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 조금만 더 Relax. 게으를 권리 [문학]

우리의 삶에 게으를 권리가 보장되어 있나요?
글 입력 2016.09.01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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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하루에 24시간이 주어졌고 1주일, 한달, 일년의 시간 단위로 정해두고 살아간다. 어제의 하루를 되새겨 보자.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인 행위는 무엇일까? 경제적으로 일말의 걱정이 없는 이들을 제외하면 인정하기 싫더라도 대부분 일, 노동을 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활동인 주체 중 하나인 가계 즉, 개인이 스스로 삶에 필요한 욕구들을 채우기 위해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자명하다. 가계는 기업에 노동을 지불하고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그리고 이 두 주체를 포용하여 전반적인 생산량을 안정적으로 증가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정부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GDP(국내총생산)를 기록하고 있고 나름 잘사는 나라로 분류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세계 10위의 수준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지에는 상위권을 차지 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개개인 마다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매일 일을 하고 돈을 벌지만 아이러니하게, 왜 돈은 버는데 마냥 행복하지만 않는 것인가. 이런 딜레마에 대해서 100년 전에 꼬집은 폴 라파르크(Paul Lafargue)의 게으를 권리라는 책을 통해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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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폴 라파르크(Paul Lafargue)는 1842년 쿠바의 산티아고에서 혼혈로 태어나 어린 시절 프랑스로 이주하여 의사이자 작가로 또 아나키스트 성향의 프루동주의자로서 정치활동을 했다. 그리고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의 둘째 딸의 사위가 되고 그의 사상도 받아드리며 부르주아 정부에 반대하는 삶을 살았다.





일단 필자는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 아니며 더욱이 실패라고 판명이 난 사회주의자를 따르던 사람의 사상에 대해 들여봐야 한다는 불편함에 대해서는 자본주의의 병폐가 극심한 19세기 프랑스 부르주아 정부를 비판하는 시선을 통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부분들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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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게으를 권리, 추상적 개념의 기원, 마르크스에 대한 회상, 아테네 신화, 말의 권리와 인간의 권리, 사회주의와 지식인, 여성문제의 목차를 가지고 있고 부르주아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텍스트 이외에도 고대 신화나 추상적인 가치를 논하는 학문에 대한 그의 생각도 담겨있다. 그리고 이 책은 O tvN의 “비밀독서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소개되어 접하게 되었다.





저자가 살던 시대를 들여다 보면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을 통해서 유럽의 나라들은 사회, 경제 구조에 변화를 맞게 되었고 사람들 역시 도시화, 산업화에 흐름을 따라갔다. 점차 돈 많은 시민들이 늘어나고 이들은 부르주아 계급이 되어 사회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퍼뜨리고 결국에는 프랑스에서 부르주아 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공장에서 일하던 프롤레탈리아 계급(노동자)들의 삶은 점차 부를 축적하고 삶의 질이 높아지는 부르주아들과 달리 점차 노동시간이 증대 되고 작업 환경 역시 악화된다. 이는 부르주아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며 인간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발명된 기계와 역설적으로 경쟁을 해야 살아남게 되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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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송곳”


이를 보고 폴 라파르그는 노동자들의 권익이 보장되어야 하며 우리의 삶은 행복해야 하며 그 명분을 위한 것이 노동일 뿐, 노동이 전부인 것처럼 사는 삶 그리고 그런 삶을 조장하는 부르주아 계급들을 비판한다. 그는 노동자의 근무 환경, 시간, 복지 들이 형편 없는 상태라 노동계급이 아닌 노예계급이 되어 버린 점을 말한다. 그의 말을 빌리면 그 시대의 노동자의 권리는 부르주아 계급이 타고 다니는 말보다 못한 수준이라고 냉철이 바라본다. 반면에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들을 위해 일을 해주는 노동자에게 감사를 표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들이 불만을 갖거나 반기를 들지 못하도록 사회, 정치, 교육, 종교, 학문적으로 끈임 없이 억압하며 그는 이런 병폐가 지속 된다면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신랄히 비판한다. 폴 라파르그는 사회주의자 이기에 이런 문제들의 해결책은 사회주의라 주장한다. 편향된 시각에서의 서술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노동자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가정, 사회에서 폄하되고 있는 문제들과 경제적으로 제도나 법이 올바르게 정립되지 않아서 생기는 지적 재산권, 지식인들의 문제등 오늘날 사회에서도 대두되는 논란거리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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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라파르그는 노동은 축복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삶에서 행복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정도로만 노동이 행해져야 하며, 행복을 스스로 일구어내는 일이 노동이기에 축복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산업혁명을 통한 기술발전은 인간을 더욱 편리하게 하는 것이 아닌 인간을 더욱 극한으로 몰아세우는 존재가 되었다. 이는 100년 전에 논의 되었던 문제지만 지금 현대사회로 이어진다. 100년 전부터 이어진 문제이므로 원래 인간이 풀 수 없는 영역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쨋든 우리에게는 딜레마로 여전히 남아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정해진 휴가를 다 쓰지 못한다거나 야근은 기본이며 주말에도 회사로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이 모두 이런 순간들이 행복하다면 다행이지만 아쉽게도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이런 문제에 저자는 게으를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이는 급진적 사회주의자의 주장이지만 필자 역시 우리네 삶도 조금의 게으를 권리가 보장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직은 우리 사회가 참 많이 바쁘기에 개인이 독단적으로 게으를 권리를 선언해버리고 행동하면 곤란해지겠지만 마음의 조금의 여유를 갖고 알게 모르게 노예로 전락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본다면 차츰 사회도 변해갈 것이다. 그렇다면 성장한 사회가 일하는 모든 이에게 여유를 챙겨주지 않을까. 과연 훗날 노동이 축복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면, 우리에게 게으를 권리가 마땅히 보장된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떠할지 상상해보자.





[이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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