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섬세한 체코 인형극 - 다락에서 여행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공연
글 입력 2016.02.19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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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체코 인형극
- 다락에서 여행 -


2015 06 - Poster (RGB A4 - Marged Layers).jpg
 

극장에 처음 들어섰을 때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조명과 기괴하게 생긴 인형들 때문에 조금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극장이 작고 아기자기해서 뭔지 모를 포근함이 느껴졌고, 동화책에나 나올 법하게 생긴 귀여운 개가 반겨주어 금세 긴장이 풀렸다.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왼편에 작업실이 있었는데, 미완성된 인형들이 놓여 있었다. 집중해서 인형을 손질하는 장인들의 모습이 상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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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장소는 굉장히 작았는데, 마치 유치원에서 인형극을 보는 것만 같았다. 물론 유치원보다는 어둡고 차분한 느낌이 강했다. 공연이 시작하자 체코 배우분께서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하신 다음, 체코어로 무언가 말씀을 하셨는데 잘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당황했다. 한국 배우분이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어를 하실 줄 알았는데, 공연 내내 체코어로만 진행하셨다. 배우분들께서 민망해하지 않도록 계속 웃고는 있었는데,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공연에 앞서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을 가졌다. 배우 두 분이서 말을 주고 받기도 하고, 관객과 함께 악기 연주를 하면서 배우와 관객 사이의 벽이 어느정도 허물어졌다. 마지막으로 체코 배우분께서 "오픈 마인드"를 외치시면서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됐다. 그제서야 아는 단어가 나왔다는 반가운 마음에 힘껏 박수를 치며 공연의 시작을 맞이했다.

각각의 무대는 개별적인 이야기로 구성됐다. 각 무대별로 다른 종류의 인형이 나오고, 즐겁고 신나는 무대부터 다소 어두침침하고 긴장감을 유발하는 무대까지 다양하게 꾸며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루하지 않고 좋았다. 공연이 만 14세 이상 관람객들을 위해 만들어진 만큼, 아이들이 보기에 잔인하고 무서운 장면도 있었고, 다소 심오한 내용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인형의 움직임이 섬세하고 정교해서 화들짝 놀랐다. 관절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표현해냈고, 인형이 어떤 동작을 취하느냐에 따라 인형의 눈동자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어떻게 인형을 이렇게 만들 수가 있을까 감탄할 수밖에 없는 멋진 무대들이었다. 또 인형극이라고 해서 인형들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 배우도 함께 연기해서 더욱 생동감 넘치고 재밌었다.

소품 위에서 진행되는 무대들은 괜찮았는데, 소품 아래의 바닥에서 진행된 무대들은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않았다는 아쉬운 점이 있었다. 무대를 보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여야 해서 불편했다.

인형극은 애니메이션 영상과 함께 진행됐다. 인형극을 좀 더 다채롭게 만들어주고 보는 재미를 더해주는 역할을 했지만, 어떤 내용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앞 쪽의 영상들은 나비를 죽이는 장면, 으스스한 다락(?)이 나왔는데 보는 동안 무섭기도 하면서 긴장됐다. 그리고 뒤 쪽의 영상들은 비틀즈가 노래하고 버스를 타기도 하는 등 밝은 장면들이 연출됐다. 머리를 까딱까딱 흔들고 노래를 따라부르면서 무대를 즐겼다.





기억에 남는 무대는 다음과 같다. (공연 순서와 무관하게 작성함.)


1. 가로등 켜는 남자
공연 첫 무대로 가로등 불을 켜는 중년 남성이 나왔다. 인형이 가로등 불을 켜면 체코 배우분께서 입으로 바람을 후 불어 가로등 불을 끄고, 인형이 화를 내면서 다시 가로등 불을 켰다. 체코 배우분이 장난끼 넘치는 표정으로 불을 끄려할 때마다 한국 배우분이 인상을 찌푸렸는데, 그 모습이 참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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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노래하는 여자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여자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무대 위의 무대인 셈이다. 흘러나오는 곡은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노래였다. 인형이 무대 위에서 고개를 이쪽저쪽 돌리기도 하고, 팔을 올렸다 내리기도 하고, 관객들과 호흡하는 모습도 보여주는 등 섬세한 움직임이 참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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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난 날을 되돌아보는 노인
상당히 심오한 장면이었다. 바위만한 크기의 얼굴이 등장했다. 매우 지치고 슬퍼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인형의 머리 위로 한 여자가 남자를 만나 가정을 꾸려나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다음 장면으로 옮겨갈 때마다 커다란 인형의 시선이 위를 향했다가 멍하게 다시 앞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 옆에서 체코 배우분이 무섭게 생긴 가면을 쓰고 괴로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슬픔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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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치킨
닭이 치킨이 되고 점점 뼈다귀만 남는 내용인데, 배우분들의 표정 연기가 더해져 즐겁게 봤다. 닭(치킨)이 정말 벌벌 떠는 거 같았는데,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치킨 시킬 때 딸려 오는 '무'를 소품으로 사용해서, 관객들이 더 친숙하게 무대를 즐길 수 있게 했다.


5. 낚시하는 남자
털옷을 입은 남자가 추운 날씨에 낚시를 하는 장면이었다. 여유롭게 낚시를 즐긴다기보단, 혹독한 추위를 겨우겨우 이겨내며 먹을 것을 마련하기 위해 물고기를 잡는 모습이었다. 매우 고독하고 슬퍼보였다. 짐승과 까마귀가 등장할 때마다 부르르 몸서리 치는데, 화를 내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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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피아노 치는 노인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든 무대였다. 노인의 첫 등장은 사실 별로였다. 왠 부스스한 머리에 꾀죄죄한 복장까지 까탈스러울 것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형이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하면서부터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체코 배우분이 옆에서 애벌레 인형, 색종이 가루, 물뿌리개 등을 이용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을 표현했다. 겉모습은 다소 남루해보여도 노인의 손가락을 따라 흘러나오는 피아노 선율은 참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물론 직접 연주한 건 아니었지만, 공연을 보면서 느끼기에 그랬다.


(사진 제공=다락극장 홍보용 자료)



체코는 이런 종류의 인형극이 활성화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족 마리오네트 극장에서 시작한 인형극은 여러 극장에서 아이를 비롯해 어른들까지 즐길 수 있는 공연으로 꾸준히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도 판소리, 사물놀이, 탈춤같은 전통 공연에 대한 관심을 더 가지고, 그 전통을 꾸준히 이어갔으면 좋겠다.

유치원 때 이후로 인형극을 본 적이 없었는데,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어 좋았다. 이와 동시에 내용이 유치하지 않고 어른들의 눈높이에 맞게 구성되어 있어서 동심 속으로 들어간 듯 들어가지 않은 듯 그 경계선에서 공연을 관람했다.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공연이라 한 번쯤 체험해보면 좋을 듯하다.


[정선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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