤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이미 무대에서 배우들이 대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내가 시간을 잘못알았나..?'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또 배우들이 무대 반대편인 내 뒤쪽에서 등장하는 것이다. 정말 색다른 등장이었다. 연극이 시작되고 관객들이 이야기에 빠져들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관객 속에서 등장하는 배우들 덕분에 빠르게 극에 몰입할 수 있었다.무신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최항은 죽음을 앞두고 서자인 최의가 아니라 자신의 노비였던 김준에게 고려의 앞날을 부탁한다. 그러나 이에 배신감을 느낀 서자 최의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김준이 아니라 자신이 고려를 장악하게 된다. 최의는 그렇게 교정별감의 자리에 오르지만 당시 고려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외부적으로는 몽골 침략 전쟁이 빈번했으며 내부적으로는 계속되는 전쟁 속에서 백성들의 신음이 하늘을 찔렀다. 어려움을 뚫고 나가기 위해 고려는 무신들과 문신들이 서로 도우면서 백성들을 돌봐야 했다. 그러나 무신들은 자신들이 어렵게 차지한 권력을 지켜내기 위해 힘으로 백성들과 문신을 발 아래 두었고 문신들 역시 백성들에 대한 걱정보다 어떻게 하면 무신들을 꺾을지에 대한 고민만 한다.최악의 정치 상황 속에서 김준은 고려를 대외적으로는 강하고 안으로는 평화를 위해 최의에 맞선다. 김준은 최의를 끌어 내리기 위해서 '힘'을 이용한다. 결국 힘으로 얻은 정권은 다시 더 강한 힘에 의해 무너진다. 그 속에서 김준과 최의 그리고 그들을 사랑한 여자들이 축이 되어 이야기가 흘러간다.극 중간 중간 '최항'이 등장해서 현실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한마디씩 건네는데, 그 중 와닿았던 대사는 '멀리 보라'였다. '멀리 보라' 한마디는 참 많은걸 내포하고 있었다. '힘'에 의해 눈이 가려져 눈 앞의 사리 사욕만 보지 말라는 의미도 있을 것이고, 고려의 앞날을 내다 보라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멀리 보라'는 '함께 살아가라'라는 의미로 와닿았다. '힘'으로 되는 일은 누군가는 반드시 희생이 있기 마련이다.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는 아무리 강한 자이더라도 잃는 것이 반드시 있다. 그래서 '멀리 보라'는 최항이 아끼는 두 자식들 '김준'과 '최의' 모두가 함께 살아가길 바란 것 아니었을까.'최의'는 평생을 서자라는 컴플렉스에 갇혀서 자기 자신을 망쳐버린다. 아버지가 '김준'을 선택한 이유도 자신이 서자였기 때문이고 신하들이 자신의 뜻을 거역하는 것도 서자라서 무시한다고 여긴다. 그렇게 '최의'는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 것을 스스로 문제 삼아 자신의 치부를 스스로가 드러낸다.그러나 나는 아버지 '최항'이 '최의'에게 무신정권을 물려주지 않은 것이야 말로 진정 자식을 아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피 비린내 나는 시대에서 아들이 자신의 자리를 물려받아 핏빛 인생을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 같다.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계속해서 살육하는 그런 인생을 자식에게 물려주기 싫었을 것 이다. 그래서 절대적인 힘을 가진 '김준'에게 자리를 맡겨 핏빛 세상에 비를 내려 수 많은 피를 씻겨내고자 했을 것이다.액션만으로 가득 찬 이야기일 것 이라 생각했지만 로맨스가 주를 이루었다. 힘의 정권 무신시대에 왠 로맨스일까 의문이 들겠지만 각자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액션이 장식되었다. 액션 영화에서 보던 그런 액션신들이 연극 무대로 그대로 옮겨 왔다. 눈 앞에서 펼쳐지는 슬로우 액션과 검투신이 정말 멋있다. 보다보면 배우분들의 합이 정말 잘 맞는데 얼마나 연습했는지 잘모르는 사람이 봐도 알 수 있었다. 다만, 사용되는 검들이 조금만 무게감이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연기를 위해서 가벼운 검이라는 걸 알지만 너무 가벼워서 검들이 약간 힘이 없어 보여 아쉬웠다.'혈우'라는 무섭고 섬뜩한 제목을 가지고 세상 너머의 희망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고려시대나 지금이나 핏빛 속에서도 언제나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이제는 막연한 언젠가가 아니라 곧 피가 씻겨 내려가고 깨끗한 세상이 오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극장을 나왔다.※공연정보※
공연일시 : 2017.2.11 (토) ~ 2.26 (일)
평일 오후 8시 | 토요일 오후 3시, 오후 7시ㅣ 일요일 오후 4시 (월 쉼)
* 2월 11일 (토) 오후 7시 공연만 있음
공연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러닝타임 : 130분
아트인사이트 : http://www.artinsight.co.kr/[이정숙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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