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코펜하겐의 자치 공동체, 크리스티아니아에 대한 단상 [해외문화]

정갈한 코펜하겐 도심 속 크리스티아니아.
글 입력 2015.12.24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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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코펜하겐의 자치 공동체, 크리스티아니아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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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여름, 코펜하겐에 갔을 때였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여유로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깔끔한 외모의 북유럽사람들이 떠올렸고, 그런 이미지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다 프리워킹투어에서 만난 호주 친구가 “크리스티아니아”가 꼭 가고 싶다고 하여 (뭔지 모르지만) “OKAY”했다. 그리하여 마주한, 정갈한 코펜하겐 도심 속 크리스티아니아.


그렇다, 나는 완전한 낯섦에 떨고 있었다. 입구부터 심상치 않더라니, 온 동네가 자유와 반항의 예술, 그래피티 천국이었다. 태국에서 볼 법한 석탑이 광장 중앙에 있었고, 그 한 켠에는 요란한 무대가 설치되어있었다. 허름한 집들이 많았는데 난잡하게 미술도구들이 흩어져있었고, 요상한(?) 사진을 전시하는 집도 있었다. 생필품을 파는 집도 있기는 했다. 강 주변을 걸을 땐 쓰러져가는 판자집에서 멀끔한 백인이 빼꼼히 나와서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어디서나 알싸하면서 몽롱한 냄새가 풍겼다(호주 친구가 말하길, 그 냄새는 마리화나였다). 한마디로, ‘북유럽, 덴마크, 코펜하겐’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해 있을 수 없는 곳 같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많은 이들이 북적 였다는 점이다. 광장 테이블은 앉을 자리도 없었다.


006_히피와반문화앞-600x867.jpg▲ [히피와 반문화](크리스티안 생-장-폴랭 지음, 성기완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15, yse24제공 http://book.naver.com/product/go.nhn?bid=8752150&cpName=yes24&url=http%3A%2F%2Fwww.yes24.com%2FCooperate%2FYes24Gateway.aspx%3Fpid%3D95609%26ReturnURL%3Dhttp%3A%2F%2Fwww.yes24.com%2F24%2Fgoods%2F16513227
 

코펜하겐 크리스티아니아는 이렇게 이상한 장소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난 후 [히피와 반문화]라는 책과 함께 다시금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책을 간단히 말하자면, 6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정치, 예술적 반문화 운동의 양상과 그 평가를 적어둔 책이었다. (미국인들이 쓴, 그 시대를 신격화하는 경향의 저술들이 없잖아 있는 반면) 프랑스인 저자라 그런지, 미국의 반 문화운동에 꽤 객관적이었다. 결국 반 문화운동이 흐지부지되고, “여가”를 통해 산업사회의 전에 없던 황금기를 가진 세대들이 시간이 흘러 주류사회에 복귀했음을 “고유의 모순을 극복할 수 없었다”고 지적한다. 고유의 모순이란 무엇인가? 깊게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산업자본주의라는 단단한 바탕을 둔 주류에 반해, 반문화 운동은 마르크시즘적 혁명들이 결국 실패했고 예술운동들도(예를 들면 1969년 8월 뉴욕 주에서 열린 우드스톡 록페스티벌) 폭력적으로 변했던 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결과 60년대 미국에서 발발하고 70년대 전 세계로 퍼진 ‘반문화 운동’은 2015년 현재에는 자취를 감추었다.


KakaoTalk_20151224_012723388.jpg▲ 크리스티아니아의 common law
 

이런 맥락에서 크리스티아니아의 존재는 더 빛을 발한다. 물론, (고유의 통화단위를 쓰지만)그들도 ‘화폐경제’에 살고 있고, 코뮌 외의 사람도 그 장소에 발을 들일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개방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맥이 끊긴 반문화의 역사를 유지하고 있는 지구상에 몇 안 되는 공동체임은 분명하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크리스티아니아의 대변인, 토마스에 따르면 850여명 남짓의 구성원들은 주기적인 자치회의를 통해 공동체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살 방안을 마련한다. 공동체 유지비-세금-을 내고, 여력이 안 되는 이들은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어쨌든, 공동체가 원활히 돌아갈 수 있게 한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요점은 그들을 “인정해주는” 코펜하겐이다. 코펜하겐 시는 크리스티아니아를 새로운 사회 실험의 일환이라고 보면서 1971년 이래 그들이 버려진 군영 지를 불법 점유했음에도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근래 그들의 불법점유에 반대의견이 나오자, 시중가 보다 싼 가격에 공동체 구성원들이 그 땅을 매입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크리스티아니아와 코펜하겐 시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서로의 “존재”를 조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찾아가고 있다. 코펜하겐 시민들도 이런 행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크리스티아니아에 있던 많은 이방인들(사실 히피들과 非히피들은 겉모습에서부터 구별이 가능했다)에서부터 그 공동체 존속이 사회적으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건 자명했다.


501086.jpg▲ 출처 yes24
 

크리스티아니아를 보며 한국의 세태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이 공동체와 오버랩 되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도 나오는, 재개발 때문에 고통 받는 소시민의 모습이었다. 새로 지을 아파트 분양권을 받아도 입주할 돈도 없고, 여태 살아오던 삶의 터전도 잃어버린 소시민들의 목소리는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고, 결국 주인공은 자살했다. [난쏘공]의 배경이 70년대라는 걸 알면 더 소름이 돋는다. 동일한 70년대인데 지구 반대편에서는 공동체의 공생을 모색하는 반면, 여기서는 누군가의 부귀영화를 위해 누군가의 생명이 바스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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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나 시끄러운 한국사회를 더 잘살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크리스티아니아를 보면서, 해결책은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적 논리, 이익과 손해라는 경제적 논리로 따져 나올게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마주보고 말한다’는 대화, 이 참 의미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 문화를 가졌느냐, 아니냐 에서부터 문제는 풀릴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히피와 반문화] 2015, 크리스티안 생-장-폴랭 지음, 성기완 옮김, 문학과 지성사
대항문화와 문화적 좌파
'자유도시'크리스티아니아

[이세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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