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정열을 파괴하여 정상인을 만든다. <에쿠우스> [공연예술]

글 입력 2016.02.24 21:5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002.jpg

 

  지난 1975년 한국에서 초연된 이후로 40년간 꾸준히 사랑 받아온 극작가 피터 쉐퍼의 연극 <에쿠우스>의 40주년 기념 앵콜 서울 공연이 지난 2월 7일 막을 내렸다. 말 일곱 마리의 눈을 찌른 소년 알런과 그를 맡게 된 의사 다이사트의 이야기. 극 내내 쏟아지는 다량의 대사와 스펙터클한 연출, 그리고 그 중심에서 극을 지배하는 폭발적인 연기는 정통 연극의 특성을 기반으로 심오하면서 드라마틱한 체험을 선사했다. 극중 인물들은 기본적으로 현대 사회에 적응하는 그 자유를 억누르는 사회화 과정을 거친 사람을 ‘정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범주에서 벗어난 소년 알런은 누가 보아도 ‘비정상’이었다. 그는 사회화되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이름 석 자도 못 쓸 정도로 어떠한 교육도 하지 않았고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는 전직 교사였다.) 매일같이 하는 일은 아무런 지식도 없는 아들에게 오직 성경 속 이야기를 끝없이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사회로부터 단절된 아들에게 유일한 배움의 통로였던 텔레비전을 아예 보지 못하도록 차단시켰다. 17세가 되도록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상태로 고립되어 있던 알런이 만난 말 너젯트는 곧 그의 세계 전부가 되었다. ‘에쿠우스!’ 말은 알런에게 종교였고 사랑이었고 그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였다. 현대사회의 굴레를 모르는 알런은 말을 타고 달리며 그를 억압하는 모든 옷을 벗어 던지고 원시적 자유 그 자체를 느꼈다. 말과 하나가 되기를 열망하며 울부짖는 그 강렬한 연출 속에서의 알런은 마치 신이 된 듯 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사회는 이를 두고 ‘비정상’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장엄하게 1막이 마무리되고 2막의 오프닝은 1막의 오프닝과 똑같이 진행되었다. “그 소년은 오직 너젯트라는 말만을 껴안을 뿐입니다.” 2막의 독백을 통해 나타나는 삶 속에서 알런은 이전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느꼈으며 질이라는 소녀를 만나 사랑과 성에 다가간다. 그러나 마구간에서의 섹스는 알런을 미치게 했다. 그것은 알런에게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마구간은 가장 성스러운 장소였고 알런의 전부였다. 엄청난 금기를 어긴듯이 괴로워하던 알런은 광기에 휩싸였다. 그런데 여기서 눈 여겨 볼 점은, 알런으로 대표되는 이 극의 시사점이 원시적 자유에 대한 갈망을 긍정하면서도 혼란과 광기의 분출 지점을 신 앞에서의 섹스로 잡았다는 것이다. 억압되어 온 모든 것에서 벗어나지만, 성경이 강요되던 일상 속에서도 벗어나지만 한 가지, 이브가 선악과를 먹은 이후부터 부끄러움으로 간주되던 성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자기만의 신을 모시고 그 신과 하나되기를 갈망했지만 결국 알런 역시 신에게 종속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한 현실을 맞닥뜨린 알런은 폭주하며 그의 전부였던 말을 스스로 해한다. 이는 자유를 위한 최후의 몸부림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1000.jpg                                                          
  줄곧 알런의 이야기만 해왔는데 이 극의 또다른 중심축 닥터 다이사트의 이야기를 해보자. 그는 소위 ‘비정상’으로 불리는 아이들을 ‘정상’으로 되돌려놓는 일을 한다. 본인 역시 일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는 듯 자신은 그간 만난 아이들의 개성을 잘라버렸다고 자조한다. 다이사트는 알런 역시 그러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알런은 다이사트의 아주 중요한 부분을 일깨웠다. 현대사회 속 지루한 일상에서의 탈피, 진짜 자유를 향한 꿈을 상기시킨 것이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다이사트의 억압된 듯한 따분한 일상의 원인 중 하나로 무정자증을 설정한 것이다. 에쿠우스를 극찬한 리뷰 구절 중 현대사회를 욕망이 거세된 곳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있다. 다이사트의 무정자증은 그것을 단적으로 드러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욕망이 거세된 채로 사랑하지 않는 아내와 함께 벽난로 앞에서 아주 무료한 세월을 보낸 다이사트는 그와 달리 조금이나마 원시적 자유를 느껴본 알런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의사인 그는 알런을 ‘치료’했다. 알런의 욕망이 좌절된 지점이 마굿간이라면 다이사트는 그 욕망을 완전히 거세한 것이다. 그리고는 물었다. 마치 자기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묻고 있는 듯 했다. 의사는 정열을 파괴할 수는 있어도 창조할 수는 없었다. 관객을 향해 회의적인 독백을 내뱉은 다이사트에게는 짙은 권태와 무력감이 깔려 있었다. 진정으로 자유로워지지 못했던 알런, 알런을 ‘정상인’으로 만들어 버린 자기 자신, 해결되지 못한 근원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하며 극은 막을 내린다.                  

  <에쿠우스>는 극이 진행되는 내내 강렬한 연극적 체험을 하게 해 준다. 또한 대단원에 가서는 관객의 고찰을 유도하지만 동시에 모두를 순간의 멍한 상태로 만들 정도로 무거운 한 방을 울린다. 승화되지 못한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그로 인해 자기 자신을 잃은 채 텅 빈 삶을 살아가는 현대 사회 속 많은 이들의 실태. 이를 지난 40년 동안 낱낱이 드러낸 것처럼, 앞으로도 <에쿠우스>의 그 감동은 계속해서 실현될 것이다.


1001.jpg
 
[이서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