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만들어진 예술’, 감동은 거짓일까요? [문화전반]

글 입력 2015.11.20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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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만들어진 예술’, 감동은 거짓일까요? [문화전반]


백남준부터 존 케이지까지 분야를 막론하고 문화예술계에서는 그 특유의 예술적 영감 때문인지 유독 ‘괴짜’로 표현되는 이들이 많습니다. 


11(S).jpg▲ 출처 : www.dresslab.com
 <작곡가 존 케이지>


12(S).jpg▲ 출처 : ggcf.tistory.com/
 <비디오작가 백남준>


하지만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괴짜 중의 괴짜로 손꼽힙니다. 

14살의 어린 나이로 데뷔하여 32살에 은퇴한 글렌 굴드는 수많은 일화를 남긴 그야말로 괴짜 피아니스트입니다. 특히 1955년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레코딩 현장에서 그의 기괴한 모습은 여전히 전설처럼 전해지곤 합니다. 


04(S).jpg▲ 출처 : www.glenngould.ca
 

여름날 외투를 껴입은 채, 장갑과 베레모, 목도리로 중무장을 하고 나타나 레코딩 내내 선율을 흥얼거리며 신음에 가까운 허밍으로 스텝들을 당황시킨 사건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회자되곤 합니다. 

그런데 굴드는 특이하게도 32살의 젊은 나이로 은퇴 한 뒤 녹음과 방송활동만으로 관객들과 만났습니다. 공연을 관람하러 온 청중에 대해 불신하며, 그들을 부정적으로 바라 본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괴짜로 알려져 있지만 예술의 본질과 그를 둘러싼 주변 요소들에 대한 고뇌는 그 누구보다 컸던 것입니다. 


01(S).jpg▲ 출처 : www.nytimes.com
 

그런데 그런 그가 했던 독특한 ‘시도’가 있습니다. 명지휘자로 이름을 날렸던 카라얀과 가상으로 협연을 펼치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미디어가 크게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 어떻게 이런 상상을 했을지 의문이지만 핵심은 간단했습니다. 




전화를 통해 함께 연주 할 곡의 모든 세부적 요소들에 대해 토론하고 대화를 나눈 뒤, 굴드가 자신의 피아노 독주 부분만을 레코딩해서 카라얀한테 보내는 것입니다. 카라얀은 굴드의 레코딩을 바탕으로 본인이 지휘하는 관현악 부분만을 따로 레코딩 한 뒤, 두 개의 다른 녹음을 ‘기술적으로’ 합쳐 하나의 음악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굴드가 상상했던 가상협연의 핵심이었습니다.     

70년대 했던 계획치고는 상당히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쉽게도 이는 카라얀의 거절로 현실화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굴드가 타계한지 24년이 지난 후 비슷한 계획이 현실화 됩니다. 
바로 컴퓨터가 굴드의 녹음을 새롭게 재창조한 것입니다. 


05.jpg▲ 출처 : Sony Music Entertainment
 

과정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우선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굴드의 1955년도 녹음에 담겨있던 건반터치, 음량, 페달링 등의 모든 음악적 정보들을 완전 데이터화합니다.  

그 후 디지털화 된 이 정보를 가지고 컴퓨터가 ‘재연주’를 시작합니다. 


07(S).jpg▲ 출처 : www.labkultur.tv
 

재연주 녹음에는 굴드의 초기 녹음 리마스터링을 도맡아왔던 피터 쿡과 굴드의 모든 피아노 레코딩의 조율을 맡았던 베르네 에드퀴스트와 그의 제자부터, 클래식 레코딩으로 수십 차례 그래미상을 수상했던 명프로듀서 스티븐 엡스타인 등 각계의 전문가가 참여하며 일종의 ‘당위성’도 확보했습니다.  


total.jpg▲ 출처 : www.torontoaes.org/www.alumnilive365.mcgill.ca/ www.manring.net/
 <왼쪽부터 피터 쿡, 스티븐 엡스타인, 베르네 에드퀴스트>



앨범이 발매됐던 2007년 당시, 음반 제작사는 이 앨범을 두고 굴드의 최신 녹음인 동시에 더 감동적인 연주라며 대대적인 마케팅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굴드의 일부 골수팬들은 해당 앨범을 두고 ‘가짜’라고 반발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앨범은 진짜일까요, 가짜일까요? 

모든 음을 쪼개고 쪼개 컴퓨터로 ‘재생’ 혹은 ‘연주’ 시킨 이 앨범을 굴드의 것이라고 정의해도 괜찮은 것일까요? 

해답은 없겠지만 굴드는 살아생전에 본인 앨범 레코딩에 있어 잘 된 부분만 짜깁기하는 ‘편집’에 대해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아니, 오히려 ‘애용’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02(S).jpg▲ 출처 : Sony Music Entertainment
 

물론 예술을 ‘내적 연소’에 비유하며 관객 앞에서 과시하는 것은 ‘천박하다’고 표현하며, 주류적인 통념은 완강히 거부했던 굴드이기에, 굴드 본인을 ‘자기 복제’한 이 앨범에 대해 그가 어떤 평가를 내릴 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이 앨범을 두고 완벽한 가짜라고 매도하며 낙인을 찍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분명 여기서도 가슴 뭉클한 감동부터 소소한 즐거움 혹은 슬픔까지 느끼며, 감정의 종류와는 무관하게 음악 자체에 박수를 보내는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06.jpg▲ 출처 : www.wholeheartedleaders.com
 

어쩌면 하늘에 있는 굴드의 허락 없이 재편집되어, 컴퓨터에 의해 재연주 된 음악은 이미 그 자체로 독창적인 새로운 하나의 분야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음악 자체로서 많은 이들이 즐길 것입니다. 

때문에 이 음악이 ‘굴드의 것이냐 혹은 굴드의 것이 아니냐’라는 논제와는 상관없이, 그 음악으로 인해 느껴지는 감동에 대해서는 감히 그것이 ‘거짓 감동’이라고 그 누구도 단언 할 수 없을 것입니다.   


09(S).jpg▲ 출처 : www.kekoponte.com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한번쯤은 되돌아보며 자문해 볼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오늘 느낀 감동의 원천과 감동 그 자체는 어디서 온 것인가요?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정답은 언제나 당신의 몫입니다.  


 
[김성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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