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봄은 언제입니까 [문학]

때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글 입력 2015.11.08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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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봄은 언제입니까 – 때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John Milton(1608-1674)의 시
- How soon hath time



 완연한 가을이다. 거리마다 물들인 낙엽과 쌀쌀해진 바람이 어김없이 가을이 왔음을 알린다. 추수의 계절인 가을, 올해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당신은 어떤 결실을 맺었는가. 마음을 추슬러 다시 다가올 봄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밀턴의 시 한편을 소개한다.





 2015년의 하반기 공채가 마무리되고 있다. 다수의 취업 카페에는 서류탈락의 고배를 마신 이들의 아쉬움을 담은 후기들이 올라오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이들도 응원을 보낸다. 역사상 가장 높은 학력을 갖췄음에도 취업이 어려운 시대. 낙담한 젊은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여러 신조어들까지 생겨나며 그들이 직면한 고단한 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현 세대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지금으로부터 약 380년 전의 밀턴(John Milton)역시 미처 꽃피우지 못한 스스로에 대하여 고심하고 있었다. 그가 23세에 쓴 시 《How Soon Hath Time》은 이러한 그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며, 그 나이의 젊은이들이 흔히 할 법한 ‘성취에 대한 어려움’의 내용을 담고 있다.



존 밀턴.jpg
 
● John Milton (1608-1674)
런던의 부유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했다.
금욕주의적 신앙을 강조한 청교도 시인이자, 서사시 《실낙원》(Paradise Lost)의 
저자로서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영국의 대시인으로 평가된다.



《How Soon Hath Time》

John Milton(1608-1674)


How soon hath time, the subtle thief of youth, ----------------- A
Stolen on his wing my three-and-twentieth year! ----------------- B
My hasting days fly on with full career, ---------------------------- B
But my late spring no bud or blossom shew'th. ----------------- A
Perhaps my semblance might deceive the truth ----------------  A
that I to manhood am arrived so near; ---------------------------- B
And inward ripeness doth much less appear, --------------------- B
That some more timely-happy spirits endu'th. ------------------- A
Yet be it less or more, or soon or slow, ------------------------------- C
It shall be still in strictest measure even --------------------------------- D
To that same lot, however mean or high, ---------------------------------- E
Toward which Time leads me, and the will of Heaven; ----------------- D
All is, if I have grace to use it so, -------------------------------------- C 
As ever in my great Taskmaster's eye. -------------------------------------- E


* Rhyme Scheme



 밀턴의 시 《How Soon Hath Time》은 Petrarchan Sonnet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이 형식은 Octave – Volta - Sestet으로 구성된다. Octave는 8행으로 시의 문제 상황을 드러내고, Sestet은 마지막 6행에서 그 해결책을 제시한다. Petrarchan Sonnet의 가장 큰 특징은 터닝 포인트를 둔다는 것이다. Octave와 Sestet을 나누는 기점은 Volta이다. 바로 이것이 시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상황을 완전히 상반시키는 효과를 줌으로써 시의 주제를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이 형식은 주로 의 rhyme scheme을 가지는데, 이 시에서는 마지막 3행에서 로 끝나는 약간의 변주가 일어났다. Petrarchan Sonnet는 주로 종교적이고 성스러운 시에서 자주 쓰이던 형식이다. 따라서 그가 쓰던 시의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밀턴의 청교도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1. Octave: Problem




How soon hath time, the subtle thief of youth, 
Stolen on his wing my three-and-twentieth year!
My hasting days fly on with full career,
But my late spring no bud or blossom shew'th. 
Perhaps my semblance might deceive the truth
that I to manhood am arrived so near;
And inward ripeness doth much less appear,
That some more timely-happy spirits endu'th.

젊음의 교활한 도둑인 시간은 그의 날개에 
어찌도 빨리 내 스물 세 해를 훔쳐갔는지!
쏜살같은 나의 세월은 전속력으로 날아가지만, 
늦은 나의 봄은 어떤 봉오리나 꽃도 보여주지 않는구나.
어쩌면 나의 외면은 
내가 완전한 장년에 이르렀다는 진실을 속이나보다.
그리고 나이에 맞게 살아 행복한 이들이 가지는
내적 성숙이 겉으로 덜 드러나 보이는가보다.



 Octave에서 화자는 23세가 되도록, 또 늦봄이 되도록 꽃이나 봉오리조차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을 문제적 상황으로 제시함으로써 안타까운 자신의 심정을 나타내고 있다. ‘Time Flies’같은 관용적 의미를 도입부에서 사용하여 자신에게 스물 세 해라는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흘러갔는지를 날아가는 새의 이미지에 비유하였다. 또 아직도 이렇다 할 대작을 내놓지 못해서 시문학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자신의 늦은 성취를 계절에 빗대어 한탄하면서 Seasonal Metaphor를 사용하였다.  

 화자는 내적으로 이미 성숙했고 장년에 이르렀음에도 그의 semblance(=appearance : 외면, 또는 외모)가 그 사실을 속이고 있다고 말한다. 외면적으로는 미성숙해 보이기 때문에 내면에 있는 성숙함이 외부적으로 덜 드러나 보인다는 것이다. (밀턴은 실제로도 나이에 비해 어려보이는 얼굴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다) 즉, semblance는 화자가 성취하고자 하는 바를 23세가 되도록 이루지 못한 이유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timely-happy’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이에 맞게 살아 행복한’ 사람들은 해야 할 일을 나이에 맞게 해낸 이들, 즉 어린 나이부터 시인으로 인정받은 화자의 선망의 대상이다. 화자의 경우와는 달리, 그들의 내면적 성숙은 외면적으로도 드러난다(appear).  



2. Volta(turning point) + Sestet(solution)




Yet be it less or more, or soon or slow, 
It shall be still in strictest measure even 
To that same lot, however mean or high,
Toward which Time leads me, and the will of Heaven;
All is, if I have grace to use it so,
As ever in my great Taskmaster's eye.

그렇지만, 많던 적던, 빠르던 느리던 
내적 성숙은 엄격히 재어보면 항상 같은 것이다. 
얼마나 미천하거나 고귀한 운명이던지 간에,
그 운명을 향해 시간과 하늘의 뜻은 나를 이끈다.
내가 내적 성숙을 이루는 은총을 받게 되면 
내 위대한 신의 눈에는 모두가 똑같을 것이다.



 Yet(그렇지만)은 전환점의 역할을 하는 Volta로, 말하자면 이 시의 터닝 포인트이다. 문제 상황이 드러나며 화자의 안타까운 정서가 드러나던 전반부의 Octave와는 반대로, Volta로 이어지는 후반부의 Sestet은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내적성숙을 드러내주지 않던 semblance 때문에 23세의 장년층이 되도록 자신이 바라던 성취를 이루진 못했지만, 곧 화자는 성숙함이란 엄격히 재어보았을 때 누구에게나 동등하게(even = equivalent) 성취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현재의 상황에서 그 성숙함의 깊이나 속도를 타인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는지 모른다. 얼마나 미천할지, 혹은 고귀할지는 몰라도 누구나 신에 의해 정해진 운명이 있기에 시간과 하늘의 뜻에 따라 자신이 처한 운명도 이끌어진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화자는 자신도 신의 은총을 받는다면, 즉 내면적으로 완전히 성숙하여 그것이 외면에도 드러나게 된다면 신의 눈에는 모두가 똑같을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시를 마친다. timely-happy라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또 조급해하지 않아도 신의 뜻에 의해서 언젠가는 자신도 정해진 운명에 따라 성숙해질 것이라는 해결책(solution)을 구한 것이다.  



3. 꽃피는 봄이 오면



 이 시의 화자는 작시자인 존 밀턴과 매우 밀접한 관계로 보인다. 즉 존 밀턴 그 자체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당시의 장년층에 접어든 그에게,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受學)한 그에게는 23세라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알만한 시를 써내지 못했다는 점이 부담이 되었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후 그가 남긴 문학사적 발자취를 들여다보면, 그의 깨달음처럼 ‘현재’라는 한 시점에서 조급해 할 필요가 없던 듯하다. 이 시를 쓰고 30여년 뒤, 그는 영문학사에 길이 남을 대서사시 《실낙원》(Paradise Lost)을 저술함으로써 셰익스피어 다음가는 대시인이라는 평을 얻었다. 그가 시로 남긴 만큼 23세의 밀턴이 겪었을 무력감은 상당하였겠지만, 삶의 연속선상에서 23세라는 나이는 결코 꽃피우기에 늦어버린 봄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사회는, 주변의 기대는 우리에게 조금 더 빠른 성공을 재촉한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두 가지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많은 청춘들에게 ‘때가 아니다’라는 말로 우려 섞인 조언을 건네기도 한다. 또는 밀턴의 경우처럼 자신에 대한 불안도 우리의 초조함을 고조시키는 요인이 된다. 하반기 공채가 끝나 2016년을 앞둔 이 시기가 우리를 위축시키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나는 밀턴의 시처럼 휩쓸리기도 하고 꿋꿋이 견뎌내기도 하면서 자신의 때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시를 소개하고 싶다. 

 ‘살아가면서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른 건 없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한 구절이다. 시간이 거꾸로 흘러 다른 이들보다 더 늦게 청춘을 맞은 벤자민처럼, 시작이 조금 느려도 영문학사상 한 획을 그은 대작을 남긴 밀턴처럼, 누구에게나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겨울이 왔다고 낙심하지 말자. 꽃피는 그대의 봄은 반드시 올 것이다.


[손정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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